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전톤 민속주 중에서 안동소주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광주시 남한산성에도 예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민속소주인 산성소주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남한산성은 병자호란 이후 조선말기까지 1천여호가 거주하던 소도읍으로 광주 10년(1906) 현재의 광주시내로 군청을 옮겨지기까지 행궁과 관청이 산성내 있었으며, 부유하고 수준높은 생활을 하던 곳이었다.
갖은 음식들이 궁중음식을 본을 떠서 만들어졌으며, 특히 각 가정에서는 특주를 만들어 즐겨 마셨는데 그 향취와 맛이 좋아 각지에 명물로 이름을 높였다 한다.
산성소주는 술맛이 담백하며 향취가 그윽하고 은은한 것이 특징이다. 전통적으로 재래식 엿과 토종 통밀을 사용해 술을 빚는 점이 독특한데, 엿을 사용함으로써 특이한 주질을 나타내고 저장성을 높이며 숙취를 제거할 수 있다고 한다.
산성소주의 시작은 남한산성을 축조한 조선 선조때 일 것으로 추정되며 대대로 산성내에 살던 이종숙 옹이 오랫동안 산성소주를 빚어오다 일제로부터 허가를 받아 공식적으로 산성소주를 제조해 왔다.
6·25 이후 송파로 옮겨 '백제소주'라는 이름으로 제조하다가 현재 기능보유자인 강석필 옹에게 전수됐으며 94년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13호로 지정받아 오늘에까지 전해져 오고 있다.
산성소주는 매년 남한산성문화제 행사때 향토튿산물로 출품돼 시음회를 갖고 있으며 현재 1일 생산량이 10∼15ℓ밖에 되지 않아 올해 실촌면 연곡리에 제조공장을 설립할 예정이다.
판매가는 400㎖ 1본에 1만6천원, 800㎖는 3만1천500원이다. 문의 769-1100.
남한산성은 병자호란 이후 조선말기까지 1천여호가 거주하던 소도읍으로 광주 10년(1906) 현재의 광주시내로 군청을 옮겨지기까지 행궁과 관청이 산성내 있었으며, 부유하고 수준높은 생활을 하던 곳이었다.
갖은 음식들이 궁중음식을 본을 떠서 만들어졌으며, 특히 각 가정에서는 특주를 만들어 즐겨 마셨는데 그 향취와 맛이 좋아 각지에 명물로 이름을 높였다 한다.
산성소주는 술맛이 담백하며 향취가 그윽하고 은은한 것이 특징이다. 전통적으로 재래식 엿과 토종 통밀을 사용해 술을 빚는 점이 독특한데, 엿을 사용함으로써 특이한 주질을 나타내고 저장성을 높이며 숙취를 제거할 수 있다고 한다.
산성소주의 시작은 남한산성을 축조한 조선 선조때 일 것으로 추정되며 대대로 산성내에 살던 이종숙 옹이 오랫동안 산성소주를 빚어오다 일제로부터 허가를 받아 공식적으로 산성소주를 제조해 왔다.
6·25 이후 송파로 옮겨 '백제소주'라는 이름으로 제조하다가 현재 기능보유자인 강석필 옹에게 전수됐으며 94년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13호로 지정받아 오늘에까지 전해져 오고 있다.
산성소주는 매년 남한산성문화제 행사때 향토튿산물로 출품돼 시음회를 갖고 있으며 현재 1일 생산량이 10∼15ℓ밖에 되지 않아 올해 실촌면 연곡리에 제조공장을 설립할 예정이다.
판매가는 400㎖ 1본에 1만6천원, 800㎖는 3만1천500원이다. 문의 769-1100.
한근영기자 young@koc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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