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칭 사적범위 확대지정 등 해결돼야
서울대 최몽룡 교수 "유적의 寶庫 관광자원개발해야"
미사동유적은 70년대초 미사섬의 북쪽지역을 중심으로 간단한 조사를 실시하여 국내 최대의 선사유적지임을 확인했다. 그 뒤 92년까지 두차례에 걸친 서울대 등 합동발굴조사를 통해 선사시대 무문토기, 백제시대경작지, 여(呂)자형 집터 등이 추가 발굴되면서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지난 8월 2일 시작된 사적 제269호인 미사동 선사유적지를 시굴조사한 세종대박물관팀은 미사동 335-7번지 일대에서 신석기시대 화덕자리와 청동기시대의 구덩이, 도랑유구가 발견됐다. 또 삼국초기 백제시대의 집터와 굴립유구가 발견돼 90년대초 발굴과정에서 조사된 유구의 성격을 뒷받침하고 있다. 특히 집터서 철제가래 민무늬토기조각이 출토돼 한강유역 고대문화성격 해석에 중요 유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유적범위 파악 보존 대책수립 위해 시굴
미사동유적은 지난 발굴에서 신석기시대의 대표적인 유적으로 신석기시대부터 삼국시대 초기에 이르는 문화층이 있음이 조사되었다. 또한 이곳에는 대규모의 취락지가 있었음이 밝혀진 바 있다.
또 미사동유적은 한강변의 일부 지역이 사적(史蹟)으로 지정되어 있으나, 주변지역이 경작지로 이용되고 있으며, 특히 최근에는 주택·축사 그리고 음식점 건축이 무분별하게 난립되고 있어 유적의 파괴가 적지 않게 이루어지고 있는 실정으로, 이번 시굴조사는 유적의 파괴를 사전에 방지하기 위하여 유적의 범위를 파악하고 효과적인 보존 대책을 수립하고자 하는데 목적이 있었다.
미사동유적의 조사경과는 ▷60년 서울대 김원룡 교수가 유적을 발견하여 학계에 소개했으며, 미사섬의 북서쪽 단애면에서 신석기시대 빗살무늬토기와 간석기를 발견했다. 70년대초 미사섬의 북쪽지역을 중심으로 간단한 조사를 실시하여 인근의 서울 암사동유적과 성격이 비슷하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어 79년 미사동 557-1번지 일대 2만6천364㎡에 대하여 사적 제269호로 지정했으며, 80년 유적의 성격규명을 위한 연합발굴조사를 실시한 결과 신석기시대뿐만 아니라 청동기·초기철기시대 유적도 조사됐다. 87년부터 92년까지 경기지역 한강종합개발사업의 일환으로 3차에 걸쳐 발굴조사 실시했으며, 95∼96 ,98∼99년에 세종대학교 박물관 주관으로 실시된 미사동 선사유적 지표조사와 지난해에는 정밀지표조사 실시했다.
최근 경작과 건물신축으로 유적의 주변에 대한 현상변경이 진행되고 있어 조사가 시급한 실정이었다.
훼손우려되는 지역 우선 시굴
이번 시굴조사는 유적의 주변지역 가운데 경작이 되고 있는 곳(국유지)과 현상변경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은 지역(민원대상지역)을 중심으로 모두 7개 지구에 대하여 이루어졌다.
1ㆍ3ㆍ5ㆍ6ㆍ7지구는 민원대상지역으로 조사결과, 특별한 유구나 유물은 발견되지 않았다.
2지구(미사동 576-5∼7번지)에서는 축사신축에 따른 민원대상지역으로 현재 조사는 대부분 완료된 상태이며, 이곳에서는 도랑 유구가 4곳에서 확인되었으며, 빗살무늬토기가 출토되기도 했다. 빗살무늬토기는 7∼8층 사이에서 출토됐다.
유구와 유물의 분포상태를 보면, 조사지역의 중앙과 서북쪽에 위치하며 조사된 유구의 일부분이 조사대상 지역의 밖에도 매장되어 있음이 확인됐다.
