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독한 가뭄으로 고통스러울 때는 비만 오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기우제까지 지냈었는데, 이번 주초는 집중폭우 때문에 수도권에서만 50여명이 사망, 실종되는 등 비가 그만 와주었으면 할만큼 우리나라의 기후는 이미 법도를 잃고 있다.
천재(天災)냐 관재(官災)냐 호우로 인한 책임의 논란이 시끄러운 중에도 제헌절인 17일에 햇볕이 깃들자 온 나라가 피서인파로 난리법석이었다.
불행한 사람은 그 사람 사정일 뿐이고, 운이 좋은 나는 그 행운을 만끽하자는데 누가 시비하겠느냐는 투다.
피서 휴가철을 맞아 해외로 나가는 항공편은 매진된 상태이고, 전국 휴양지의 호텔, 콘도 등은 빈방이 없다고 한다. 지도층이라는 국회위원들도 임시국회가 끝나자마자 100여명이 우르르 외유를 떠나는 마당에, 우리처럼 '별볼 일' 없는 사람들이 외화낭비네 경제위기네 따위를 들먹인다는 것은 가히 '주제파악'을 못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어제의 잘못은 깨끗이 잊어버리고, 내일의 걱정 따위는 아예 신경도 끊은 채 오늘만을 위하여 전력질주하고 모든 것을 내던져버리는 우리들의 '결단성'은 찬탄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낭비조성이라고 해도 상관없고, 하루살이 같은 사고방식이라 해도 좋다. '나'만의 만족을 충족시키는 데에 철저를 기하다가, 손톱 끝이라도 다치거나 기분나쁜 일이 생긴다면 무조건 남의 탓으로 돌리고 무자비하게 매도하면 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하루아침에 장관으로 임명되자 대통령에게 '분골쇄신'의 충성을 바치겠다고 하여 웃음거리가 되었었다. '뼈가 가루가 되고, 몸이 부서지도록 노력하고 일'한다는 것은 높히 평가받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일국의 장관이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분골쇄신해야 되거늘 개인에게 그러한 의지를 표현한 그 자체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었다.
나태하거나 무기력하기보다는 부지런하고 악착같은 집착으로 일을 추진하는 것이 사회발전에 활기를 더해주는 것은 분명하다. 정치인은 자유민주주의와 대한민국 지역을 위하여, 사업가는 이익의 극대화를 위하여, 회사원은 가정과 회사를 위하여, 학생은 학업의 성취와 건강한 체력을 위하여 가정주부는 가족의 화목과 살림살이를 위하여 분골쇄신하고 있다면 그 사회는 눈부실 정도로 발전할 것이다.
나라가 어려움에 처할 때면 정치인을 믿고 일치단결하여 그 위기를 극복한다면 얼마나 뿌듯하겠는가 앞에서 말한 가뭄이라든가 호우로 인한 피해로 고통받는 이웃들에게 물심양면의 따뜻한 손길을 나누는 사회라면 그 어찌 아름답다고 아니 할 수 잊겠는가.
임금의 안색이나 살피고 비위나 맞추려고 전전긍긍하는 출세주의자들을 꾸짖고 국가와 민족을 위한 소신과 기개를 떨치려 했던 조광조 같은 인물들이 장관의 지위에 있는다면, 그야말로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분골쇄신'하겠다고 큰 소리로 외친 들 그 누가 박수를 치지 않겠는가.
그러나, 우리 주변에 목적과 집착의 대상이 왜곡되거나 잘못되고 있는 현상을 종종 볼 수 있다. 그럴 수도 있겠지 정도의 수준이라면 불행 중 다행이겠지만, 그렇지 않다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는 것이다.
공직자가 시민을 위하기보다는 그 위치를 치부의 수단으로 악용하고 있으며, 사업가가 그 사업자체보다는 사기를 일삼는 등 너도나도 오직 자신의 이익과 쾌락을 위하여 '분골쇄신'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들은 엉뚱하고 무가치한 목적을 향하여 무모하고 저돌적으로 달려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사회를 돌이켜 보면서 집단으로 최면에 걸려 있거나 약물에 중독된 게 아닐까 하는 느낌을 가질 때가 많다.
그렇잖은가, 우리 인간이 하루살이가 아닐진대 가치와 의미가 있는 대상을 위하여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곽근홍 young@koc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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