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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증주의 사관의 주창자 '랑케'
  • 김세민 문학박사. 시사상임편찬위원
  • 승인 2001.11.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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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과학적'이라는 말과 같은 뜻으로 사용되는 '실증적(positive)'이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사용한 사람은 콩트였다. 콩트는 그의 저서 '실증 철학의 체계'에서 실증철학의 기본적 원리는 사실에 관계된 모든 인식은 경험의 실증적 자료에 근거해야 하며, 사실을 초월한 인식은 순수한 수학에 근거해야 된다고 하였다.

자연과학적 방법, 즉 과학자가 실험이나 관찰을 통하여 자연계의 현상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그 현상 속에서 작용하는 법칙을 발견하는 것과 같은 방법으로 사회나 역사적 현상을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실증주의 철학을 역사학에 도입한 사람이 랑케였다. 랑케는 낭만주의 사가들의 역사적 사실에 대한 윤색과 날조, 그리고 왜곡된 해석에 대하여 강한 불만을 표시하였다. 그는 역사는 민족적 입장이나 당파, 그리고 종파적인 이해관계를 떠나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서술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랑케는 민족주의 사관이나 식민사관 또는 기독교사관과 같은 특정한 입장이나 이해를 대변하는 것은 참된 역사의 인식 방법이 아니라고 보았다. '민족', '식민', 혹은 '기독교'라는 수식어가 붙는다면 역사학은 그 수식어에 예속되기 마련이다.

그렇게 되면 역사학이 아니라 단지 정치나 종교, 민족을 옹호하는 수단으로 전락해 버리게 된다. 역사학이 참으로 역사학이 되기 위해서는 역사의 독립성이 지켜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역사학은 오로지 역사 자체의 인식만을 목적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랑케는 역사적 사실을 자연계의 사실과 동일시하였다. 즉 역사가는 자연 과학자가 자연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는 것처럼 역사학자도 역사적 사실을 실제로 일어난 대로 묘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랑케는 역사가가 과거의 사실을 규명하는데 있어 자신의 주관적인 판단이나 가치를 개입시킨다면 그것은 인간이 자연을 개발한다는 미명 하에 자연을 파괴하고 오염시키는 일과 같다고 하였다.

과거에 일어난 사실은 어느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성스런 영역이며 이를 함부로 취급한다면 신을 모독하는 행위라고 지적하였다. 역사의 창조는 이미 신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므로 인간이 다만 그것을 찾아내면 되는 것이지 결코 그것을 고치거나 잘못된 해석을 부가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랑케는 또한 역사가는 과거 사실이나 사건을 수집하고 구체적이고 개별적으로 이를 확인할 뿐이며 전체로서 보편사나 역사의 법칙 등은 그 사실들의 집합이 스스로 표현하도록 해야 한다고 하였다.

마치 사람이 그 꽃이 어떤 식물 계통에 속하는지 생각하지 않고 꽃의 아름다움 자체를 감상하듯이 역사적 사실도 전체가 개별 속에 어떻게 반영되는가를 생각함이 없이 있는 그대로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역사서술에서 정확성과 공평성을 찾으려는 노력은 역사가라면 누구나 지켜야할 학문의 기초이다. 이러한 랑케의 실증주의 사관은 한편으로 많은 비판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랑케 이후 많은 역사가들에게 영향을 주었으며, 과학적이며 실증적인 연구 방법을 강조하여 역사학의 학문적 위상을 높이고 역사가 독자적인학문으로 발전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이런 점에서 랑케는 '근대 역사학의 아버지'라고 불리어지고 있다(손영호, '역사의 이해').

일본은 이미 대학이 설립되던 초창기부터 누구보다 실증사관을 신봉하였다. 그런 일본이 주변국에 대한 역사를 악의적으로 왜곡하고, 심지어 고고학자가 유물을 파묻어 가면서까지 자국의 역사를 끌어올리려는 눈물겨운 노력은 일본인의 역사적 콤플렉스가 어느 정도인지를 짐작케 한다.


김세민 문학박사. 시사상임편찬위원  ksm@koc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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