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11일(火요일) 미국시간 오전 8시 45분을 시작으로 미국의 심장부인 국방성(펜타곤)을 비롯한 세계 자본주의의 상징인 110층의 세계무역센타 쌍둥이 건물이 미확인된 자들에 의해 테러되었다. 이로 인해 미국은 수만은 인명을 잃었으며 백악관, 의회, 행정부 등 중앙정부의 전 직원을 피신시키는 전쟁에 달하는 명령을 하달하였다.
인간은 이성과 감정을 지닌 동물로서 개개인의 마찰, 집단과 집단과의 마찰, 크게는 국가 간의 마찰과 타협을 거듭하며 현재에 이르고 있다. 개개인이던 국가던 간에 약자와 강자가 있으며 그사이에 이기심과 갈등으로 동서고금을 막론한 전쟁과 화해를 거듭하며 여기까지 왔다. 이러한 역사 속에 우리는 미국의 대 참사에 대한 참혹함과 분노만을 생각했지 그 반대의 테러는 왜 일어났어야만 했는가에 대해서는 잊어버리게 되는데 이는 당한 자에서 보면 테러요, 행한 자에서 보면 성전일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날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의 가미가제특공대가 미 항공모함에 대한 비행기 자살폭격행위, 5.25동란에서의 국군의 폭탄을 이용한 자살탱크 폭파 등 국가를 위해 몸을 던진 희생자가 있었던 점을 기억하고 있다. 이번 테러에서도 보았듯이 우리는 그들이 가장 소중한 자신의 몸을 왜 무기로 끔직한 테러를 행하였을까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강자나 강대국은 사람이 다쳐도 난리가 나며 약자나 약소국의 어린이들은 부모를 잃어가며 팔과 다리가 잘려나가도 월간지의 칼라화보로밖에 들어낼 수가 없는 것일까. 이스라엘군의 죽음은 팔레스타인 난민을 무차별 폭격을 해도 되며 나라를 잃은 팔레스타인은 팔과 다리가 잘려나가도 목소리와 돌밖에 던질 수 없는가. 이란과 이라크와의 전쟁,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이 무엇을 말해주는가,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들은 이들 국가간의 싸움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평화를 빌미로 개입하여 싸웠지만 세상에 공자란 없다란 말이 있듯이 그들은 막대한 무기와 경제를 팔아가며 강대국만의 특권을 그 동안 누려왔다.
지난 중동의 걸프전에서도 미국을 비롯한 서방 여러 나라는 자의든 타의든 간에 자국의 젊은 병사들을 희생해 가며 평화를 명목으로 쿠웨이트를 도왔으나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주변국가들은 군사적 두려움으로 미국산 최신무기를 구입하여 경제적인 부담만 가져왔다.
이번 테러의 지휘자로 알려진 오사마 빈 라덴이 은신하고 있다는 아프가니스탄은 구 소련과 파키스탄의 접경지역으로서 과거 구 소련의 침공을 유일하게 막아낸 국가이다. 그 당시 그 곳은 낮에는 소련이 점령하고 밤에는 아프가니스탄이 점령할 정도로 게릴라전에 능숙하여 결국 소련이 손을 들고 말았는데 이는 파키스탄을 비롯한 이슬람교인들이 자신의 몸을 던져가며 도와주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번 테러를 자행했던 자들이 이슬람교인이라는 것이며, 이들의 이슬람교 신도 수는 전 세계 인구의 4분의1인 약 12억이 중동을 비롯한 구 소련의 중앙아시아에 약 1천6백여만명, 중국 북경에 약 4백여만명, 프랑스, 영국에 각 3백여만명과 미국에도 상당수의 이슬람신도들이 “평등·평화·실천”이라는 이슬람교의 행동지침으로 생활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은 이번 사태를 전쟁으로 간주한 보복을 다짐하며 실행하려 하고 있지만 아랍권을 포함한 이슬람권의 생리를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또 다른 테러를 종용하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고, 이는 또 다른 테러를 만들어 낼 것이며, 결국 악순환의 연장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반드시 근절되어야만 될 것이다. 이제 우리 나라던 외국이던 간에 국가를 운영하는 관리인이나 정치인들은 더 이상 무고한 국민들을 볼모로 한 전쟁놀이를 더 이상해선 안될 것이다.
