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한 국가, 한 지역이 선진적이냐 후진적이냐를 가늠하는 척도는 문화에 대한 인식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에서 판가름난다. 왜냐하면 문화는 정치·경제 사회면에서 어느 정도의 수준에 올라 있지 않고서는 관심을 가지기 어려운 분야이기 때문이다.
최근 우리나라도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모두 문화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있다. 특히 지방자치가 실시되면서 자치단체가 앞다투어 자기 지역의 문화와 유적을 보존하고자 노력하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다.
하남시도 최근 몇 년 동안 시 전지역에서 유적발굴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고 동시에 문헌자료 조사도 병행하고 있다. 시는 올해 초 이미 [하남시사]를 2권의 책으로 편찬한 바 있고 이어 [資料를 통해 본 河南]이라는 제목으로 또 1권의자료집을 간행하였다.
시사가 하남시의 역사와 문화·행정 등 전반적인 내용을
다루었다고 한다면, 자료집은 시사에서 다루었던 각종 자료를 모아놓은 것이라 할 수 있다. 대개 자료는 그것을 이용하여 책으로 편찬되고 나면 흐지부지 폐기되는 것이 보통이지만 수집하기도 어려운 만큼 잘 보존해야 한다.
이번에 발간된 하남시 자료집은 몇가지 면에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첫째, 보통 자료집은 시사에 쓰였던 자료를 영구적으로 보존하기 위해 책을 엮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하남시 자료집에는 실제로 시사에 사용되지 않았던 자료도 다수 들어가 있다. 이는 시사의 미비점을 보완하는 동시에 후에 시사가 다시 발간될 때 유용하게 사용될 것이다. 물론 이 자료집 한 권이 하남시와 관련된 모든 자료가 수록된 것은 아니며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아직도 많은 자료가 곳곳에 흩어져 있기 때문에 그것을 수집하고 보존해야 하는 일은 앞으로의 중요한 과제이다.
둘째, 이 자료집은 번역되어 있는 것만을 수록한 것이 아니라 번역되어 있지 않아서 일반인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자료들도 번역되어 실려있다. '여지도서'를 비롯한 몇가지 읍지(邑誌)와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의 유적보고서 등이 그것이다.
셋째, 비록 일부이기는 하지만 여기에 수록된 자료들을 통하여 우리는 과거 우리 지역의 모습을 간접적으로 들여다 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지명은 물론이고 인물, 그리고 한성백제의 수도였던 하남위례성에 관한 기록도 들어 있다. 특히 [동국지리지]에는 '하남위례성'과 '한산성'을 나누어 '한산성'을 남한산성이라고 기록하였고, '대동지지'에는 검단산을 '한산'으로 기록한 것은 특이하다고 할수 있다.
시사에서는 제영이 풍부하지 못했는데, 자료집에서는 여러 사람의 문집에 나타나는 제영을 다수 실음으로서 시사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였다. [다산시문집]에는 검단산과 두미나루에 관한 시(詩)가 참 많았다. 그것은 아무래도 다산이 바로 두미강 건너편에 살았던 이 지역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검단산 북쪽의 지명이 백아곡인데 작설차가 많이 난다거나, 두미강을 검양강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검단산을 검산, 또는 단산이라고도 불렀다.
[공주동정기]를 보면 하남에도 동정(東亭)이있었음을 알 수 있으며, 그 동정이 있던 자리가 하남의 동경주 지역이라는 것도 알 수 있다. 그외에도 자료를 꼼꼼이 살펴보면 우리 지역의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앞으로 지속적으로 보다 많은 자료를 발굴하게 된다면 옛날 하남의 모습을 좀더 가깝게 복원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우리나라도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모두 문화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있다. 특히 지방자치가 실시되면서 자치단체가 앞다투어 자기 지역의 문화와 유적을 보존하고자 노력하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다.
하남시도 최근 몇 년 동안 시 전지역에서 유적발굴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고 동시에 문헌자료 조사도 병행하고 있다. 시는 올해 초 이미 [하남시사]를 2권의 책으로 편찬한 바 있고 이어 [資料를 통해 본 河南]이라는 제목으로 또 1권의자료집을 간행하였다.
시사가 하남시의 역사와 문화·행정 등 전반적인 내용을
다루었다고 한다면, 자료집은 시사에서 다루었던 각종 자료를 모아놓은 것이라 할 수 있다. 대개 자료는 그것을 이용하여 책으로 편찬되고 나면 흐지부지 폐기되는 것이 보통이지만 수집하기도 어려운 만큼 잘 보존해야 한다.
이번에 발간된 하남시 자료집은 몇가지 면에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첫째, 보통 자료집은 시사에 쓰였던 자료를 영구적으로 보존하기 위해 책을 엮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하남시 자료집에는 실제로 시사에 사용되지 않았던 자료도 다수 들어가 있다. 이는 시사의 미비점을 보완하는 동시에 후에 시사가 다시 발간될 때 유용하게 사용될 것이다. 물론 이 자료집 한 권이 하남시와 관련된 모든 자료가 수록된 것은 아니며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아직도 많은 자료가 곳곳에 흩어져 있기 때문에 그것을 수집하고 보존해야 하는 일은 앞으로의 중요한 과제이다.
둘째, 이 자료집은 번역되어 있는 것만을 수록한 것이 아니라 번역되어 있지 않아서 일반인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자료들도 번역되어 실려있다. '여지도서'를 비롯한 몇가지 읍지(邑誌)와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의 유적보고서 등이 그것이다.
셋째, 비록 일부이기는 하지만 여기에 수록된 자료들을 통하여 우리는 과거 우리 지역의 모습을 간접적으로 들여다 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지명은 물론이고 인물, 그리고 한성백제의 수도였던 하남위례성에 관한 기록도 들어 있다. 특히 [동국지리지]에는 '하남위례성'과 '한산성'을 나누어 '한산성'을 남한산성이라고 기록하였고, '대동지지'에는 검단산을 '한산'으로 기록한 것은 특이하다고 할수 있다.
시사에서는 제영이 풍부하지 못했는데, 자료집에서는 여러 사람의 문집에 나타나는 제영을 다수 실음으로서 시사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였다. [다산시문집]에는 검단산과 두미나루에 관한 시(詩)가 참 많았다. 그것은 아무래도 다산이 바로 두미강 건너편에 살았던 이 지역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검단산 북쪽의 지명이 백아곡인데 작설차가 많이 난다거나, 두미강을 검양강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검단산을 검산, 또는 단산이라고도 불렀다.
[공주동정기]를 보면 하남에도 동정(東亭)이있었음을 알 수 있으며, 그 동정이 있던 자리가 하남의 동경주 지역이라는 것도 알 수 있다. 그외에도 자료를 꼼꼼이 살펴보면 우리 지역의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앞으로 지속적으로 보다 많은 자료를 발굴하게 된다면 옛날 하남의 모습을 좀더 가깝게 복원할 수 있을 것이다.
김세민 문학박사 ksm@kocus.com
<저작권자 © 교차로저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하남] "3호선 첫 삽도 안 떴는데...감일에 또 6,500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