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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겁한 '후지모리'
학자·대학총장 출신으로 일본인 이민 2세인 알베르토 후지모리가 1990년 페루 대통령으로 취임했을 때, 페루 국민의 기대를 한몸에 받았을 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었다.
그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연 평균 5000%에 이르렀던 인플레를 4%수준까지 끌어내렸으며, 좌익 반군세력도 무력화시켜 정치적 안정을 이루었으니 '영웅'처럼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영웅'한테 우리는 얼마나 많이 속았던가. 그는 친위쿠테타로 독재의 길로 가더니 또한 헌법을 고쳐 3선의 벽을 넘었다. 그리고 군 및 정보기관을 앞세워 인권과 자유민주주의를 유린하는가 하면, '독재자'답게 부정부패로 긁어모은 돈을 해외로 도피시켰다고 한다.
당연히, 독재에 항거하는 페루국민의 인심을 잃을 수밖에 없었으니 그의 앞날은 불확실성에 쌓여 있었다. 머리가 좋은 후지모리는 국제회의에 참가한 후 일본에 들리더니, 대통령직의 사임서를 팩스를 통해 페루 국회의장 앞으로 보냈다고 한다.
일국의 대통령이 그럴수 있는가.
신명을 다바쳐 페루와 그 국민에게 헌신하겠다고 맹서한 그약속은 어디로 팽개치고, 새삼스럽게 '아버지'의 고향인 일본에서 망명생활을 한단 말인가.
후지모리는 비겁하게도 '주인'의식이 없었던 것이다. 온갖 감언이설과 얕은 권모술수로 뭇사람을 농락하고는 '빼먹을 것' 다 챙기고 도망친 것이다. 그따위 보잘 것 없는 인물에게 감동하고 속았던 마음들이 더욱 비참해질 뿐이다.
우리 주변에도 '후지모리'같은 인물들이 적지 않게 눈에 띄는 것을 느낄수 있다. 마음은 콩밭에 가 있으면서 무척이나 진실하고 봉사하는 체 하기도 한다.
양다리를 걸치고 있으면서도 이곳이 내 뼈를 묻고 나의 모든 능력과 정열을 바칠만한 대상이라고 혼자 떠들어 대기만 한다. 그러다가 시세가 불리하거나 별 볼일 없다 싶으면 보따리를 싸고 '야반도주'할 사람들이 유력자 행세를 하고 있으니 짜증스럽기만 하다.
일국의 대통령이든 국회의원이든 또한 지방자치단체장이든 지방의회의원이든 진정으로 '주인의식'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 한다.
크고 작은 사업체, 심지어 동네의 구멍가게 조차 서로가 '나의 일'로 알고 뛰어다녀야만 발전할수 있다. 해보는 척 하다가 여의치 않으면 담갔던 발을 빼고 그만두면 된다는 투의 조직원은 백해무익한 사람들인 것이다.
현재, 이 나라는 사사건건 싸움질이고 집단시위가 빈번하여 혼란스럽기 짝이 없다. 터졌다 하면 대형비리요, 여기저기서 폭로하고 고소하는 등 돌아가는 꼴이 형편 없다.
그러나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대한민국이 남의 나라가 아니라 '우리나라' 즉 우리의 '큰 가정'인 것이다. 내 집안 일로 생각한다면 이래서야 어찌 '집안 꼴'이 잘 돌아 간다고 볼수 있겠는가.
손바닥 만한 지역에서도 무슨 꼬투리만 있으면 물어뜯고 들쑤시느라고 혈안이 되어있다. 서로 마음을 열어놓고 서로가 잘 사는 길, 좋은 방법을 찾아내는 등 의견을 모으면서 고칠점은 고쳐가야만 우리의 '지역집안'도 번영하지 않겠는가.
우리는 어떠한 지위에 있는지 무슨 일을 하든지 주인의 노릇을 하고 그러한 의식이 있어야 한다. 눈 앞의 이익을 챙기기에 급급하다가도 상대방의 약점을 부각시켜 자신의 비리를 은폐하는 따위의 '잔꾀'는 협잡꾼들의 농간에 지난지 않는다.
좋은 날이나 궂은 날이나 나라, 사회, 직장, 단체등에서 주인의식을 가지고 성심을 다하는 사람들이야 말로 진정한 용기를 가진 영웅인 것이다. 그들의 마음은 그 시대의 아픔을 회피하지 않고 그 발걸음 또한 '비겁한 자'와는 달리 흐트러지지 않기 때문이다.

곽근홍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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