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난 60∼70년대에 살아남기 위한 방법으로 자식들을 공부시켰으며, 인구억제 정책으로 핵가족화 되면서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혼자만의 세상을 꿈꾸는 시대를 맞게 했다.
과정이야 어찌됐던 가정과 사회의 교육열기 등 지나친 관심과 경제성장과정에서의 무관심 속에 현재는 통제할 수 없는 현실을 후회하며 앞으로의 교육에 대해 걱정하고 있다. 이렇게 가정교육, 학교교육, 사회교육 중 그 어느 것 하나 잘하고 있다고 말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몇 가지를 집어보며 잠시 옛날민화 하나를 얘기하려한다.
옛날 한 마을에 친구 둘이 살고있었는데 한 친구는 부모를 잘 공경한다는 칭찬을 들었고 또 한 친구는 부모 속만 썩이는 친구였다. 그러던 어느 날 부모 속만 썩이던 친구가 어떻게 하면 부모님에게 칭찬을 들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친구의 집을 찾아 문구멍을 통해 보니 친구가 아버지의 두루마기를 걸치고 있는 것이었다. 그것을 본 친구는 저렇게 하는 것이구나 하고 집으로 돌아와 아버지의 두루마기를 걸치고 앉아 있었던 것이다.
마침 외출을 하기 위해 방에 들어온 아버지는 이러한 광경을 보고 이 놈이 할 짓이 없다보니 아비 옷까지 입고 ○○○이구나 하며 때렸던 것이다. 이에 아들은 효도를 하려 해도 뭐가 맞아야 할게 아니냐 하며 성질을 내고 나갔다는 얘기다.
먹고사는데 힘을 써야했던 시대의 교육, 경제성장으로 부자와 가난한자 사이에서 생겨난 교육여건과 생활 속에 자라난 아이들과 가정을 바라보며 그 옛날 맹자의 맹모삼천지교와 한석봉 어머니의 떡 썰며 가르쳤던 일화가 생각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올해의 수능시험은 지난해보다 무려 60여 점이나 낮아졌다고 한다. 작년엔 고득점자가 많아서 탈이고 올해는 점수가 낮아서 걱정인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예년에 시험을 치른 학생들보다 머리가 나쁘거나 공부를 덜한 것이 아니라 일관성 없는 교육당국의 정책으로 인해 피해자가 되었다는 것이며, 이로 인해 생겨난 학생, 부모의 허탈감과 그들의 꿈과 계획된 진로에 대해 과연 누가 책임을 질 수 있단 말인가.
지난 11월 20일자 LA타임즈에 실린 기사에서 각 나라별 어른들은 과연 얼마나 존경을 받고 있는가 라는 유니세프의 설문조사내용을 보면 세계 72개 국가 중 아시아 17개국의 9세에서 16세를 대상으로 한 결과 한국이 13%, 홍콩이 39%, 중국이 70%, 필리핀이 84%로 평균 72%가 되었으나 그중 한국이 제일 꼴지라는 점이며, 이제 한국의 어린이들은 더 이상 어른을 존경하지 않는다는 충격적인 얘기라는 것이다.
여기에 국가기간 등 기존질서의 권위에 대한 존경심이 5%로 나타났으며, 존경심 상실에 대한 책임공방에서는 교사는 학부모에게, 학부모는 미디어에게, 사회학자들은 인터넷에게 정부당국은 서구화의 책임으로 정한다는 것이다.
또한 청소년들의 반발에 대해서는 어른들은 동떨어진 세계에 살고있으며 존경받을 어른들이 어디 있는가 하는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이러한 기사를 접하며 지금 이 시간에도 어른들은 문제를 풀기보다는 책임만을 떠넘기기 위해 혈전을 벌리고 있는 상황을 자라나는 세대들은 과연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답답함과 걱정이 앞서게 된다.
또한 현재 국회 계류중인 교육정년제도에 대한 한심스러운 현실을 바라보며 근본적인 문제는 나이가 아니라 교육자로서의 자질이라는 점이다.
예로부터 부모와 스승은 같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승이 나이가 들면 바꿔야 한다는 논리라면 머지않아 부모도 나이가 들면 바꿔야 한다는 말이 생겨나지 안는다고 누가 장담하겠는가!