첫 번째 도랑 유구는 검은색 퇴적층(5층) 즉 민무늬토기 문화층에서 발견됐는데, 물이 흘렀던 흔적이 일부 관찰되었으며, 유구 안과 밖에서는 민무늬토기의 조각들이 출토됐으나 대부분 작은 조각이고 밑부분과 입술이 남아 있는 것은 몇 점에 불과했다.
도랑의 크기와 형태는 조사된 것이 하나로 연결되며 평면형태가 방형을 이루며, 도랑의 너비는 약30∼50cm이고, 깊이는 30cm 안팎이다. 도랑의 형태와 경사도로 보아 물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흘렀을 것으로 추정하며, 조사된 유구의 대부분은 조사대상 지역의 바깥부분인 남쪽에 묻혀있는 것으로 드러나 확대조사가 필요한 것으로 밝혀졌다.
두 번째 도랑유구는 앞의 도랑유구보다 규모가 크고 토기 등 유물의 출토 양도 많았다. 이 도랑도 서로 연결되는 것처럼 보여지며, 정확한 크기와 셩격 규명을 위하여 앞으로 발굴조사가 필요한 상태다.
집터서 철제가래 민무늬토기조각 출토
출토된 유물은 대부분 유구의 가운데와 양쪽 가장자리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그 중에 바리모양의 민무늬토기 1점이 깨진 채로 출토됐다. 도랑유구의 평면형태는 방형이며, 너비는 약 50∼100cm이고, 깊이는 30cm안팎이다. 이 유구도 밭경작지로 향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확대조사가 필요한 실정이다.
4지구(미사동 567-1번지 일원)에 대한 조사도 현재 대부분 완료된 상태이며, 이곳에서는 초기 삼국시대의 집터 1기를 찾아냈다.
발견된 집터 안쪽에서 경질 민무늬토기조각이 10여점 출토됐고 철제 가래도 1점 발견됐다. 민무늬토기는 대부분 조각이었으나 밑조각을 발견 대강의 기형을 추정할 수 있게 됐다. 철제 가래는 U자형이고, 나무 몸체를 끼울 수 있도록 안쪽에 홈이 있다.
가래는 초기철기시대부터 사용된 농기구로 한강유역의 다른 유적에서 찾아진 것보다 시기가 약간 빠른 것으로 시굴단은 해석했다.
4-1지구(미사동 570번지 일원) 이곳은 90년초에 발굴되어 사적으로 지정된 지역과 가까운 곳으로 한강변에 만들어진 제방의 남쪽 밭경작지로 이곳에 대한 조사는 12개의 구덩을 설치하여 유구와 유물의 존재를 확인했다.
조사된 구덩은 모두 민무늬토기층까지 조사했으며, 그 가운데 몇 개의 구덩이는 신석기시대 문화층까지도 조사했다. 조사결과, 굴립주로 해석되는 구멍자리와 도랑유구 및 화덕자리 등을 찾아냈다. 이곳에서 출토된 유물중에는 제기형 붉은 간토기조각과 어망추, 구순각목문 민무늬토기 및 공열민무늬토기 등이 있다.
4-2지구(미사동 562∼567-2, 580번지 일원)시굴구덩에서는 삼국시대 토기와 경질 민무늬토기가 출토되었다.
한강유역 고대문화성격 해석에 중요
이번 시굴조사는 미사동유적의 범위파악을 위해 실시됐기 때문에 상당히 제한된 지역에서 이루어졌다. 조사대상 지역은 현재 사적으로 지정된 부근의 국유지와 축사 신축을 위한 민원대상지역이며, 대부분의 유구와 유물은 사적지의 부근에서 발견됐다.
이번 시굴조사에서는 신석기시대의 화덕자리와 청동기시대의 구덩이, 도량유구 그리고 초기 삼국시대의 집터와 굴립주유구가 발견돼 90년 초의 발굴과정에서 조사된 유구와 그 성격이 비슷하여 미사동유적의 성격 해석에 도움이 되고 있다.
초기 삼국시대의 집터에서 발견된 철제 가래와 곡물·경질 민무늬토기는 기원전후의 한강유역에 발달하였던 문화성격을 규명하는데 중요한 것으로 평가됐다.
