기존에는 학술회의라 하면 주로 대학이나 연구단체가 주최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내용도 주로 지역보다는 중앙을 위주로 삼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최근 지방자치제 이후 지역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자 전국적으로 각 지역별 학술행사를 여는 곳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대개 학술회의를 개최하는 이유는 학문적으로 특정의 문제를 밝혀내기 위하여, 또는 연구자는 자기의 연구결과를 학계에 발표함으로써 관련 학자들로부터 인정을 받자는 데 그 목적이 있다. 따라서 이러한 목적을 극대화시키기 위해서는 치밀한 계획과 노력이 필요하다.
먼저 지역에서 학술회의를 개최하는 경우, 지방자치단체는 학술회의에 대한 개최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에 학술회의에 대한 풍부한 경험을 가진 학술단체에 의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왜냐 하면 학술행사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강연회나 특강이 아니고 기본적으로 전문가들의 학술적 행사이기 때문에 여러 가지 테크닉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자치단체가 학술행사를 계획했을 때는 그 목적이 분명히 있었을 것이고 또 그 효과가 분명하게 드러나기를 기대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술단체는 무엇보다 학술회의의 판을 잘 짜야 한다. 밝혀야 할 사안에 합당하면서도 오랫동안 그 방면에 연구를 해온 전문 학자를 초빙해야 공신력을 높일 수 있다. 이 부분에서 학술단체의 역량이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에 학술단체는 경험과 공신력을 갖춘 단체라야 한다.
뿐만 아니라 그 사안에 대한 학계의 관련자들은 물론 지역민들을 최대한 동원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 부분도 역시 그 학술단체의 역량임은 말할 것도 없다. 만약 그렇지 못하고 특정 이론을 가진 몇몇 사람만이 참석해 가족적인 분위기에서 자기들만의 잔치를 벌인다면 그 행사는 이미 실패한 것이고, 또한 무의미한 행사가 될 수도 있다. 판을 잘 짜서 그들을 배려하고 순수한 학술적 행사를 진행한다면 그들이 안 올 리가 없고, 또 본인들의 연구를 위해서도 당연히 올 수밖에 없다.
더구나 그 학술행사가 국제학술회의라면 비용을 들여서 외국인을 초빙하는 만큼 당연히 그 나라에서 명망있는, 또는 학문적으로 검증을 받은 학자를 초빙해야 할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고 구색이나 맞추려고 데려오는 것이라면 오히려 안 오는 것만 못할 수도 있다.
다음으로는 대개 학설에는 상반된 견해가 있을 수 있으므로 발표자와 토론자는 같은 목소리를 내는 사람보다는 다른 이견을 가진 사람들을 붙이는 것이 학문적으로 도움이 된다. 토론자가 발표자의 의견을 일방적으로 따라간다면 그것은 짜고 치는 고스톱과 다를 게 없기 때문이다.(실제로 학술회의에서 종종 그런 경우가 있음) 그것은 학문적 발전은 커녕 퇴보를 초래하기 십상이다.
결국 지역의 학술회의는 분명한 목적 아래 많은 관련학자와 지역민들을 동원하여 다양한 견해를 도출하자는 데 목적이 있으며 그래야 성공적인 학술회의가 될 것이다. 이러한 다양한 목소리들을 모두 반영할 수 있을 때 비로소 학문은 발전하는 것이고 문제도 해결의 방향으로 한 걸음 나아갈 것이며 또한 지역도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대개 학술회의를 개최하는 이유는 학문적으로 특정의 문제를 밝혀내기 위하여, 또는 연구자는 자기의 연구결과를 학계에 발표함으로써 관련 학자들로부터 인정을 받자는 데 그 목적이 있다. 따라서 이러한 목적을 극대화시키기 위해서는 치밀한 계획과 노력이 필요하다.
먼저 지역에서 학술회의를 개최하는 경우, 지방자치단체는 학술회의에 대한 개최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에 학술회의에 대한 풍부한 경험을 가진 학술단체에 의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왜냐 하면 학술행사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강연회나 특강이 아니고 기본적으로 전문가들의 학술적 행사이기 때문에 여러 가지 테크닉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자치단체가 학술행사를 계획했을 때는 그 목적이 분명히 있었을 것이고 또 그 효과가 분명하게 드러나기를 기대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술단체는 무엇보다 학술회의의 판을 잘 짜야 한다. 밝혀야 할 사안에 합당하면서도 오랫동안 그 방면에 연구를 해온 전문 학자를 초빙해야 공신력을 높일 수 있다. 이 부분에서 학술단체의 역량이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에 학술단체는 경험과 공신력을 갖춘 단체라야 한다.
뿐만 아니라 그 사안에 대한 학계의 관련자들은 물론 지역민들을 최대한 동원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 부분도 역시 그 학술단체의 역량임은 말할 것도 없다. 만약 그렇지 못하고 특정 이론을 가진 몇몇 사람만이 참석해 가족적인 분위기에서 자기들만의 잔치를 벌인다면 그 행사는 이미 실패한 것이고, 또한 무의미한 행사가 될 수도 있다. 판을 잘 짜서 그들을 배려하고 순수한 학술적 행사를 진행한다면 그들이 안 올 리가 없고, 또 본인들의 연구를 위해서도 당연히 올 수밖에 없다.
더구나 그 학술행사가 국제학술회의라면 비용을 들여서 외국인을 초빙하는 만큼 당연히 그 나라에서 명망있는, 또는 학문적으로 검증을 받은 학자를 초빙해야 할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고 구색이나 맞추려고 데려오는 것이라면 오히려 안 오는 것만 못할 수도 있다.
다음으로는 대개 학설에는 상반된 견해가 있을 수 있으므로 발표자와 토론자는 같은 목소리를 내는 사람보다는 다른 이견을 가진 사람들을 붙이는 것이 학문적으로 도움이 된다. 토론자가 발표자의 의견을 일방적으로 따라간다면 그것은 짜고 치는 고스톱과 다를 게 없기 때문이다.(실제로 학술회의에서 종종 그런 경우가 있음) 그것은 학문적 발전은 커녕 퇴보를 초래하기 십상이다.
결국 지역의 학술회의는 분명한 목적 아래 많은 관련학자와 지역민들을 동원하여 다양한 견해를 도출하자는 데 목적이 있으며 그래야 성공적인 학술회의가 될 것이다. 이러한 다양한 목소리들을 모두 반영할 수 있을 때 비로소 학문은 발전하는 것이고 문제도 해결의 방향으로 한 걸음 나아갈 것이며 또한 지역도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김세민 문학박사 ksm@koc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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