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이전-오피니언칼럼
미사동 선사유적지를 보존하자
잘 알고 있는 바와 같이 미사동 선사유적은 과거 1960년대 처음 학계에 알려진 이후, 1980년대 본격적인 발굴을 거쳐 그 실체를 드러내게 되었다. 당시 미사동 유적은 발굴 결과, 신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 그리고 원삼국시대, 삼국시대 등 여러 시대의 유구와 유물이 다량으로 출토되었다.

신석기시대의 유물로는 토기류(빗살무늬토기)와 석기류(화살촉, 돌도끼, 그물추) 등이 출토 되었으며, 청동기시대의 유구로는 37기에 달하는 움집터와 34기의 소형 저장공, 노지 등이 조사되었고 유물은 토기류와 석기류가 출토되었으며, 토기류 외의 토제품으로는 어망추와 방추차가 발견되었다. 석기류는 마제 석검, 반월형 석도, 석부, 석촉 등이 출토되었고 그밖에 장신구로 사용된 관옥, 곡옥 파편도 발견되었다.

원삼국시대의 유구는 수혈주거지와 고상식 건물 저장공 등이 출토되었다. 주거지 내부의 시설로는 노지와 화덕이 발견되었다. 화덕의 등장은 주거지의 구조와 난방 및 조리에 획기적인 발전이라고 한다.

백제시대의 유구는 최상층에서 확인되었는데. 주거지와 저장공, 고상식 건물 등이다. 특히, 이 유적에서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백제시대의 밭이 조사되었다. 이 밭은 층위를 달리하여 상층 밭과 하층 밭으로 되어 있는데, 상층 밭은 약 3,000여 평 정도의 대규모 밭이며, 밭의 사용시기는 대략 6세기경으로 추정되고 있고, 하층 밭은 그 보다 앞선 시기의 것으로 약 1700여 평이며 4∼5세기경 또는 그 이전에 사용되었던 밭으로 추정되고 있다. 백제시대의 유물은 토기류와 철기류 등이 있는데 주로 토기류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당시에 발굴했던 미사동 유적은 둑을 쌓는 제방공사로 인하여 현재는 그 흔적도 찾기 힘들다. 인근의 암사동 선사유적은 발굴 후 유적공원으로 만들어 잘 보존하고 있는데 비해, 미사동은 발굴 후 보존하지 못하고 흙으로 덮어버렸다.(당시 제방공사를 담당했던 경기도 공영개발단은 몇 십년마다 반복되고 있는 홍수에 대비하고, 미사동 선사유적을 보호하기 위해서 제방을 쌓는다고 하였음)

지난 10월 9일 미사동 선사유적 발굴현장에서 현장설명회(지도위원회)가 있었다. 하남시의 의뢰로 세종대학 박물관이 둑을 쌓은 지역 안 쪽을 발굴한 결과 집터와 화덕자리, 불에 탄 곡물, 경질 민무늬토기, 철제 가래 등이 출토되었다.

미사동 선사유적지는 하남시 뿐만 아니라 국가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유적이다. 이러한 유적을 보호하고 지키는 것은 일차적으로 시 당국이나 시민들의 몫이다. 유적은 한번 사라지면 되찾을 수가 없다. 과거 발굴했던 유적은 이미 없어졌지만 이제부터라도 늦지는 않다. 앞으로 하남시에서 발굴하는 유적은 유적공원으로 만들어서 시민들의 휴식과 학생들의 역사 학습장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하남시에는 많은 유적지가 있지만 실제로는 별로 볼거리가 없다고 한다. 복원된 유적도 없고 또 그곳에서 출토된 유물을 전시하는 전시관이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하남시에서는 상당한 유물이 출토되었지만 무엇이 출토되었는지 조차 잘 모르는 것이 현실이다.





김세민 교수  ksm@kocus.com

<저작권자 © 교차로저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세민 교수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개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