특히 철제 가래는 그 제작시기가 다른 유적보다 상당히 빠르고, 한강유역에서는 가장 이른 시기에 해당하는 것으로 밝혀져 주목된다. 이런 점에서 초기 삼국시대 이후의 미사동유적에서 이루어진 경작 문제는 한강유역의 고대 문화성격을 해석하는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며 앞으로 부근의 이성산성·몽촌토성·풍납토성과의 비교검토 연구가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시국조사단은 판단하고 있다.
이번 시굴조사에서는 미사동유적의 퇴적관계를 파악하는 동시에 섬의 형성에 대한 지질학적 분석도 병행하고 있다. 현재까지 밝혀진 결과로는 섬의 남서쪽에 샛강이 흘렀던 것으로 추전하며, 퇴적관계로 보아 습지성 물줄기가 상당히 오랜기간 있었던 것으로 보고있다.
따라서 미사섬 크기와 퇴적은 기존의 여러 의견 및 연구결과와는 차이가 있는 것으로, 이 문제는 공동연구 기관인 한국자원연구소에서 퇴적관계 분석을 진행하고 있으므로 보다 자세한 연구결과가 밝혀질 것으로 보고있다.
미사동유적의 시기별 연대를 전체적으로 파악하기 위한 하나의 연구방법으로 현재 고지자기 측량을 진행하고 있다고 조사단은 밝혔다.
명칭 사적범위 확대지정 등 해결돼야
지금까지 미사동유적에 대한 발굴과정에서 방사성탄소연대측정 결과에 의하여 부분적으로 절대연대가 제시됐지만, 이번 조사에서는 시굴구덩이에서 얻어진 자료를 중심으로 지층별 연대를 전체적으로 파악키로 했으며, 이번 시굴조사에서 발견된 숯은 방사성탄소연대측정을 할 계획으로 있다.
조사단은 현재 '광주 미사리 선사유적'(사적 제269호)으로 등록된 미사동유적의 사적명칭 수정문제와 국유지와 사유지가 포함되어 있어 사적범위 확대지정, 시굴대상지역에서는 조사된 유구의 향후 처리방안, 민원대상지역의 처리문제 등이 논의되고 해결돼야 할 것으로 지적했다.
서울대 최몽룡 교수 "유적의 寶庫 관광자원개발해야"
미사동유적은 70년대초 미사섬의 북쪽지역을 중심으로 간단한 조사를 실시하여 국내 최대의 선사유적지임을 확인했다. 그 뒤 92년까지 두차례에 걸친 서울대 등 합동발굴조사를 통해 선사시대 무문토기, 백제시대경작지, 여(呂)자형 집터 등이 추가 발굴되면서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지난 8월 2일 시작된 사적 제269호인 미사동 선사유적지를 시굴조사한 세종대박물관팀은 미사동 335-7번지 일대에서 신석기시대 화덕자리와 청동기시대의 구덩이, 도랑유구가 발견됐다. 또 삼국초기 백제시대의 집터와 굴립유구가 발견돼 90년대초 발굴과정에서 조사된 유구의 성격을 뒷받침하고 있다. 특히 집터서 철제가래 민무늬토기조각이 출토돼 한강유역 고대문화성격 해석에 중요 유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유적범위 파악 보존 대책수립 위해 시굴
미사동유적은 지난 발굴에서 신석기시대의 대표적인 유적으로 신석기시대부터 삼국시대 초기에 이르는 문화층이 있음이 조사되었다. 또한 이곳에는 대규모의 취락지가 있었음이 밝혀진 바 있다.
또 미사동유적은 한강변의 일부 지역이 사적(史蹟)으로 지정되어 있으나, 주변지역이 경작지로 이용되고 있으며, 특히 최근에는 주택·축사 그리고 음식점 건축이 무분별하게 난립되고 있어 유적의 파괴가 적지 않게 이루어지고 있는 실정으로, 이번 시굴조사는 유적의 파괴를 사전에 방지하기 위하여 유적의 범위를 파악하고 효과적인 보존 대책을 수립하고자 하는데 목적이 있었다.
