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초 새해 인사로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대신에 '부자 되세요'라는 말이 유행했는데, 새해도 벌써 한달이 지났지만 부자 이야기를 좀 해야겠다.
필자는 신정이나 설날, 추석, 또는 여름 휴가 때면 반드시 책 한권이라도 읽자는 내 자신과의 약속을 나름대로 지켜오고 있는데 올 연초에는 '5백년 내력의 명문가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특히 그중에서도 경주 최부자집 이야기는 적지 않은 감동을 주었다. 12대 만석꾼이요, 9대 진사를 배출한 명문가, 최부자집 이야기는 오늘날 수억 수십억원의 돈을 주고받으며 비리로 얼룩진 사건들이나 지도자들, 가진 자들의 도덕적 해이와 비교해 볼 때 더욱 심금을 울린다.
흔히 우리는 '부자가 3대를 넘기기가 힘들다'는 말을 한다. 부자가 되기도 어렵지만 부자를 지키기도 그만큼 어렵다는 이야기다. 실제 우리 주위 부자들을 둘러봐도 그런 경우가 많다. 재벌들이 허망하게 망하고, 무너져 내리는 모습을 적지 않게 보고 있다. 바둑에서 소위 '대마불사'라는 말이 있지만 승승장구했던 대우의 몰락은 이를 반증한 예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경주 최부자집이 만석을 12대나 이어 왔다는 것은 그 자체로도 좀처럼 깨지기 어려운 기록이요, 신화다. 경주 최부자집은 어떻게 해서 그 같은 신화를 창조할 수 있었을까?
이제 부터 그 이유를 살펴보자. 최부자집은 대대로 내려오는 가훈 내지는 몇 가지 원칙이 있었는데 그 첫째는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은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벼슬이 높아지면 정쟁에 휘말리게 마련인데, 최부자집은 진사에 오르는 것으로, 양반으로서 최소한의 지위를 확보한 다음엔 더 이상 벼슬에 연연하지 않음으로써 정쟁으로 인한 뜻하지 않은 '변(變)'을 미리 막았던 것이다. 요즘 끝없는 명예욕에 재산 날리고 명예에 먹칠을 하는 경우를 자주 보아온 우리로서는 과연 최부자집 다운 철학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지 않는가.
최부자집의 두 번째 가훈은 '재산은 만석 이상을 모으지 말라'이고 셋째는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 네 번째는 '흉년기에는 남의 논밭을 매입하지 말라'이다. 또 다섯 번째는 '최씨 가문 며느리들은 시집온 후 3년 동안 무명옷을 입어라', 여섯 번째는 '사방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이다.
어느 것 하나 버릴 것 없는 금과옥조와 같은 가훈이다. 재산은 만석이상 모으지 말고, 흉년기에는 남의 논밭을 매입하지 말고, 사방 100리 안에 굶어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는 철학은 부자들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아주 명쾌하게 보여주고 있다. 요즘엔 99억원의 재산이 있으면 100억원을 채우기 위해 안달하고 999억원이 있으면 1000억원을 채우기 위해 혈안이다. 끝없는 욕심이다. 뿐만 아니라 흉년기에 남의 논밭을 매입하는 일은 비일비재하고, 사방 100리가 아닌, 바로 이웃집에서 굶어죽어도 '나 몰라라'이다. 이 얼마나 비교되는 부자의 모습인가.
오늘날의 부자와 최부자와 비교되는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가훈은 다섯 번째의 가훈인 '최씨 가문 며느리들은 시집온 후 3년동안 무명옷을 입어라'는 것이다. 국민의 정부가 출범한 후 얼마되지 않아서 '옷로비 사건'으로 떠들썩했던 것을 기억하면 최부자 집의 가훈은 더욱 빛이 난다.
경주 최부자는 지금 그 많던 재산을 영남대학교에 기부하고 '요석궁터'로 알려진 경주시 교동에 옛 부자집의 자취만을 남겨놓고 있다. 경주 법주는 당시 과객들에게 대접하던 술로 지금 명주로 상품화돼 있다.
아무튼 경주 최부자 집에서 전해져 내려오던 삶의 원칙들은 오늘을 사는 현대인들이 반드시 되새겨 봤으면 하는 삶의 원칙이 아닌가 생각한다.
