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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역사교과서 한국관련 내용 비판문학박사 김세민, 한일관계사학회 총무이사
역사는 미래에 일어날 일을 대상으로 하는 학문이 아니라 과거에 일어났던 일을 대상으로 한다. 따라서 이미 과거에 일어났던 역사적 사실(史實)은 현재적 시점에서 인위적으로 바꾸거나 변경시킬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역사를 인위적으로 바꾸어 보려는 시도가 있다. 최근에 들어 대표적인 것이 바로 일본의 일부 세력들이 주도하는 일본역사교과서 왜곡이 그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그들이 시도하는 역사왜곡의 실체는 무엇인가?

먼저 일본은 아직도 고대 일본이 한반도를 식민지로 했다는 '임나일본부설(任那日本府說)을 내세우고 있다. 이 내용의 핵심은 4세기에서 6세기에 걸쳐 일본이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는 것인데 '일본서기'라는 책에만 나오는 내용이고, 우리나라의 고대 사서(史書)에는 그런 기록이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고고학적으로나 연구성과로서도 전혀 증명이 되지 않고 있다.

또한 고려후기부터 조선초기에 걸쳐 창궐했던 왜구(倭寇) 중에는 조선인도 다수 포함되어 있었고, 대부분은 중국인이었다고 서술하고 있는데, 그것은 왜구가 일본인이었다는 것을 부정하기 위한 것이며, 국가간에는 상대국의 정식국호(朝鮮)를 사용하는 것이 당연함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일제강점기에 사용하던 이씨조선(李朝)이라고 부르고 있다.

뿐만 아니라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일으킨 조선침략(壬辰倭亂)을 '조선출병' 이라고 부르고, 한·일 간의 외교 및 문화사절단이었던 조선통신사를 단지 일본의 장군 승계 축하사절처럼 기술하거나, 부산에 설치되었던 왜관(倭館)을 일본의 재외공관처럼 기술한 것은 역사적 사실과 상당히 차이가 있다. 특히 왜관은 재외공관(영사관이나 대사관)의 성격이 아니라 조선을 드나드는 일본인의 편의를 위해 조선에서 마련해준 시설이었음은 다 아는 사실이다.

근대에 와서 아시아는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서구열강의 위협에 놓이지 않은 나라가 없었다. 그것은 일본과 조선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서양열강과의 대응방식에는 일본과 비교해 우리나라가 더 열등하게 기술되었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가 마치 중국의 속국인 것처럼 쓰고 있지만, 중국과 조선의 관계는 종주국과 속국의 관계가 아니다. 다 아는 바와 같이 중국이 조선 내정에 간섭한 적은 거의 없다.

1873년 일본에서 대두된 정한론(征韓論)은 일본의 개국요구를 거부한 조선의 태도가 무례해 발생했다고 하지만, 일본의 일방적인 외교서식 변경과 조선의 조약체결 거부의 이유를 설명하지 않은 채 전적으로 일본측 입장에서 기술한 것이다. 일본의 일방적인 조약체결 요구는 당시 조선측의 입장에서는 전혀 불가능한 것이었다.

또한 당시 일본의 대표적인 정한론자인 사이고오 다카모리는 자신이 조선에서 살해되면 그것을 명목으로 일본이 출병하라 했다고 기술했는데, 이 내용은 잘못 이해하면 조선이 실제로 그를 살해할 가능성이 있는 것처럼 들리는 말이다. 1884년 갑신정변을 서술하면서는 청나라 군대가 친일파를 철저하게 탄압했다고 하여 김옥균 등의 개화파가 마치 친일파인 것처럼 서술한 것도 역사적 사실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김세민  kimsemin@net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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