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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봄
지난 겨울은 따뜻했다. 아무리 겨울 같지 않은 계절이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경계심을 풀 수는 없었다. 믿을 수 없는 것이 세상 인심과 날씨라고 하지 않던가. 설마 그럴리야...라고 방심하는 순간 혹독한 한파는 몰아치지 않았던가.

이제는 봄이 온 것 같다. 음력으로 2월 초하룻날인 지난 14일이 중화절(中和節)이라고 하여 농사일이 시작되는 날로 치고 있었다. 예로부터 우리나라는 중화절이 되면 송편을 빚어서 집안의 일꾼들에게 배불리 먹이고, 온 집안을 깨끗이 청소하는 등 겨우내의 묵은 먼지를 털어내고 새로운 '농사'를 준비하였다고 한다.

그 중화절이었던 날, 탈북자 6가족 등 25명이 중국의 북경에 있는 스페인대사관에 기습적으로 진입하여 망명을 요청하고는, 한국으로 보내달라고 농성하고 있다고 한다. 그들의 상당수는 북한에 강제로 송환되었다가 재탈북한 사람들이라고 하니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그들, 25명은 자신들이 북한으로 송환되면 극약으로 자살하겠다고 밝혀 그 절박한 심정을 드러냈다고 한다.

솔직히 말한다면, 우리는 어리둥절하지 않을 수 없다.
눈만 뜨면 싸움질이고, 욕설이며 비방에 거짓과 중상모략이 난무하면서 잠자리조차 뒤숭숭한 이 나라가 뭐가 좋다는 걸까.

온갖 탐관오리·사기꾼·협잡꾼·조폭들이 너도나도 이것 빼먹고 저것 등쳐 먹고는 검찰청이나 감옥에 떼거리로 들락거리는 통에 구경하는 사람들도 정신이 헷갈리는 이 사회가 어째서 동경의 대상이란 말인가.

이 땅의 '팔자' 좋은 분들은 아직도 한국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체면을 구긴다고 여겨서인지는 몰라도, 분만일이 다가오면 미국으로 건너가서 그 귀한 자식만이라도 '미국시민'으로 태어나게 만들고, 엄마·아빠 소리도 제대로 못하는 유아들을 미국에 유학보내어 국적이 애매모호한 아이들로 키우는 것을 자랑하고 다니는 것을 생각하면, 목숨을 걸고 한국으로 가고 싶다면서 절규하고 있는 북경의 탈북자들에게 민망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이 대한민국이 멋있고 이상적인 나라로 변화하기 위한 환골탈태(換骨奪胎)의 과정이라는 것이다. 이 나라에 불필요하고 유해(有害)한 요소들을 솎아내고 있는 진통을 겪느라고 우리들이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들이 엉뚱한 일에 매달리거나 분별을 잃었던 탓에 김매기를 소홀히 하고 병충해가 날뛰는 것을 내버려 두었던 것이다. 당연한 결과로 농사를 망칠 수 밖에 없었다.

농사일에는 서로가 손을 놓은 채, 한량처럼 놀고 먹고 마시다가 폐농 지경에 이르러서야 자신의 잘못을 덮어두고는 뒤늦게사 잡초를 뽑는다거나 농약을 살포하는 등의 법석을 떠는 일들이 되풀이 되었던 것이다.

농사를 잘 지으려면, 나쁜 품종과 잡초를 골라내어 길에 내버리고, 좋은 품종의 농작물을 심은 후에 병충해 등이 창궐하지 못하도록 예방하고, 때에 맞춰 물을 대주고 거름을 주는 등의 성심을 다하여야 한다,

중화절에는 농사를 시작하겠다는 만반의 준비를 마친 후에 "향랑각시여, 천리 밖으로 빨리 도망가라"(香娘閣氏 速去千里)라고 쓴 글씨를 집안에 붙여놓았다고 한다. 향랑각시는 냄새나는 노래기를 말한다.

올해는 이 나라의 주인인 우리들이 아주 중요한 농사일을 시작하게 되어 있다. 대통령을 비롯하여 도지사·시장·군수·지방의원 등 크고 작은 농작물을 다시 심어야 할 시기가 된 것이다. 좋은 품종을 골라 이 땅에 튼튼하게 심은 후에, 우리 집안에 노래기 같은 존재들이 득실거리는 일이 없도록 힘과 정성을 기울어야 할 것이다.

실패를 스승으로 삼고, 시행착오를 교훈으로 받아 들여 새롭게 농사일을 시작하려는 이 봄이 희망적이지 아니겠는가. 지금, 북경에서 가슴을 졸이고 있는 탈북자들이 이 땅을 찾은 후에 이 곳이야 말로 희망이 있는 땅이구나, 정말 잘 찾아왔다는 기쁨을 맛보게 한다면 그 겨우내의 괴로움도 얼음이 녹듯 사라지지 않겠는가.

곽근홍 논설위원  kkh@koc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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