굶기를 밥먹듯이 한 사람으로서는 맘껏 배를 채워보는 것이 소원일 것이다. 그러나, 포식을 하고 나면 생각이 달라져서 다른 대상에 매달리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사람이 웬만치 먹고사는 것을 해결하게 되면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데에 급급하였던 옛날과는 다르게, 자기의 '힘'을 자랑하고 싶은 욕구에 사로잡히게 되는 것 또한 다반사이다.
별별 명분과 미사여구를 동원하여 자기 자신이 소위 '출세'를 해야만 하는 이유를 둘러대지만, 뭇 사람들보다 한층 높은 위치에 자리를 잡고 스스로의 존재를 빛나게 하고 싶은 '본능'을 우리는 뭐라고 폄하할 수는 없다.
그래서 인간들은 우리의 지도자로 누가 되어야 할 것인가, 그 방법은 어떤 절차에 의하여야 할 것인 가로 끊임없이 갈등과 분쟁의 역사를 겪어왔으며 그것이 곧 정치의 단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조선시대의 과거는 그러한 지도자를 뽑아내기 위한 제도였다. 일반 평민이하 노예들이 글을 못 배우게 한다던가 아예 글을 배울 기회를 봉쇄하고는 주로 양반 자제들만 과거에 응시하게 하여 그들이 관직을 독점하였다.
그리고는 자기들끼리 권력과 명예를 놓고 한치의 양보도 없는 싸움을 벌이기만 하니 나라가 혼란에 빠지고 국가의 발전을 기할 수가 없었다.
요즈음 인기 리에 방영되고 있는 TV드라마 『여인천하』를 보면 알 수 있듯이 과거 출신자들이 자신들의 집단과 개인의 이익에 너무 매달렸던 것이다.
이 나라에 민주주의가 도입되고 나서 국가와 국민의 이익에만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는 '과거 급제자'를 뽑아내는 제도가 '선거'인 것이다.
온 국민이 과거의 시험관이 되면 훌륭한 인물이 배출되어 이 나라가 발전되고 정의로운 사회가 될 것이라는 소망에 따른 절차가 선거라고 할 수 있다.
우리의 선거제도는 그 목적과 소망에 따른 역할을 제대로 해왔는가. 만약에 '그렇다'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있다면 너도나도 벌떼처럼 일어나 비난을 하고 뭇매를 가하려고 할 것이다.
이번 설 연휴기간 오랜만에 만난 가족·친지들이 사랑방 등에서 덕담을 나누다가도 '정치'이야기만 나오면 욕설이 쏟아졌다고 한다. 소위 '설 민심'동향이 흉흉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는 이번 선거에서 어느 당은 절대로 찍지 않겠다, 비리와 의혹 투성의 누구는 무조건 떨어뜨리겠다는 등 이구동성으로 맹세하였다고 한다.
우리들이 어리석은 과거의 시험관 노릇을 한 것에 대하여 뒤늦게라도 각성하게 된 것은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설 민심이 어떻고 저렇고 하며 분노와 후회의 소리가 드높은 것을 보면서도 우리를 비웃는 사람들이 있다. 지금은 핏대를 세우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막상 선거 때가 되면 언제 그랬느냐고 깡그리 잊어 먹는다는 것이다.
과거의 시험관인 우리들이 짐짓 똑바른 체 하다가도 소주 한잔에 분별이 취하고, 갈비 한입에 긴장이 해이해지며, 돈 봉투에 양심이 마비되는가 하면 고향사람·선후배·종씨 등을 따지면서 공정성이 와르르 무너져서 '과거시험장'을 속된 표현으로 '개판'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사실 우리의 '전과기록'을 돌이켜 보면 우리는 과거의 시험관 지위를 반납해야 만이 마땅하다. 한마디로 유권자의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과거의 부정행위자와 한패가 되어 엉뚱한 사람들을 급제시켜 놓고는 무슨 할말이 있단 말인가.
과거 시험관 노릇을 제대로 하여 진정, 뭇 사람보다 한층 높은 도덕성과 능력을 갖춘 인물을 '장원급제'로 뽑았었다면 몰라도.
