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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을에, 추석을 맞이하면서
  • 장지헌 칼럼리스트
  • 승인 2001.06.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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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바탕 천둥 번개가 지나가고 성큼 가을이 다가왔습니다. 그 우라지게 뜨겁고 무더웠던 여름, 그늘한점 없는 들판에서 뙤약볕을 고스란히 온몸으로 받아들인 오곡백과가 지금은 보란 듯이 영글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가을은 여름을 이겨낸 모든 생물들이 만들어 내는 축복의 계절입니다. 그러나 여름을 당당하게 이겨내고, 당당하게 결실을 맺은 오곡백과이건만 결코 그것을 내세워 자랑하지 않습니다.
살아있는 모든 생물들이 고개를 숙이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한 알의 씨앗이 싹을 틔우고, 뿌리를 내리고, 잎과 가지를 무성하게 하고, 오늘 이렇게 결실을 맺기까지 온 갖 고난을 이길수 있도록 힘과 용기를 준데 대해 감사하고 있습니다.
기도는 이어지고 있습니다. 또 미래의 한알 씨알로 충실하게 영글때까지 마지막 힘을 다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아직은 결실을 해꼬지하는 심술 꾸러기가 곳곳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 심술꾸러기는 방심과 오만을 먹고 사는 놈인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름을 지나 가을에 이르는 문턱은 이렇듯 조마조마합니다. 오곡백과가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는 것도 어쩌면 마지막까지 틈실한 결실을 얻기위해, 오랫동안 자연과 싸우면서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터득한, 그들이 사는 법일지도 모릅니다.
자연의 섭리가 이렇듯 분명하고, 그 안에서 생존하기 위해 모든 생물들이 이렇듯 겸손한데 뉘라서 순리를 거역하며, 뉘라서 오만 방자해 질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박 넝쿨을 보면서, 밤나무와 대추나무를 보면서, 들녁에서 익어가는 벼를 보면서, 바알갛게 익은 고추를 보면서, 때로는 귀뚜라미 소리를 들으면서, 또 때로는 아침 저녁의 쌀쌀한 기운을 체감하면서 가을이 주는 낙엽같은 편지를 가슴에 안고 이렇게 가을 문턱을 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추석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사과향이나 탱자향보다 진한 사람의 향기를 따라 짧고도 긴 여행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철새가 때가 되면 그 먼길을 죽음을 무릅쓰고 자기가 살던 곳을 찾아가듯, 우리도 기를 쓰고 고향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그리운 어머니의 품으로, 그리운 사람의 품으로 간다는 생각에 가슴이 한 껏 부풀어 있습니다.
아직 세상을 잘 모르는 아이들도 한 번도 본적이 없고, 이름도 모르는 할아버지 할머니 묘소를 찾아 간다는 생각으로 발걸음이 가벼운 듯 합니다.
더러는 그것이 귀찮아 성묘를 대행업체에 시키고, 더러는 경제적인 이유와 편의를 들어 호텔에서 제사를 모신다는 사람들도 있는 모양입니다만, 그런 사람은 그런 사람대로 놔두고 우리는 귀소본능에 따라 아무도 강제적으로 시키지 않았지만 고행을 마다하지 않고 고향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귀성(歸省), 그것이 귀향성친(歸鄕省親)의 의미이든, 귀향성묘(歸鄕省墓)의 의미이든, 그것은 사람의 향기가 나는 말입니다. 그래서 귀성길은 즐겁습니다.
아! 이가을에 사람의 향기가 없다고 한 번 상상해 보자구요. 이 즐거운 추석에 가을의 풍성함이 없다고 한 번 상상해 보자구요.
그것은 가을이 아니고, 또 그것은 추석이 아닐 것입니다.
아! 다시한번 고개숙여지는 계절 가을이요, 다시한번 손모아 감사의 기도가 절로 나오는 명절 추석입니다.

장지헌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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