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립공원인 남한산성(사적 제57호)이 서서히 제 모습을 찾아가고 있다. 그동안 산성 중심부에 자리했던 서구식 호텔과 로터리(원형 교차로)도 20여년만에 사라지게 된다.
호텔과 로타리가 있던 곳에는 본래 있었던 임금이 거처하던 행궁이 들어서고 전통 관아거리가 조성될 예정이다.
남한산성 복원 및 정비사업은 총 1천500억원의 예산을 투입, 지난 2000년부터 오는 2008년까지 1단계 문화재 복원정비(2000∼2002년), 2단계 산성마을 정비(2003∼2005년), 3단계 역사문화관광 활성화 등 총 3단계 사업으로 진행된다.
1단계 사업으로 현재 진행중인 1천294m에 이르는 성곽보수는 70%의 공정을 보이고 있고, 지난해 11월 상량식을 치른 행궁복원은 50%의 공정을 보이고 있다.
올해 행궁복원이 마무리되면 국가사적과 어울리지 않는 행궁터 앞 로터리도 'J'자형 전통도로로 바뀌는 관아거리 복원이 시작된다.
이 로터리는 지난 73년 남한산성 도로정비 때 만들어진 것으로, 그동안 남한산성의 전통적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아 개선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제기됐다.
이에 따라 복원될 행궁 앞 'J'자형 관아거리는 산성마을의 중심광장으로 운영된다. 그동안 일본 제국주의와 난개발로 인해 훼손됐던 역사·문화유적지로서의 품위를 되살리고 관광객들을 위해 녹지와 비석거리 및 야외공연장, 관광안내소, 기념품판매소 등을 마련하고 광장내 종각과 함께 광장이 복원돼 전통적인 관아거리의 형태를 갖출 예정이다.
지난 80년 8월 객관(客館)인 인화관(人和館) 자리에 건립된 산성호텔도 매입절차가 마무리되면 22년만에 헐린다.
2단계(2003∼2005년)로 음식점 일색으로 조성된 산성마을이 정비되며, 마지막 3단계(2006∼2008년)로 문화.관광 활성화대책이 추진될 계획이다.
이 같은 대대적인 복원.정비계획을 정확한 고증과 넓은 안목으로 추진하기 위해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남한산성추진기획단'이 지난 12일 발족됐다.
남한산성추진기획단 관계자는 "병자호란 등의 사건으로 오랫동안 남한산성이 크게 왜곡돼 역사의 뒤안길에 묻혀져 있었던게 사실이나 최근 재조명을 통해 제모습찾기에 주력하고 있다"며 "남한산성을 사랑하는 모임, 학계나 전문가, 지역주민 등의 폭넓은 의견수렴과 철저한 고증을 통해 남한산성을 원형 그대로 복원하는데 만전을 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전보삼 운영위원장은 "오는 2008년이면 치욕의 현장으로 왜곡·비하됐던 남한산성의 역사적 가치가 재조명돼 호국역사의 체험교육장으로, 문화관광지로 거듭 태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남한산성, 조선시대 국방부 보루>
남한산성은 삼국시대 이래로 우리 민족사의 중요한 요충지로 기능해 온 장소이다.
한강과 더불어 남한산성은 삼국의 패권을 결정짓는 주요 거점이었다. 백제가 하남 위례성에 도읍을 정한 이후 백제인들에게 있어서 남한산성은 성스러운 대상이자 진산으로 여겼다.
남한산성 안에 백제의 시조인 온조대왕을 모신 사당인 숭열전이 자리잡고 있는 연유도 이와 무관하지만은 않다.
조선시대의 남한산성은 선조 임금에서 순조 임금에 이르기까지 국방의 보루로서 그 역할을 유감없이 발휘한 장소였다. 그 중에서 특히 조선 왕조 16대 임금인 인조는 남한산성의 축성과 몽진, 항전이라는 역사의 회오리를 이곳 산성에서 맞고 보낸 바 있다.
인조 2년(1624)부터 오늘의 남한산성 축성 공사가 시작되어 인조4년(1626년)에 완공한데 이어, 산성 내에는 행궁을 비롯한 인화관, 연무관 등이 차례로 들어서 수 백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문화유산으로 자리잡았다.
이러한 문화유산은 1894년에 산성 승번제도가 폐지되고, 일본군에 의하여 화약과 무기가 많다는 이유로 1907년 8월 초하루 아침에 잿더미로 변하고 말았다.
그 이후 주인을 잃은 민족의 문화유산들은 돌보는 사람 없이 방치되다가 하나 둘 역사의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가고 말았다. 그렇지만 남한산성 주변에는 수많은 문화유산들이 여전히 자리잡고 있다. 그 중에는 문화재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는 것에서 터만 남아있거나 문헌상으로 확인되는 것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하다. 최근 들어 남한산성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호텔과 로타리가 있던 곳에는 본래 있었던 임금이 거처하던 행궁이 들어서고 전통 관아거리가 조성될 예정이다.