사람이 웬만치 먹고사는 것을 해결하게 되면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데에 급급하였던 옛날과는 다르게, 자기의 '힘'을 자랑하고 싶은 욕구에 사로잡히게 되는 것 또한 다반사이다.
별별 명분과 미사여구를 동원하여 자기 자신이 소위 '출세'를 해야만 하는 이유를 둘러대지만, 뭇 사람들보다 한층 높은 위치에 자리를 잡고 스스로의 존재를 빛나게 하고 싶은 '본능'을 우리는 뭐라고 폄하할 수는 없다.
그래서 인간들은 우리의 지도자로 누가 되어야 할 것인가, 그 방법은 어떤 절차에 의하여야 할 것인 가로 끊임없이 갈등과 분쟁의 역사를 겪어왔으며 그것이 곧 정치의 단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조선시대의 과거는 그러한 지도자를 뽑아내기 위한 제도였다. 일반 평민이하 노예들이 글을 못 배우게 한다던가 아예 글을 배울 기회를 봉쇄하고는 주로 양반 자제들만 과거에 응시하게 하여 그들이 관직을 독점하였다.
그리고는 자기들끼리 권력과 명예를 놓고 한치의 양보도 없는 싸움을 벌이기만 하니 나라가 혼란에 빠지고 국가의 발전을 기할 수가 없었다.
요즈음 인기 리에 방영되고 있는 TV드라마 『여인천하』를 보면 알 수 있듯이 과거 출신자들이 자신들의 집단과 개인의 이익에 너무 매달렸던 것이다.
이 나라에 민주주의가 도입되고 나서 국가와 국민의 이익에만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는 '과거 급제자'를 뽑아내는 제도가 '선거'인 것이다.
온 국민이 과거의 시험관이 되면 훌륭한 인물이 배출되어 이 나라가 발전되고 정의로운 사회가 될 것이라는 소망에 따른 절차가 선거라고 할 수 있다.
우리의 선거제도는 그 목적과 소망에 따른 역할을 제대로 해왔는가. 만약에 '그렇다'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있다면 너도나도 벌떼처럼 일어나 비난을 하고 뭇매를 가하려고 할 것이다.
이번 설 연휴기간 오랜만에 만난 가족·친지들이 사랑방 등에서 덕담을 나누다가도 '정치'이야기만 나오면 욕설이 쏟아졌다고 한다. 소위 '설 민심'동향이 흉흉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는 이번 선거에서 어느 당은 절대로 찍지 않겠다, 비리와 의혹 투성의 누구는 무조건 떨어뜨리겠다는 등 이구동성으로 맹세하였다고 한다.
우리들이 어리석은 과거의 시험관 노릇을 한 것에 대하여 뒤늦게라도 각성하게 된 것은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설 민심이 어떻고 저렇고 하며 분노와 후회의 소리가 드높은 것을 보면서도 우리를 비웃는 사람들이 있다. 지금은 핏대를 세우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막상 선거 때가 되면 언제 그랬느냐고 깡그리 잊어 먹는다는 것이다.
과거의 시험관인 우리들이 짐짓 똑바른 체 하다가도 소주 한잔에 분별이 취하고, 갈비 한입에 긴장이 해이해지며, 돈 봉투에 양심이 마비되는가 하면 고향사람·선후배·종씨 등을 따지면서 공정성이 와르르 무너져서 '과거시험장'을 속된 표현으로 '개판'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사실 우리의 '전과기록'을 돌이켜 보면 우리는 과거의 시험관 지위를 반납해야 만이 마땅하다. 한마디로 유권자의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과거의 부정행위자와 한패가 되어 엉뚱한 사람들을 급제시켜 놓고는 무슨 할말이 있단 말인가.
과거 시험관 노릇을 제대로 하여 진정, 뭇 사람보다 한층 높은 도덕성과 능력을 갖춘 인물을 '장원급제'로 뽑았었다면 몰라도.
곽근홍 논설위원 kkh@koc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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