필자는 신정이나 설날, 추석, 또는 여름 휴가 때면 반드시 책 한권이라도 읽자는 내 자신과의 약속을 나름대로 지켜오고 있는데 올 연초에는 '5백년 내력의 명문가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특히 그중에서도 경주 최부자집 이야기는 적지 않은 감동을 주었다. 12대 만석꾼이요, 9대 진사를 배출한 명문가, 최부자집 이야기는 오늘날 수억 수십억원의 돈을 주고받으며 비리로 얼룩진 사건들이나 지도자들, 가진 자들의 도덕적 해이와 비교해 볼 때 더욱 심금을 울린다.
흔히 우리는 '부자가 3대를 넘기기가 힘들다'는 말을 한다. 부자가 되기도 어렵지만 부자를 지키기도 그만큼 어렵다는 이야기다. 실제 우리 주위 부자들을 둘러봐도 그런 경우가 많다. 재벌들이 허망하게 망하고, 무너져 내리는 모습을 적지 않게 보고 있다. 바둑에서 소위 '대마불사'라는 말이 있지만 승승장구했던 대우의 몰락은 이를 반증한 예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경주 최부자집이 만석을 12대나 이어 왔다는 것은 그 자체로도 좀처럼 깨지기 어려운 기록이요, 신화다. 경주 최부자집은 어떻게 해서 그 같은 신화를 창조할 수 있었을까?
이제 부터 그 이유를 살펴보자. 최부자집은 대대로 내려오는 가훈 내지는 몇 가지 원칙이 있었는데 그 첫째는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은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벼슬이 높아지면 정쟁에 휘말리게 마련인데, 최부자집은 진사에 오르는 것으로, 양반으로서 최소한의 지위를 확보한 다음엔 더 이상 벼슬에 연연하지 않음으로써 정쟁으로 인한 뜻하지 않은 '변(變)'을 미리 막았던 것이다. 요즘 끝없는 명예욕에 재산 날리고 명예에 먹칠을 하는 경우를 자주 보아온 우리로서는 과연 최부자집 다운 철학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지 않는가.
최부자집의 두 번째 가훈은 '재산은 만석 이상을 모으지 말라'이고 셋째는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 네 번째는 '흉년기에는 남의 논밭을 매입하지 말라'이다. 또 다섯 번째는 '최씨 가문 며느리들은 시집온 후 3년 동안 무명옷을 입어라', 여섯 번째는 '사방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이다.
어느 것 하나 버릴 것 없는 금과옥조와 같은 가훈이다. 재산은 만석이상 모으지 말고, 흉년기에는 남의 논밭을 매입하지 말고, 사방 100리 안에 굶어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는 철학은 부자들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아주 명쾌하게 보여주고 있다. 요즘엔 99억원의 재산이 있으면 100억원을 채우기 위해 안달하고 999억원이 있으면 1000억원을 채우기 위해 혈안이다. 끝없는 욕심이다. 뿐만 아니라 흉년기에 남의 논밭을 매입하는 일은 비일비재하고, 사방 100리가 아닌, 바로 이웃집에서 굶어죽어도 '나 몰라라'이다. 이 얼마나 비교되는 부자의 모습인가.
오늘날의 부자와 최부자와 비교되는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가훈은 다섯 번째의 가훈인 '최씨 가문 며느리들은 시집온 후 3년동안 무명옷을 입어라'는 것이다. 국민의 정부가 출범한 후 얼마되지 않아서 '옷로비 사건'으로 떠들썩했던 것을 기억하면 최부자 집의 가훈은 더욱 빛이 난다.
경주 최부자는 지금 그 많던 재산을 영남대학교에 기부하고 '요석궁터'로 알려진 경주시 교동에 옛 부자집의 자취만을 남겨놓고 있다. 경주 법주는 당시 과객들에게 대접하던 술로 지금 명주로 상품화돼 있다.
아무튼 경주 최부자 집에서 전해져 내려오던 삶의 원칙들은 오늘을 사는 현대인들이 반드시 되새겨 봤으면 하는 삶의 원칙이 아닌가 생각한다.
장지헌 하남젊은 연대 대표 jjh@koc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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