끝으로 이번 참사로 희생된 사람들과 지난 역사 속에 묻혀져 간 선량한 세계 각국의 희생자 모두에게 삼가 머리 숙여 명복을 빈다. <본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인간은 이성과 감정을 지닌 동물로서 개개인의 마찰, 집단과 집단과의 마찰, 크게는 국가 간의 마찰과 타협을 거듭하며 현재에 이르고 있다. 개개인이던 국가던 간에 약자와 강자가 있으며 그사이에 이기심과 갈등으로 동서고금을 막론한 전쟁과 화해를 거듭하며 여기까지 왔다. 이러한 역사 속에 우리는 미국의 대 참사에 대한 참혹함과 분노만을 생각했지 그 반대의 테러는 왜 일어났어야만 했는가에 대해서는 잊어버리게 되는데 이는 당한 자에서 보면 테러요, 행한 자에서 보면 성전일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날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의 가미가제특공대가 미 항공모함에 대한 비행기 자살폭격행위, 5.25동란에서의 국군의 폭탄을 이용한 자살탱크 폭파 등 국가를 위해 몸을 던진 희생자가 있었던 점을 기억하고 있다. 이번 테러에서도 보았듯이 우리는 그들이 가장 소중한 자신의 몸을 왜 무기로 끔직한 테러를 행하였을까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강자나 강대국은 사람이 다쳐도 난리가 나며 약자나 약소국의 어린이들은 부모를 잃어가며 팔과 다리가 잘려나가도 월간지의 칼라화보로밖에 들어낼 수가 없는 것일까. 이스라엘군의 죽음은 팔레스타인 난민을 무차별 폭격을 해도 되며 나라를 잃은 팔레스타인은 팔과 다리가 잘려나가도 목소리와 돌밖에 던질 수 없는가. 이란과 이라크와의 전쟁,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이 무엇을 말해주는가,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들은 이들 국가간의 싸움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평화를 빌미로 개입하여 싸웠지만 세상에 공자란 없다란 말이 있듯이 그들은 막대한 무기와 경제를 팔아가며 강대국만의 특권을 그 동안 누려왔다.
지난 중동의 걸프전에서도 미국을 비롯한 서방 여러 나라는 자의든 타의든 간에 자국의 젊은 병사들을 희생해 가며 평화를 명목으로 쿠웨이트를 도왔으나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주변국가들은 군사적 두려움으로 미국산 최신무기를 구입하여 경제적인 부담만 가져왔다.
이번 테러의 지휘자로 알려진 오사마 빈 라덴이 은신하고 있다는 아프가니스탄은 구 소련과 파키스탄의 접경지역으로서 과거 구 소련의 침공을 유일하게 막아낸 국가이다. 그 당시 그 곳은 낮에는 소련이 점령하고 밤에는 아프가니스탄이 점령할 정도로 게릴라전에 능숙하여 결국 소련이 손을 들고 말았는데 이는 파키스탄을 비롯한 이슬람교인들이 자신의 몸을 던져가며 도와주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번 테러를 자행했던 자들이 이슬람교인이라는 것이며, 이들의 이슬람교 신도 수는 전 세계 인구의 4분의1인 약 12억이 중동을 비롯한 구 소련의 중앙아시아에 약 1천6백여만명, 중국 북경에 약 4백여만명, 프랑스, 영국에 각 3백여만명과 미국에도 상당수의 이슬람신도들이 “평등·평화·실천”이라는 이슬람교의 행동지침으로 생활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은 이번 사태를 전쟁으로 간주한 보복을 다짐하며 실행하려 하고 있지만 아랍권을 포함한 이슬람권의 생리를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또 다른 테러를 종용하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고, 이는 또 다른 테러를 만들어 낼 것이며, 결국 악순환의 연장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반드시 근절되어야만 될 것이다. 이제 우리 나라던 외국이던 간에 국가를 운영하는 관리인이나 정치인들은 더 이상 무고한 국민들을 볼모로 한 전쟁놀이를 더 이상해선 안될 것이다.
끝으로 이번 참사로 희생된 사람들과 지난 역사 속에 묻혀져 간 선량한 세계 각국의 희생자 모두에게 삼가 머리 숙여 명복을 빈다. <본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방세환(경안천시민연대 사무국장) young@koc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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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남] "3호선 첫 삽도 안 떴는데...감일에 또 6,500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