미사동유적의 조사경과는 ▷60년 서울대 김원룡 교수가 유적을 발견하여 학계에 소개했으며, 미사섬의 북서쪽 단애면에서 신석기시대 빗살무늬토기와 간석기를 발견했다. 70년대초 미사섬의 북쪽지역을 중심으로 간단한 조사를 실시하여 인근의 서울 암사동유적과 성격이 비슷하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어 79년 미사동 557-1번지 일대 2만6천364㎡에 대하여 사적 제269호로 지정했으며, 80년 유적의 성격규명을 위한 연합발굴조사를 실시한 결과 신석기시대뿐만 아니라 청동기·초기철기시대 유적도 조사됐다. 87년부터 92년까지 경기지역 한강종합개발사업의 일환으로 3차에 걸쳐 발굴조사 실시했으며, 95∼96 ,98∼99년에 세종대학교 박물관 주관으로 실시된 미사동 선사유적 지표조사와 지난해에는 정밀지표조사 실시했다.
최근 경작과 건물신축으로 유적의 주변에 대한 현상변경이 진행되고 있어 조사가 시급한 실정이었다.
훼손우려되는 지역 우선 시굴
이번 시굴조사는 유적의 주변지역 가운데 경작이 되고 있는 곳(국유지)과 현상변경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은 지역(민원대상지역)을 중심으로 모두 7개 지구에 대하여 이루어졌다.
1ㆍ3ㆍ5ㆍ6ㆍ7지구는 민원대상지역으로 조사결과, 특별한 유구나 유물은 발견되지 않았다.
2지구(미사동 576-5∼7번지)에서는 축사신축에 따른 민원대상지역으로 현재 조사는 대부분 완료된 상태이며, 이곳에서는 도랑 유구가 4곳에서 확인되었으며, 빗살무늬토기가 출토되기도 했다. 빗살무늬토기는 7∼8층 사이에서 출토됐다.
유구와 유물의 분포상태를 보면, 조사지역의 중앙과 서북쪽에 위치하며 조사된 유구의 일부분이 조사대상 지역의 밖에도 매장되어 있음이 확인됐다.
첫 번째 도랑 유구는 검은색 퇴적층(5층) 즉 민무늬토기 문화층에서 발견됐는데, 물이 흘렀던 흔적이 일부 관찰되었으며, 유구 안과 밖에서는 민무늬토기의 조각들이 출토됐으나 대부분 작은 조각이고 밑부분과 입술이 남아 있는 것은 몇 점에 불과했다.
도랑의 크기와 형태는 조사된 것이 하나로 연결되며 평면형태가 방형을 이루며, 도랑의 너비는 약30∼50cm이고, 깊이는 30cm 안팎이다. 도랑의 형태와 경사도로 보아 물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흘렀을 것으로 추정하며, 조사된 유구의 대부분은 조사대상 지역의 바깥부분인 남쪽에 묻혀있는 것으로 드러나 확대조사가 필요한 것으로 밝혀졌다.
두 번째 도랑유구는 앞의 도랑유구보다 규모가 크고 토기 등 유물의 출토 양도 많았다. 이 도랑도 서로 연결되는 것처럼 보여지며, 정확한 크기와 셩격 규명을 위하여 앞으로 발굴조사가 필요한 상태다.
집터서 철제가래 민무늬토기조각 출토
출토된 유물은 대부분 유구의 가운데와 양쪽 가장자리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그 중에 바리모양의 민무늬토기 1점이 깨진 채로 출토됐다. 도랑유구의 평면형태는 방형이며, 너비는 약 50∼100cm이고, 깊이는 30cm안팎이다. 이 유구도 밭경작지로 향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확대조사가 필요한 실정이다.
4지구(미사동 567-1번지 일원)에 대한 조사도 현재 대부분 완료된 상태이며, 이곳에서는 초기 삼국시대의 집터 1기를 찾아냈다.
발견된 집터 안쪽에서 경질 민무늬토기조각이 10여점 출토됐고 철제 가래도 1점 발견됐다. 민무늬토기는 대부분 조각이었으나 밑조각을 발견 대강의 기형을 추정할 수 있게 됐다. 철제 가래는 U자형이고, 나무 몸체를 끼울 수 있도록 안쪽에 홈이 있다.
가래는 초기철기시대부터 사용된 농기구로 한강유역의 다른 유적에서 찾아진 것보다 시기가 약간 빠른 것으로 시굴단은 해석했다.
