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시 남종면 분원리 조선백자도요지가 조선시대 관요인 왕실도자기를 제작하던 곳으로 재 확인됐다.
지난 6월부터 분원리 산5, 116, 117-3, 4번지 일대를 발굴조사를 벌이고 있는 이화여대 박물관(단장 윤난지)은 지난 10일 발굴조사 현장설명회를 통해 가마 4기와 폐기장으로 추정되는 원형유구 3기, 일제시대 건물지 1기가 확인됐고, 가마 유구로 추정되는 소토부와 공방지로 추정되는 유구가 곳곳에 잔존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으며, 조선시대 관요인 분원으로서 왕실은 물론 흥선대원군이 거주하는 운현궁에 필요한 자기를 제작하던 곳이라고 밝혔다.
이화여대 박물관은 B지구 남쪽평탄면에서 가마 3기(2,3,4호)가 확인됐고, 단면상 3호가마 아래에 또하나의 가마가 잔존하고 있음을 확인했다며, 3,4호 가마는 일제시대 건물지 하무에서 조사됐는데 이 건물은 가마의 기반암인 풍화암반토롤 파고 조성돼 하부의 가마소성부가 대부분 파괴된 상태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발굴팀은 또 이번 조사에서 대접, 발, 완, 접시, 잔, 제기 등의 백자와 향로, 벼루, 연적 등의 다양한 기형의 파편들을 발굴했다.
백자는 청화백자와 순백자며, 청화백자의 문양은 壽福(수복)문 초화문이 대부분이며, 국화문, 용문, 나비, 사군자 등도 있다. 명문은 청화로 汾院(분원), 雲峴(운현), 大(대) 등이 음각으로 '上', '元' 등이 확인돼 이 유적이 조선시대 관요인 분원으로서 왕실은 물론 흥선대원군이 거주하는 운현궁에 필요한 자기를 제작하던 곳임을 확인했다.
그 밖에도 언문이 음각된 자기편도 출토됐다. 시문기법은 청화, 양각, 음각, 투각 등이 보이며, 태토는 정선 것으로 대개 순백색을 띠며, 유약은 굽 안바닥까지 전면에 시유됐다. 유색은 질에 따라 다양한 색상이 나타나고 있는데 질이 좋은 자기는 유백색과 설백, 그리고 청백색을 띠고, 질이 떨어지는 자기는 회백색 혹은 황백색을 띠고 있다.
燔法(번법)은 갑발을 씌워 구운 匣燔(갑번)과 포개구이한 常燔(상번)이 주를 이루고 있는데, 특히 갑발에 '甲'(갑)이라는 음각명문이 새겨진 예가 많아 가마 재임당시부터 제품의 품질을 구분했던 것으로 보인다.
요도구로는 갑발과 도짐 등이 있는데, 폐자기를 활용한 것으로 보이는 유물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 갑발은 백토로 제작했으며 종형, 사발형, 원통형 등의 다양한 기형이 보이며, 도짐은 경사진 원반형 도침이 대종을 이루고, 원통형 도짐이 있다.
A지구퇴적층 출토유물은 순백자가 대다수를 이룬다. 이 지역에서는 발, 대접 등의 식기류가 대부분이며 그 외 연적, 벼루 등의 문방구류, 병, 향로 등의 생활자기가 소량 출토됐다.
이화여대 박물관은 전체적인 유물의 양상을 크게 2개 형식으로 구분, A지구의 하부 퇴적층과 B지구 2호가마는 대체로 상품(上品)이며, A지구 상부 퇴적층은 하품(下品)으로 나타나고 있다.
한편 이화여대 박물관은 이 유적은 조선후기∼말기까지 작업한 왕실관요 요장 가운데 최초이자 최대의 가마터이나 이번 발굴조사 기간만으로는 그 전모를 밝히기는 부족하며 최소 3년 이상의 장기계획 수립이 필요하다며, 특히 B지구의 공방터 추정유구에 대한 정밀조사, 미확인된 가마터의 세부적 조사가 필요하며, 각 퇴적층별 출토유물의 충분한 자료획득을 위해서는 장기간에 걸친 연차발굴의 필요성이 절실하다고 밝혔다.
