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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장과 교육감

 

 

 

1976년 3월 중순 경, ‘책’을 보기 위해 서울 진관외동의 선림사(禪林寺)라는 절에 갔었다.


수개월이 지난 어느 날, 이른 아침 산책길에서 누군가 꾸벅 인사를 한다.


“곽노현(郭魯鉉)이라고 합니다. 종씨(宗氏)인 줄로 알고 있는데요.”


“아, 예, 현풍(玄風)이 본(本) 입니다만.”


“저는 청주(淸州) 입니다. 연배이신데, 말씀 낮추시죠.”


그 해 서울법대를 졸업하고, 친구 2명과 함께 들어왔다고 한다. 우리는 골방 하나를 사이에 둔 입소(入所) 동기생인 것이다.


그는 전형적인 수재로 보였고, 심성이 깨끗했다.


한번은 어머니가 다녀갔는데, 스스로를 불효자라면서 울기도 했다. 그의 다정다감한 면모를 볼 수 있었다.


당시의 사법시험 합격자는 80명, ‘하늘의 별 따기’가 정말 힘들었었다.


1980년은 이 나라 역사에 한 획을 긋는 해다.


소위 ‘광주사태’가 발생하고, 각 대학은 휴교에 들어갔다. 그 해 6월 초, 청평 근처 삼회리(三會里)에 고대 법대 2학년 학생 4~5명이 책 보따리를 싸들고 찾아온다.


그 중의 한 학생이 오세훈(吳世勳) 씨다. 인상 좋고 성격 또한 서글서글했다.


평소에는 잘 웃지만, 공부 할 때는 밖에 벼락이 쳐도 방문을 열지 않았다. 외유내강(外柔內剛)의 인물인 것이다.


오세훈 씨는 4년 후인 1984년에 시험에 합격하였고, 승승장구하여 2006년에는 서울시장이 되었다.


2010년 5월에 이르러서야 곽노현 씨의 이름이 눈에 띄기 시작한다.


한 사람은 서울시장의 재선에 도전하고, 그 서생(書生) 타입의 인물은 서울시 교육감에 출사표(出師表)를 낸 것이다.

 

정녕 세상일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 있다.


완승(完勝)할 것으로 예상했던 오세훈 씨는 박빙의 접전 끝에 당선되었고, 도저히 가망(可望) 없다고 보던 곽노현 씨가 무난하게 당선되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진보성향의 곽 당선자가 현 정부의 핵심 교육정책을 반대하기 때문에, 오 당선자와의 관계가 매끄럽지 않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러나 그리 염려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둘 다 대한민국을 사랑하고, 법과 정의를 지키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곽근홍 발행인  gkskfh330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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