4-1지구(미사동 570번지 일원) 이곳은 90년초에 발굴되어 사적으로 지정된 지역과 가까운 곳으로 한강변에 만들어진 제방의 남쪽 밭경작지로 이곳에 대한 조사는 12개의 구덩을 설치하여 유구와 유물의 존재를 확인했다.
조사된 구덩은 모두 민무늬토기층까지 조사했으며, 그 가운데 몇 개의 구덩이는 신석기시대 문화층까지도 조사했다. 조사결과, 굴립주로 해석되는 구멍자리와 도랑유구 및 화덕자리 등을 찾아냈다. 이곳에서 출토된 유물중에는 제기형 붉은 간토기조각과 어망추, 구순각목문 민무늬토기 및 공열민무늬토기 등이 있다.
4-2지구(미사동 562∼567-2, 580번지 일원)시굴구덩에서는 삼국시대 토기와 경질 민무늬토기가 출토되었다.
한강유역 고대문화성격 해석에 중요
이번 시굴조사는 미사동유적의 범위파악을 위해 실시됐기 때문에 상당히 제한된 지역에서 이루어졌다. 조사대상 지역은 현재 사적으로 지정된 부근의 국유지와 축사 신축을 위한 민원대상지역이며, 대부분의 유구와 유물은 사적지의 부근에서 발견됐다.
이번 시굴조사에서는 신석기시대의 화덕자리와 청동기시대의 구덩이, 도량유구 그리고 초기 삼국시대의 집터와 굴립주유구가 발견돼 90년 초의 발굴과정에서 조사된 유구와 그 성격이 비슷하여 미사동유적의 성격 해석에 도움이 되고 있다.
초기 삼국시대의 집터에서 발견된 철제 가래와 곡물·경질 민무늬토기는 기원전후의 한강유역에 발달하였던 문화성격을 규명하는데 중요한 것으로 평가됐다.
특히 철제 가래는 그 제작시기가 다른 유적보다 상당히 빠르고, 한강유역에서는 가장 이른 시기에 해당하는 것으로 밝혀져 주목된다. 이런 점에서 초기 삼국시대 이후의 미사동유적에서 이루어진 경작 문제는 한강유역의 고대 문화성격을 해석하는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며 앞으로 부근의 이성산성·몽촌토성·풍납토성과의 비교검토 연구가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시국조사단은 판단하고 있다.
이번 시굴조사에서는 미사동유적의 퇴적관계를 파악하는 동시에 섬의 형성에 대한 지질학적 분석도 병행하고 있다. 현재까지 밝혀진 결과로는 섬의 남서쪽에 샛강이 흘렀던 것으로 추전하며, 퇴적관계로 보아 습지성 물줄기가 상당히 오랜기간 있었던 것으로 보고있다.
따라서 미사섬 크기와 퇴적은 기존의 여러 의견 및 연구결과와는 차이가 있는 것으로, 이 문제는 공동연구 기관인 한국자원연구소에서 퇴적관계 분석을 진행하고 있으므로 보다 자세한 연구결과가 밝혀질 것으로 보고있다.
미사동유적의 시기별 연대를 전체적으로 파악하기 위한 하나의 연구방법으로 현재 고지자기 측량을 진행하고 있다고 조사단은 밝혔다.
명칭 사적범위 확대지정 등 해결돼야
지금까지 미사동유적에 대한 발굴과정에서 방사성탄소연대측정 결과에 의하여 부분적으로 절대연대가 제시됐지만, 이번 조사에서는 시굴구덩이에서 얻어진 자료를 중심으로 지층별 연대를 전체적으로 파악키로 했으며, 이번 시굴조사에서 발견된 숯은 방사성탄소연대측정을 할 계획으로 있다.
조사단은 현재 '광주 미사리 선사유적'(사적 제269호)으로 등록된 미사동유적의 사적명칭 수정문제와 국유지와 사유지가 포함되어 있어 사적범위 확대지정, 시굴대상지역에서는 조사된 유구의 향후 처리방안, 민원대상지역의 처리문제 등이 논의되고 해결돼야 할 것으로 지적했다.
문영일 기자 ondesk@koc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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