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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행궁, 무엇에 쓰였나광주부의 치소로 행정기능
백제의 유물이 발굴돼 관심을 끌고 있는 남한산성 행궁지는 1624년(조선 인조2년) 7월에 착공해 1626년 11월에 완성한 別宮, 혹은 이궁(離宮)시설로 변자호란 때에는 임시궁궐로 활용됐다고 전해 오고 있다.
행궁(行宮)은 정궁(正宮)에 대비되는 용어로 왕이 능행(陵幸)을 목적(화성행궁)으로 혹은 전란(戰亂)에 대비(남한행궁, 북한행궁, 강화행궁, 전주행궁, 월미행궁, 격포행궁)하여 조성하거나 휴양(休養) 혹은 왕이 수도를 벗어나 거취하면서 중간 휴식지로 이용하는 것 등 그 조성목적은 매우 다양한 궁궐을 말한다.
이러한 행궁의 건립은 백제때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이는데 이후 고려와 특히 조선시대까지 지속적으로 이루어진다. 조선시대에는 임진왜란을 기점으로 군사적인 목적이 증대함에 따라 중기와 후기에 더욱 많은 수가 조성되고 또한 이용되었다.
남한행궁은 조성당시의 국내 정치상황과 대외관계를 고려해 군사적인 목적으로 조성되었고, 유사시에 대비한 일종의 예비궁궐이었다.
광주행궁이라고도 불리는 남한행궁의 건립시기는 남한산성이 건축되던 시기와 그 때를 같이 한다. 즉 남한산성의 축조는 1624년(인조 2년) 7월에 쌓기 시작해 1626년에 완공했는데 구체적인 행궁의 건립연대는 문헌기록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1625년에 공사를 착수해 1626년에 완공한 것으로 보인다.
이 남한행궁은 완공후 1626년 11월에 광주부(廣州府)의 읍치(邑治)를 겸함으로써 광주부의 치소(治所)로서도 사용된다.
인조때 조성된 행궁은 지속적으로 부속건물이 조성되는데 후대로 가면서 본래의 가능보다는 광주부 치소로서의 행정적인 기능이 강화된다. 즉 남한행궁의 변천(變遷)은 크게 세 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제1기는 행궁이 건립되던 인조대의 초창기이다. 이 때는 상궐과 하궐, 행각과 담장, 분지, 인화관 정도가 조성된 상태로 행궁 본래의 기능에 광주부 치소의 성격을 부가하여 갖던 시기이다.
제2기는 숙종(肅宗)대의 좌전·우실 건립시기이다. 1688년(숙종14)에 건립된 좌덕당(左德堂)과 더불어 1711년(숙종37) 종조를 봉안하는 좌전과 우실의 건립은 여타 행궁과는 다른 남한행궁만의 독특한 특징을 잘 보여주는 것으로 북한산성이 축성되는 시점과 일치해 당시 비상시 보도로서의 산성과 행궁의 기능을 강화하려는 시기이다.
제3기는 순조(純祖)대의 좌승당과 일장각 건립시기이다. 좌승당과 일장각 등의 건물과 여러동의 누정이 건립된 시기로 행궁 기능보다는 광주부의 치소로서의 행정적인 기능이 강화되는 것과 함께 휴식공간의 성격도 부가되어 나타나는 시기이다.
따라서 남한행궁은 본래의 행궁기능과 광주부 읍치로서의 기능을 동시에 갖고 있으며, 이로한 기능은 병자호란 이후 군사적 위협이 감소함에 따라 점차 행정적인 광주부 치소의 성격이 강화되는 양상으로 나타난다.<한근영기자>young@kocus.com

한근영기자  young@koc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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