지난 6월부터 분원리 산5, 116, 117-3, 4번지 일대를 발굴조사를 벌이고 있는 이화여대 박물관(단장 윤난지)은 지난 10일 발굴조사 현장설명회를 통해 가마 4기와 폐기장으로 추정되는 원형유구 3기, 일제시대 건물지 1기가 확인됐고, 가마 유구로 추정되는 소토부와 공방지로 추정되는 유구가 곳곳에 잔존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으며, 조선시대 관요인 분원으로서 왕실은 물론 흥선대원군이 거주하는 운현궁에 필요한 자기를 제작하던 곳이라고 밝혔다.
이화여대 박물관은 B지구 남쪽평탄면에서 가마 3기(2,3,4호)가 확인됐고, 단면상 3호가마 아래에 또하나의 가마가 잔존하고 있음을 확인했다며, 3,4호 가마는 일제시대 건물지 하무에서 조사됐는데 이 건물은 가마의 기반암인 풍화암반토롤 파고 조성돼 하부의 가마소성부가 대부분 파괴된 상태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발굴팀은 또 이번 조사에서 대접, 발, 완, 접시, 잔, 제기 등의 백자와 향로, 벼루, 연적 등의 다양한 기형의 파편들을 발굴했다.
백자는 청화백자와 순백자며, 청화백자의 문양은 壽福(수복)문 초화문이 대부분이며, 국화문, 용문, 나비, 사군자 등도 있다. 명문은 청화로 汾院(분원), 雲峴(운현), 大(대) 등이 음각으로 '上', '元' 등이 확인돼 이 유적이 조선시대 관요인 분원으로서 왕실은 물론 흥선대원군이 거주하는 운현궁에 필요한 자기를 제작하던 곳임을 확인했다.
그 밖에도 언문이 음각된 자기편도 출토됐다. 시문기법은 청화, 양각, 음각, 투각 등이 보이며, 태토는 정선 것으로 대개 순백색을 띠며, 유약은 굽 안바닥까지 전면에 시유됐다. 유색은 질에 따라 다양한 색상이 나타나고 있는데 질이 좋은 자기는 유백색과 설백, 그리고 청백색을 띠고, 질이 떨어지는 자기는 회백색 혹은 황백색을 띠고 있다.
燔法(번법)은 갑발을 씌워 구운 匣燔(갑번)과 포개구이한 常燔(상번)이 주를 이루고 있는데, 특히 갑발에 '甲'(갑)이라는 음각명문이 새겨진 예가 많아 가마 재임당시부터 제품의 품질을 구분했던 것으로 보인다.
요도구로는 갑발과 도짐 등이 있는데, 폐자기를 활용한 것으로 보이는 유물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 갑발은 백토로 제작했으며 종형, 사발형, 원통형 등의 다양한 기형이 보이며, 도짐은 경사진 원반형 도침이 대종을 이루고, 원통형 도짐이 있다.
A지구퇴적층 출토유물은 순백자가 대다수를 이룬다. 이 지역에서는 발, 대접 등의 식기류가 대부분이며 그 외 연적, 벼루 등의 문방구류, 병, 향로 등의 생활자기가 소량 출토됐다.
이화여대 박물관은 전체적인 유물의 양상을 크게 2개 형식으로 구분, A지구의 하부 퇴적층과 B지구 2호가마는 대체로 상품(上品)이며, A지구 상부 퇴적층은 하품(下品)으로 나타나고 있다.
한편 이화여대 박물관은 이 유적은 조선후기∼말기까지 작업한 왕실관요 요장 가운데 최초이자 최대의 가마터이나 이번 발굴조사 기간만으로는 그 전모를 밝히기는 부족하며 최소 3년 이상의 장기계획 수립이 필요하다며, 특히 B지구의 공방터 추정유구에 대한 정밀조사, 미확인된 가마터의 세부적 조사가 필요하며, 각 퇴적층별 출토유물의 충분한 자료획득을 위해서는 장기간에 걸친 연차발굴의 필요성이 절실하다고 밝혔다.
한근영기자 young@koc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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