이제부터라도 정부에서는 교육의 백년대계, 천년대계를 운운하며 탁상공론식의 정책입안과 행정을 할 것이 아니라 작게 십 년 앞이라도 내다보는 현실적인 교육여건을 현명하게 풀어나가야 할 것이고, 가정·학교·사회 모두는 참담한 교육현실을 직시하여 보다 냉철한 판단과 각성하는 자세에서 다시 한번 뒤돌아보아야 할 것이며, 자라나는 아이, 청소년들의 눈 높이에서 방법을 찾아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교육의 기본이 무너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본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과정이야 어찌됐던 가정과 사회의 교육열기 등 지나친 관심과 경제성장과정에서의 무관심 속에 현재는 통제할 수 없는 현실을 후회하며 앞으로의 교육에 대해 걱정하고 있다. 이렇게 가정교육, 학교교육, 사회교육 중 그 어느 것 하나 잘하고 있다고 말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몇 가지를 집어보며 잠시 옛날민화 하나를 얘기하려한다.
옛날 한 마을에 친구 둘이 살고있었는데 한 친구는 부모를 잘 공경한다는 칭찬을 들었고 또 한 친구는 부모 속만 썩이는 친구였다. 그러던 어느 날 부모 속만 썩이던 친구가 어떻게 하면 부모님에게 칭찬을 들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친구의 집을 찾아 문구멍을 통해 보니 친구가 아버지의 두루마기를 걸치고 있는 것이었다. 그것을 본 친구는 저렇게 하는 것이구나 하고 집으로 돌아와 아버지의 두루마기를 걸치고 앉아 있었던 것이다.
마침 외출을 하기 위해 방에 들어온 아버지는 이러한 광경을 보고 이 놈이 할 짓이 없다보니 아비 옷까지 입고 ○○○이구나 하며 때렸던 것이다. 이에 아들은 효도를 하려 해도 뭐가 맞아야 할게 아니냐 하며 성질을 내고 나갔다는 얘기다.
먹고사는데 힘을 써야했던 시대의 교육, 경제성장으로 부자와 가난한자 사이에서 생겨난 교육여건과 생활 속에 자라난 아이들과 가정을 바라보며 그 옛날 맹자의 맹모삼천지교와 한석봉 어머니의 떡 썰며 가르쳤던 일화가 생각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올해의 수능시험은 지난해보다 무려 60여 점이나 낮아졌다고 한다. 작년엔 고득점자가 많아서 탈이고 올해는 점수가 낮아서 걱정인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예년에 시험을 치른 학생들보다 머리가 나쁘거나 공부를 덜한 것이 아니라 일관성 없는 교육당국의 정책으로 인해 피해자가 되었다는 것이며, 이로 인해 생겨난 학생, 부모의 허탈감과 그들의 꿈과 계획된 진로에 대해 과연 누가 책임을 질 수 있단 말인가.
지난 11월 20일자 LA타임즈에 실린 기사에서 각 나라별 어른들은 과연 얼마나 존경을 받고 있는가 라는 유니세프의 설문조사내용을 보면 세계 72개 국가 중 아시아 17개국의 9세에서 16세를 대상으로 한 결과 한국이 13%, 홍콩이 39%, 중국이 70%, 필리핀이 84%로 평균 72%가 되었으나 그중 한국이 제일 꼴지라는 점이며, 이제 한국의 어린이들은 더 이상 어른을 존경하지 않는다는 충격적인 얘기라는 것이다.
여기에 국가기간 등 기존질서의 권위에 대한 존경심이 5%로 나타났으며, 존경심 상실에 대한 책임공방에서는 교사는 학부모에게, 학부모는 미디어에게, 사회학자들은 인터넷에게 정부당국은 서구화의 책임으로 정한다는 것이다.
또한 청소년들의 반발에 대해서는 어른들은 동떨어진 세계에 살고있으며 존경받을 어른들이 어디 있는가 하는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이러한 기사를 접하며 지금 이 시간에도 어른들은 문제를 풀기보다는 책임만을 떠넘기기 위해 혈전을 벌리고 있는 상황을 자라나는 세대들은 과연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답답함과 걱정이 앞서게 된다.
또한 현재 국회 계류중인 교육정년제도에 대한 한심스러운 현실을 바라보며 근본적인 문제는 나이가 아니라 교육자로서의 자질이라는 점이다.
예로부터 부모와 스승은 같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승이 나이가 들면 바꿔야 한다는 논리라면 머지않아 부모도 나이가 들면 바꿔야 한다는 말이 생겨나지 안는다고 누가 장담하겠는가!
이제부터라도 정부에서는 교육의 백년대계, 천년대계를 운운하며 탁상공론식의 정책입안과 행정을 할 것이 아니라 작게 십 년 앞이라도 내다보는 현실적인 교육여건을 현명하게 풀어나가야 할 것이고, 가정·학교·사회 모두는 참담한 교육현실을 직시하여 보다 냉철한 판단과 각성하는 자세에서 다시 한번 뒤돌아보아야 할 것이며, 자라나는 아이, 청소년들의 눈 높이에서 방법을 찾아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교육의 기본이 무너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본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방세환(경안천시민연대 사무국장) young@koc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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