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남시는 한강을 끼고 있는 도시이며 삼국시대에는 이 한강을 사이에 두고 고구려·백제·신라가 격전을 벌이기도 한 역사적인 곳이다. 하남과 관련된 역사적 자료를 뒤적이다 보면 도미강 또는 두미강이라고 불리우는 지명이 자주 등장하는데, 조선후기
고지도를 몇 가지 확인해 보면 대개 당정섬과 팔당 사이에 흐르는 강을 그렇게 불렀던 것으로 확인된다.
조선후기에 제작된 광주전도를 보면 양수리(두물머리)에서 갈라져 용진(龍津)을 지나면 석호정(石湖亭)이 나오고, 거기에서 조금 더 내려오면 검단산이 나오는데, 검단산 앞 강을 도미천(渡迷遷)이라고 표시하고 그 조금 밑에 도미진(渡迷津)이 있다고 되어 있다.
아마도 석호정은 그 건너편에 분원이 있는 것으로 보아 하남시 배알미 근처에 있었던 것으로 추측되는데, 글자 그대로 석호정이란 정자가 있었던 곳이다. 물론 지금은 흔적도 없으나 경관으로 보아 정자가 있기에는 안성마춤인 곳이다.
도미천이라는 지명은 남한지에도 나오는데 도미천에서 봉안역을 향해 돌길이 7∼8리 뻗어 있었다하고 신라방언에 흔히 물가의 석로(石路)를 천(遷)이라 하였다고 적고 있다.
이 기록에 나오는 석로가 그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도 강 옆으로 조그만 길이 한참이나 뻗어 있어 가족들과 함께 산책하기에 그만인 곳이다. 한 30년전 쯤의 기억인데, 덕보교 근처에서 말이 끄는 달구지가 그곳까지 사람들을 실어나르곤 했다. 당시 필자도 그 달구지를 타고 그곳에 가본 기억이 있는데 요금으로 담배를 한 두갑 주었던 것 같다. 도미진은 물론 나루터가 있던 곳이며 이곳에는 도미원도 있었다고 한다.
명일동 한영고등학교 옆에도 도미원과 같은 명일원 터가 있는데,
원이란 조선시대 관리들이 공무로 출장을 다닐 때 쉬었다 가는 곳이다. 이 곳은 도미부부가 떠난 곳이라 하여 도미나루라는 지명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하는데 <삼국사기>에 나와 있는 도미부부의 내용을 대략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도미(都彌)는 백제 사람인데 신분은 보잘 것 없었지만 의리있는 사람이었고 그의 아내는 아름답고 절조가 있어 당시 사람들의 칭찬이 자자했다. 백제의 개루왕(蓋婁王)이 이를 듣고 도미를 궁안으로 불러 도미부인의 지조를 시험하고자 하였다. 왕은 한 신하를 왕으로 위장시켜 도미부인에게 보냈다.
도미부인을 찾아간 신하가 말하기를 "내가 너의 아름다움을 오래 전부터 듣고 도미와 장기내기를 하여 이겼다. 내일 너를 궁녀로 삼기로 하였으니 네 몸은 나의 것이다.”라고 하며 난행을 하려 하자 도미부인은 옷을 갈아입고 오겠다고 하고서 여종을 단장시켜 수청들였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왕은 크게 노하여 도미에게 죄를 씌어 두 눈알을 빼고 작은 배에 태워 강에 띄웠다. 그리고 나서 그 아내를 끌어다가 강제로 음행을 하고자 하니 부인은 지금 월경 중이어서 다른 날에 모시겠다고 하고 그 길로 도망하였다.
강가에 이르러 마침 지나가는 배를 타고서 천성도(泉城島)에 도착했는데, 그 섬에서 아직 살아있는 남편을 만나게 되었다. 풀뿌리를 캐먹으며 함께 배를 타고고구려의 산산이라는 지역으로 가서 일생을 마쳤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정절의 표상으로서 후대까지 널리 알려져 있고 오륜행실도에는 그림과 함께 이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고지도를 몇 가지 확인해 보면 대개 당정섬과 팔당 사이에 흐르는 강을 그렇게 불렀던 것으로 확인된다.
조선후기에 제작된 광주전도를 보면 양수리(두물머리)에서 갈라져 용진(龍津)을 지나면 석호정(石湖亭)이 나오고, 거기에서 조금 더 내려오면 검단산이 나오는데, 검단산 앞 강을 도미천(渡迷遷)이라고 표시하고 그 조금 밑에 도미진(渡迷津)이 있다고 되어 있다.
아마도 석호정은 그 건너편에 분원이 있는 것으로 보아 하남시 배알미 근처에 있었던 것으로 추측되는데, 글자 그대로 석호정이란 정자가 있었던 곳이다. 물론 지금은 흔적도 없으나 경관으로 보아 정자가 있기에는 안성마춤인 곳이다.
도미천이라는 지명은 남한지에도 나오는데 도미천에서 봉안역을 향해 돌길이 7∼8리 뻗어 있었다하고 신라방언에 흔히 물가의 석로(石路)를 천(遷)이라 하였다고 적고 있다.
이 기록에 나오는 석로가 그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도 강 옆으로 조그만 길이 한참이나 뻗어 있어 가족들과 함께 산책하기에 그만인 곳이다. 한 30년전 쯤의 기억인데, 덕보교 근처에서 말이 끄는 달구지가 그곳까지 사람들을 실어나르곤 했다. 당시 필자도 그 달구지를 타고 그곳에 가본 기억이 있는데 요금으로 담배를 한 두갑 주었던 것 같다. 도미진은 물론 나루터가 있던 곳이며 이곳에는 도미원도 있었다고 한다.
명일동 한영고등학교 옆에도 도미원과 같은 명일원 터가 있는데,
원이란 조선시대 관리들이 공무로 출장을 다닐 때 쉬었다 가는 곳이다. 이 곳은 도미부부가 떠난 곳이라 하여 도미나루라는 지명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하는데 <삼국사기>에 나와 있는 도미부부의 내용을 대략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도미(都彌)는 백제 사람인데 신분은 보잘 것 없었지만 의리있는 사람이었고 그의 아내는 아름답고 절조가 있어 당시 사람들의 칭찬이 자자했다. 백제의 개루왕(蓋婁王)이 이를 듣고 도미를 궁안으로 불러 도미부인의 지조를 시험하고자 하였다. 왕은 한 신하를 왕으로 위장시켜 도미부인에게 보냈다.
도미부인을 찾아간 신하가 말하기를 "내가 너의 아름다움을 오래 전부터 듣고 도미와 장기내기를 하여 이겼다. 내일 너를 궁녀로 삼기로 하였으니 네 몸은 나의 것이다.”라고 하며 난행을 하려 하자 도미부인은 옷을 갈아입고 오겠다고 하고서 여종을 단장시켜 수청들였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왕은 크게 노하여 도미에게 죄를 씌어 두 눈알을 빼고 작은 배에 태워 강에 띄웠다. 그리고 나서 그 아내를 끌어다가 강제로 음행을 하고자 하니 부인은 지금 월경 중이어서 다른 날에 모시겠다고 하고 그 길로 도망하였다.
강가에 이르러 마침 지나가는 배를 타고서 천성도(泉城島)에 도착했는데, 그 섬에서 아직 살아있는 남편을 만나게 되었다. 풀뿌리를 캐먹으며 함께 배를 타고고구려의 산산이라는 지역으로 가서 일생을 마쳤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정절의 표상으로서 후대까지 널리 알려져 있고 오륜행실도에는 그림과 함께 이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김세민 문학박사 ksm@koc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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