남한산성 복원 및 정비사업은 총 1천500억원의 예산을 투입, 지난 2000년부터 오는 2008년까지 1단계 문화재 복원정비(2000∼2002년), 2단계 산성마을 정비(2003∼2005년), 3단계 역사문화관광 활성화 등 총 3단계 사업으로 진행된다.
1단계 사업으로 현재 진행중인 1천294m에 이르는 성곽보수는 70%의 공정을 보이고 있고, 지난해 11월 상량식을 치른 행궁복원은 50%의 공정을 보이고 있다.
올해 행궁복원이 마무리되면 국가사적과 어울리지 않는 행궁터 앞 로터리도 'J'자형 전통도로로 바뀌는 관아거리 복원이 시작된다.
이 로터리는 지난 73년 남한산성 도로정비 때 만들어진 것으로, 그동안 남한산성의 전통적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아 개선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제기됐다.
이에 따라 복원될 행궁 앞 'J'자형 관아거리는 산성마을의 중심광장으로 운영된다. 그동안 일본 제국주의와 난개발로 인해 훼손됐던 역사·문화유적지로서의 품위를 되살리고 관광객들을 위해 녹지와 비석거리 및 야외공연장, 관광안내소, 기념품판매소 등을 마련하고 광장내 종각과 함께 광장이 복원돼 전통적인 관아거리의 형태를 갖출 예정이다.
지난 80년 8월 객관(客館)인 인화관(人和館) 자리에 건립된 산성호텔도 매입절차가 마무리되면 22년만에 헐린다.
2단계(2003∼2005년)로 음식점 일색으로 조성된 산성마을이 정비되며, 마지막 3단계(2006∼2008년)로 문화.관광 활성화대책이 추진될 계획이다.
이 같은 대대적인 복원.정비계획을 정확한 고증과 넓은 안목으로 추진하기 위해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남한산성추진기획단'이 지난 12일 발족됐다.
남한산성추진기획단 관계자는 "병자호란 등의 사건으로 오랫동안 남한산성이 크게 왜곡돼 역사의 뒤안길에 묻혀져 있었던게 사실이나 최근 재조명을 통해 제모습찾기에 주력하고 있다"며 "남한산성을 사랑하는 모임, 학계나 전문가, 지역주민 등의 폭넓은 의견수렴과 철저한 고증을 통해 남한산성을 원형 그대로 복원하는데 만전을 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전보삼 운영위원장은 "오는 2008년이면 치욕의 현장으로 왜곡·비하됐던 남한산성의 역사적 가치가 재조명돼 호국역사의 체험교육장으로, 문화관광지로 거듭 태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남한산성, 조선시대 국방부 보루>
남한산성은 삼국시대 이래로 우리 민족사의 중요한 요충지로 기능해 온 장소이다.
한강과 더불어 남한산성은 삼국의 패권을 결정짓는 주요 거점이었다. 백제가 하남 위례성에 도읍을 정한 이후 백제인들에게 있어서 남한산성은 성스러운 대상이자 진산으로 여겼다.
남한산성 안에 백제의 시조인 온조대왕을 모신 사당인 숭열전이 자리잡고 있는 연유도 이와 무관하지만은 않다.
조선시대의 남한산성은 선조 임금에서 순조 임금에 이르기까지 국방의 보루로서 그 역할을 유감없이 발휘한 장소였다. 그 중에서 특히 조선 왕조 16대 임금인 인조는 남한산성의 축성과 몽진, 항전이라는 역사의 회오리를 이곳 산성에서 맞고 보낸 바 있다.
인조 2년(1624)부터 오늘의 남한산성 축성 공사가 시작되어 인조4년(1626년)에 완공한데 이어, 산성 내에는 행궁을 비롯한 인화관, 연무관 등이 차례로 들어서 수 백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문화유산으로 자리잡았다.
이러한 문화유산은 1894년에 산성 승번제도가 폐지되고, 일본군에 의하여 화약과 무기가 많다는 이유로 1907년 8월 초하루 아침에 잿더미로 변하고 말았다.
그 이후 주인을 잃은 민족의 문화유산들은 돌보는 사람 없이 방치되다가 하나 둘 역사의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가고 말았다. 그렇지만 남한산성 주변에는 수많은 문화유산들이 여전히 자리잡고 있다. 그 중에는 문화재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는 것에서 터만 남아있거나 문헌상으로 확인되는 것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하다. 최근 들어 남한산성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한근영기자 young@koc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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