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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남시 여성들(홍미라 시의회 의장 등)의 위대한 혁명과 희망을 본다!

 

  

 

  주로 남자들이 낄낄대며 잘도 해대는, 너무나 속된 고전적 유머를 불가피함에 양해 바란다.

 

그 옛날 처녀 뱃사공의 배를, 꼴에 사내(男)라 하는 허접한 선비가 탔다.

 

건너편 강가에 닿은 선비가 처녀 사공을 놀리려, “내가 자네의 배(?)를 탔으니 처녀는 이제 내 것일세!” 라고 희롱하였다.

 

이에 처녀는 선비의 예상과는 다른 차분한 어조로, “무슨 말씀을 그렇게...

 

오히려 선비 당신이 내 배에서 나갔으니 이제 내 새끼가 되었구려!” 라고 하여, 선비가 경악 끝에 줄행랑을 쳤다 한다.

 

동서고금에 올바른 근거와 내용 등이 모호한, <남자>의 ‘남자다움’ 혹은 ‘사내다움’ 에 대한 최대의 허구적 모욕은 “계집아이 같이...”, “앉아서 오줌 누는 이들처럼!” 아니면, “집에서 애나 봐라!” 등이다.

 

디트리히 슈바이츠의 저서 <남자> 中, ‘지구에서 가장 특이한 종족’으로 묘사됨을 인용하는 만큼 남자들의 이 해괴망측한 性차별 과 억압의 이데올로기는, 상대를 포함하여 스스로를 옥죄기에 충분한 자가당착적 <자살 감옥>임을 역설한다.  


  (일부) 남성의 힐난과 억압 대상인 여성들이 국외(예; 최근 호주의 여성 수상 탄생)는 물론 국내 특히, 우리 하남에서 파란의 혁명과 희망을 한껏 야기하고 있음을 주목하련다.

 

이른바 금번 ‘수도권 최초 민노당 출신 시의회 의장’이라는 명성을 받게 된 3선의 홍미라 시의장(별명 ‘홍다르크’), 부의장 방미숙 민주당 초선 의원(⇒전국 최초의 야당 여성 의장단) 및 2인의 야당 시의원 등 4인(과반)의 여성으로 구성된 <여인 천하> 하남시의회의 구성•출범이 바로 그것이다.

 

홍의장의 파죽지세 3선에는 당연히 하남시 해당 유권자들의 선택과 집중이 결정적으로 유효한 것이고, 나아가 범야권에다 여성 후보자들을 기꺼이 혁신적으로 선별 선호한 표심이 집약된 결과이다.

 

이 모든 것에는 지난 4년 가운데 특히, 광역화장장 반대투쟁 때, 들불 같이 일었던 시민들의 행보 중 우리의 누이, 어머니 및  할머니(부녀자)들 5~60여 분이 삭발을 감행한, 민초의 동서고금 저항史에 前無後無할 풀뿌리 혁명과 희망을 이루고자 함이 같은 맥락으로 작동한 것이라 확신한다.

 

더 특별하기는 ‘여성의 적은 여성’이 결코 아닌, ‘여성의 동지는 여성’임을 최소한 하남에서 금번 선거(例: 여성이 同 여성을 선택) 결과로써 포효한 <여인 천하>의 발전적 쾌거임에 경이롭고 이를 크게 기대한다.

 


  선거유세운동이 막바지에 달했던 지난 어느 날, 한강 변 다리 밑에서 만났던 홍의장의 “북풍 세몰이에 선거가 힘드네요!”라는 장탄식의 모습이 엊그제 같았는데,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며 모범적인 의정운영으로 시민들로부터 신뢰받는 시의회로 거듭나도록 하겠다!”는 개원사 앞에서, 정치와 일상의 유쾌하거나 의미심장한 <카오스>(chaos; 혼돈)를 진하게 느낀다.

 

확인 된 바는 아니지만, 한 때 남미 어느 나라에서 부정비리가 난무하는 도로경찰(대부분 남자)문제를 혁신하려고 전원 여자경찰들로 교체했다는데, 그 결과는 알려진 바 없지만 미루어 짐작컨대 지난 남자들의 그 만연된 집단적 부패부정 보다는 다소 낫지 않았을까 싶다.

 

이제 실로 ‘여성의 시대-여성의 정치시대’가 우리 하남에서 더 크게 문을 열었다.

 

영국의 작가 사무엘 존슨 曰, “현명한 남성은 <여성>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얘기하지 않는다!”라고 역설하였는데, 여기서의 <여자>는 민주 혁명과 자유 행복을 일구는 하남의 위대한 분들을 예외로 하면서, 동시에 나는 처녀 뱃사공에게 혼 줄이 난 上記에의 같잖은 선비가 결코 아니므로 뜻 깊은 첨언을 하련다.

 

미국의 저명한 미래학자 존 나이스비트(John Naisbitt)는 21세기를 여성(Female), 감성(Feeling), 가상(Fiction)이라는 이른바 ‘3F’가 지배하는 사회라고 하면서, 이에 물리적 힘이나 딱딱함보다는 부드러움과 유연성, 지성보다는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섬세함과 감성, 현실에서 상상력을 자유로이 펼칠 수 있는 가상성이 요구된다고 하였다.

 

작금의 홍의장님 및 여성 여러분, 하남을 그대들에게 이렇게 맡기나니(맡겨졌나니), 향후 "여자들,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가 절대 되지 않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파이팅~


*追伸: 이 칼럼의 최종 솔직함은 특별히 지난 4년 동안 하남을 호가호위(狐假虎威)하며 자행하였던, 남자라는 이름의 개인 혹은 집단적인(上記 선비 보다 더 같잖은) 市政의 폭압과 우둔함 등을, 심히 조롱하고 비트는 가운데 同性으로서 대신 하는 속 깊은 참회이다.

정채기 교수  chung294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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