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가 가끔씩 시리거나 통증이 있다면 일찌감치 치과를 찾아가서 적절한 조치나 치료를 하는 것이 상식적인 일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치과의 드릴(drill)소리에 주눅이 들거나 또는 이러다가 어떻게 좋아지기도 하겠지 하는 막연한 희망에 따라 치과에 가는 것을 꺼리기도 한다.
특히, 풍치(風齒)의 경우에는 평소에 구강을 청결하게 하고 지속적으로 치석의 제거(scaling)를 해야 만이 예방할 수 있는데도, 그에 대하여 관심이 없거나 게으름을 피우다가 결국은 영구치를 뽑아내고 의치를 해야 하는 사태에 이르게 된다.
뒤늦게 사 별별 종류의 약들을 복용하고 칼슘 등이 함유된 음식을 무더기로 섭취한다고 하더라도 치통에 따른 고통과 소화불량 등에 따른 신체적 부담이 갈수록 커지기 때문에 결국은 그 '앓던 이'를 뽑아 낼 수밖에 없다.
자기관리에 대한 지난날의 잘못과 시행착오를 발본색원해야 만이 그 고통과 부담에서 벗어 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문제의 치아가 무엇인지 잘못되고 있다는 점을 느끼고 있으면서도 모른 척하고 있다가, 잇몸이 붓고 치아에 통증이 찾아와도 제대로 치료하지도 않고, 피고름이 입안에 가득차고 치아가 흔들거리는 등 도저히 견딜 수 없는 고통 때문에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음에도, 그 앓고 있는 이가 언젠가는 건강한 상태로 돌아갈 것이라고 굳게 믿으면서 '고행'의 나날을 보내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의 초인적인 인내심에 우리는 감동과 존경을 보내야 할 것인가.
10·25 재보선에서 여권이 참패하고 나서는 너 때문에 망했으니 물러가라, 너는 얼마나 잘 했느냐 의리가 없는 사람들이다, 좋다 최고의원들이 모두 시퇴하겠다 등 등 자기들끼리 치고 패고 곤두박질하는 추태를 바라보면서 우리는 쓴웃음만 지을 뿐이다.
어째서, 소위 민심이 등을 돌리고 정국이 혼란에 빠졌는지를 그들은 너무 잘 알고 있다. 잘 알고 있으면서도 그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생각들은 안하고 우리의 '뛰어난' 정치인들은 대권이네 당권이네를 잡기 위하여 엉뚱한 방향으로 우리의 눈길을 돌리게 하려는 것 같다.
하긴 그렇다. 사람에게는 정이라는 것도 있고 의리라는 것도 있는데 지금까지의 동지요 친구였던 사람들이 어느 정도의 허물이 있다 손치더라도 어찌 안면몰수를 한단 말인가. 만날 때마다 기분좋은 술판을 챙겨주고 항상 웃는 얼굴로 두둑한 용돈이나 선물을 찔러주는 예의바른 '동생'이 일을 잘못 처리하여 비리네 의혹이네 구설수에 오르내린다고 해서 어찌 '칼질'을 해댈 수 있단 말인가.
개인간의 관계에 있어서 정(情)과 의리(義理)는 아름다운 현상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 정 또는 의리라는 것은 가치를 수반하고 있어야 만이 그러한 표현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 해도, 국가나 지방자치제의 문제에 있어서 즉 공익차원에서는 그러한 용어들이 비집고 들어가는 일이 있어서는 절대로 안된다. 국가의 기강과 지역의 민심을 이반시키고 경제와 재정상태를 파탄시키면서 까지 정과 의리를 들먹인다는 것은 차라리 코미디가 아닐 수 없다.
이 나라와 사회는 평소에 공명정대한 정책을 시행하지 않고 지속적인 부조리의 제거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풍치'의 질환을 앓고 있는 것이다. 온갖 비리와 모순으로 곪아버린 '치아'를 덮어둔다고 이 고통과 부담이 해결되지는 않는다. 정과 의리 때문에 머뭇거리다가는 위태로운 지경으로 그 질환이 확산될 수 있다. 불문곡직하고 '앓던 이'를 뽑아내어야만 그 고통과 부담이 종식되는 것이다.
이 땅의 주인이자 유권자인 우리들도 무책임한 선동과 분별없는 감정의 기류에 휘말려 잘못된 선거의 결과를 만들어 놓고 끊임없이 '이 앓이'를 하고 있다. 다음 선거에서도 또 다시 정신을 못차리고 시행착오를 해야 할 것인가. '눈물을 머금고' 라도 앓던 이를 뽑아버려야 한다. 그리고 새로운 시대로 진입하는 것이다.
