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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잡꾼의 세상
중국의 춘추시대, 제(齊)나라 영공(靈公)은 궁중의 여인들에게 남장(男裝)을 시켜 놓고 보고 즐기는 별난 취미의 군주였다.
그런데, 이러한 취미는 곧 백성들 사이에도 유행되어 남장 여인들이 날로 늘어났다. 그러자 영공은 재상인 안영(晏孀)에게 '궁 밖에서 남장하고 다니는 여인들을 처벌하라'는 금령을 내리게 했다. 그러나 남장의 유행이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았으므로, 영공이 안영에게 그 까닭을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군주께서는 궁중의 여인들에게는 남장을 허용하시면서 궁 밖의 여인들에게는 금령을 내렸습니다. 이는 '밖에는 양 머리를 걸어 놓고 안에서는 개고기를 파는 것(羊頭狗肉 양두구육)'과 같습니다. 이제라도 궁중의 여인들에게 남장을 금하시면, 궁 밖의 여인들도 감히 남장을 하지 못할 것입니다."
영공이 안영의 진언에 따라 즉시 궁중의 여인들에게 남장 금지령을 내리자, 그 이튿날부터 제나라에서는 남장 여인을 찾아볼 수 없었다고 한다.

이번의 추석 연휴 동안 전국 도처의 민심이 흉흉했다고 한다. 경기침체, 혼란에 빠진 대북문제, 한심한 정치권 등이 불만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지만 국민들을 더욱 분노케 한 것은 소위 '이용호 게이트' 등 일련의 권력형 비리였다고 한다. 일반서민들은 꿈조차 꿀 수 없는 '몇 십억', '몇 백억'을 아이들에게 용돈 주듯이 하고, 조폭(組暴)과 권력자가 형님·동생한다는 꼬락서니를 보면서 어느 누가 속된 표현으로 '열 받지' 아니 하겠는가.

이른바 '이용호 게이트'는 지앤지(G&G)회장인 이용호라는 인물이 주가 조작과 해외전환사채(CB)의 주식전환을 통하여 1천억원에 가까운 규모의 거액을 챙긴 혐의를 받자, 구속을 면하기 위하여 정치인과 검찰·경찰·국정원·금감원 간부 등 정·관계 실력자에게 '전방위 로비'를 펼친 사건을 말한다. 이씨는 조직폭력 관련 협의로 구속된 전력이 있는 여운환씨에게 로비자금 명목으로 42억4천만원을 건네주었고, 여씨가 '형님' '동생'들에게 10억원을 뿌린 것까지는 밝혀졌지만 나머지 32억4천만원의 로비자금은 누구에게 갔느냐가 이 사건의 줄거리인 것이다.

알기 쉬운 말로, 원래부터 지니고 있던 자기들 호주머니 돈으로 자기들끼리 '형님' '동생'하면서 수십억원을 주고 받았다면 조금 해괴망측한 일이기는 하지만 뭐라고 할 사람이 없다. 불과 몇 년전 부도를 내고 도망다니던 중소기업인이 갑자기 승승장구하여 수백억, 수천억원을 주무르는 대사업가로 변신하게 된 원인이 '힘'있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부터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그들이 '형님 동생'하면서 정답게 나누어 쓴 돈들이 국민의 세금이라는 데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망나니같은 아들놈이 주색잡기로 흥청망청하느라고 사방에 깔아 놓은 빚더미를 평생 허리가 휘도록 고생만 해온 부모가 논밭 팔아서 갚아주는 꼴이다.

정치인들도 마찬가지다. 무슨 사업이네 어떤 계획이네 하면서 내세우는 것을 보면 마치 자신들의 사재를 털어서 엄청난 재원을 마련한 것처럼 생색을 낸다. 그러는 과정에서 비리의혹에 관한 별의 별 소문이 나돌아 우리를 불안 속에 빠뜨린다. 왜냐하면, 그 사업 또는 계획이 실패하거나 차질을 빚게 되면 그 부담은 고스란히 우리들에게 돌아오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그들은 다름 아닌 협잡꾼인 것이다. 벤처기업이네 신종사업이네를 내세워 사람들의 시야를 어지럽히고 난 후에 우리의 땀이 밴 돈 뭉치를 무더기로 빼먹는 악질적인 수법을 어찌 경탄의 눈으로만 바라 볼 수 있단 말인가. 남의 재산이나 가로채고 폭리를 취하던 자들이 정치인으로 변신하고 나서는 국가나 지역의 일꾼이라고 자화자찬을 해대지만 사실 '협잡(挾雜)' 이외에는 아무런 능력이 없음을 우리는 익히 보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분노·불신·환멸·냉소·소외감 등이라는 용어로 밖에 표현할 수밖에 없는 불행한 시대에 처해 있다.

누구보다도 진실하고 청렴하여야 할 지도층이 '양두구육'의 방식으로 우리의 가슴에 생채기를 내고 우리의 재산을 노리고 있으니 어디에 믿음을 두어야 한단 말인가. 이제라도 궁중의 여인들에게 남장을 금하게 하면, 궁 밖의 여인들이 감히 남장을 하겠느냐는 안영의 말을 깨닫고 힘있는 지도층들이 스스로 그리고 그 주변에 널려 있는 모순과 비리를 척결해낸다면, 어찌 우리가 이 세상을 협잡꾼들의 것이라고만 매도할 수 있겠는가.


곽근홍 논설위원  kkh@koc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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