특히, 풍치(風齒)의 경우에는 평소에 구강을 청결하게 하고 지속적으로 치석의 제거(scaling)를 해야 만이 예방할 수 있는데도, 그에 대하여 관심이 없거나 게으름을 피우다가 결국은 영구치를 뽑아내고 의치를 해야 하는 사태에 이르게 된다.
뒤늦게 사 별별 종류의 약들을 복용하고 칼슘 등이 함유된 음식을 무더기로 섭취한다고 하더라도 치통에 따른 고통과 소화불량 등에 따른 신체적 부담이 갈수록 커지기 때문에 결국은 그 '앓던 이'를 뽑아 낼 수밖에 없다.
자기관리에 대한 지난날의 잘못과 시행착오를 발본색원해야 만이 그 고통과 부담에서 벗어 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문제의 치아가 무엇인지 잘못되고 있다는 점을 느끼고 있으면서도 모른 척하고 있다가, 잇몸이 붓고 치아에 통증이 찾아와도 제대로 치료하지도 않고, 피고름이 입안에 가득차고 치아가 흔들거리는 등 도저히 견딜 수 없는 고통 때문에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음에도, 그 앓고 있는 이가 언젠가는 건강한 상태로 돌아갈 것이라고 굳게 믿으면서 '고행'의 나날을 보내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의 초인적인 인내심에 우리는 감동과 존경을 보내야 할 것인가.
10·25 재보선에서 여권이 참패하고 나서는 너 때문에 망했으니 물러가라, 너는 얼마나 잘 했느냐 의리가 없는 사람들이다, 좋다 최고의원들이 모두 시퇴하겠다 등 등 자기들끼리 치고 패고 곤두박질하는 추태를 바라보면서 우리는 쓴웃음만 지을 뿐이다.
어째서, 소위 민심이 등을 돌리고 정국이 혼란에 빠졌는지를 그들은 너무 잘 알고 있다. 잘 알고 있으면서도 그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생각들은 안하고 우리의 '뛰어난' 정치인들은 대권이네 당권이네를 잡기 위하여 엉뚱한 방향으로 우리의 눈길을 돌리게 하려는 것 같다.
하긴 그렇다. 사람에게는 정이라는 것도 있고 의리라는 것도 있는데 지금까지의 동지요 친구였던 사람들이 어느 정도의 허물이 있다 손치더라도 어찌 안면몰수를 한단 말인가. 만날 때마다 기분좋은 술판을 챙겨주고 항상 웃는 얼굴로 두둑한 용돈이나 선물을 찔러주는 예의바른 '동생'이 일을 잘못 처리하여 비리네 의혹이네 구설수에 오르내린다고 해서 어찌 '칼질'을 해댈 수 있단 말인가.
개인간의 관계에 있어서 정(情)과 의리(義理)는 아름다운 현상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 정 또는 의리라는 것은 가치를 수반하고 있어야 만이 그러한 표현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 해도, 국가나 지방자치제의 문제에 있어서 즉 공익차원에서는 그러한 용어들이 비집고 들어가는 일이 있어서는 절대로 안된다. 국가의 기강과 지역의 민심을 이반시키고 경제와 재정상태를 파탄시키면서 까지 정과 의리를 들먹인다는 것은 차라리 코미디가 아닐 수 없다.
이 나라와 사회는 평소에 공명정대한 정책을 시행하지 않고 지속적인 부조리의 제거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풍치'의 질환을 앓고 있는 것이다. 온갖 비리와 모순으로 곪아버린 '치아'를 덮어둔다고 이 고통과 부담이 해결되지는 않는다. 정과 의리 때문에 머뭇거리다가는 위태로운 지경으로 그 질환이 확산될 수 있다. 불문곡직하고 '앓던 이'를 뽑아내어야만 그 고통과 부담이 종식되는 것이다.
이 땅의 주인이자 유권자인 우리들도 무책임한 선동과 분별없는 감정의 기류에 휘말려 잘못된 선거의 결과를 만들어 놓고 끊임없이 '이 앓이'를 하고 있다. 다음 선거에서도 또 다시 정신을 못차리고 시행착오를 해야 할 것인가. '눈물을 머금고' 라도 앓던 이를 뽑아버려야 한다. 그리고 새로운 시대로 진입하는 것이다.
곽근홍 논설위원 kkh@kocus.com
<저작권자 © 교차로저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하남] "3호선 첫 삽도 안 떴는데...감일에 또 6,500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