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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동묘앞 역(서울 지하철 1호선, 6호선)조성국 법학박사 / 예비역 해병대위(海幹 제34기) / 국가유공자 / 경민대학교 (前)교수. 도서관장 / 의정부지방검찰청 (前)형사조정위원
▲ 조성국 법학박사 / 예비역 해병대위(海幹 제34기) / 국가유공자 / 경민대학교 (前)교수. 도서관장 / 의정부지방검찰청 (前)형사조정위원 © 동부교차로저널

동파육(東坡肉)은 소동파(蘇東坡)와 무슨 관계가 있을까?

중국 음식점에 가면 검은 긴 수염에 근엄하면서도 인자해 보이는 인물상이 서 있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중국에서는 음식점은 물론 찻집, 호텔 등에서도 같은 인물상을 흔히 볼 수 있다고 하는데. 이 인물상은 누구일까?

바로 관우(關羽) 이다. 중국인의 관우 숭배는 대단해서 황제를 넘어 신(神)의 반열에 올라 있다. 그 영향으로 우리나라에도 관우를 모시는 사당이 있는데 보물 142호 동관왕묘(東關王廟)가 그 것이다. 
서울 지하철 1호선과 6호선 ‘동묘앞 역’은 동관왕묘를 줄인 말이고, ‘관왕’은 관우를 신격화해서 부르는 말이다.

출중한 무공으로 삼국지를 누볐던 관우는 죽은 후 송나라 때 군신(軍神)이 됐고, 임진왜란 때 명나라 군대와 함께 조선에 왔다. 명나라 군대는 남산 기슭에 남관왕묘(南關王廟)를, 동대문 밖에 동관왕묘를 세웠는데 관우의 무공을 빌려 전쟁에서 승리하고 싶은 바램이었다. 

그런데 조선의 왕은 명나라 군대가 물러간 후에도 관왕묘를 허물지 않았다. 그렇다고 특별히 제사를 지낸 것도 아니고, 그냥 방치했다. 그러다 숙종 때부터 관왕묘를 제대로 건사하기 시작했다.

이상한 점은 ‘무신(武神)’ 관우가 왜 음식점이나 찻집, 가게 입구에 ‘날마다 돈 벌게 해주소서(天天發財)’라고 적힌 문구와 함께 손에 지폐를 들고 서 있느냐는 것인데, 중국에서 관우는 ‘재물신(財物神)’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다지 재물복이 많았을 것 같아 보이지 않는 관우가 무신에 재물신까지 겸직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관우의 고향인 산시성의 소금상인들이 명나라 때 중국 최고의 부자가 된 것과 연관이 있다.

그들은 소금을 팔기 위해 먼 거리를 이동할 때 도적떼로부터 안전하고, 상대가 의리와 신용을 지켜 무사히 거래가 이뤄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고향 선배인 관우를 신으로 모셨다. 그런데 사람들이 관우를 신으로 모셔 부자가 된 것으로 생각했고, 너도 나도 관우를 신으로 모시기 시작했다. 이것이 무신 관우가 재물신까지 겸하게 된 사연이다.

한편, 최근 중국에 새로운 재물신이 등극했다고 한다. 중국 최대의 전자상거래 기업인 알리바바의 마윈 회장이다. 그래서 관우상 대신 마윈의 인물상을 놓기도 한다고 하는데, 아직까지 우리나라의 중국음식점까지 온 것 같지는 않다.

중국 음식점에는 1,700여 년 전 중국의 영웅뿐 아니라, 1,000년 전 시대인의 흔적도 남아 있다. 

관우처럼 입구에 인물상으로 세워진 것이 아니라 메뉴판에 이름과 함께 맛있는 요리를 남겼는데 ‘동파육’이 바로 그것이다. 불세출의 시인으로 당송팔대가 중 한 사람인 소식의 호 ‘동파거사(東坡居士)’에서 이름을 따왔다. 우리에게는 소동파라는 이름으로 더 친숙하다. 인생무상을 이야기할 때 흔히 거론되는 사자성어, 설니홍조(雪泥鴻爪) 1) 는 그가 지은 이 시에서 나왔다.

우리 인생 이르는 곳 어디인가
기러기 눈길 밟음과 같지 않은가
어쩌다 눈 위에 발자국 남기지만
기러기 날아간 뒤 그 행방을 어찌 알겠는가

- 소식이 동생 소철에게 보낸 시

소식의 탁월한 업적은 시문에서 끝나지 않는다. 오늘날까지 서예 전문가들에게 칭송받는 서예가이자 중국 문인화풍을 확립한 화가, 공자의 사당에 함께 위패가 안치될 만큼 존경받는 유학자, 그리고 백여 가지에 달하는 차와 술, 요리를 개발해서 《동파주경(東坡酒經)》이라는 책까지 쓴 요리전문가였다. 동파육도 그중 하나로 중국 음식점에서는 고급요리에 속한다. 그가 동파육을 어떻게 만들고 먹었는지 짐작할 수 있는 시가 있다.

항저우의 맛 좋은 돼지고기
값은 진흙처럼 싸지만
부자는 거들떠보지 않고
가난한 이는 요리할 줄 모르네
적은 물에 돼지고기를 넣고
약한 불로 충분히 삶으니 그 맛 비길 데 없어
아침마다 배불리 먹네
그 누가 어찌 이 맛 알리오

- 소식, 〈식저육시(食猪肉詩) 2) 〉

적은 물에 돼지고기를 넣고 약한 불로 충분히 삶는다는 구절이 동파육의 조리법을 연상시킨다. 아마 그 적은 물에는 짭조름한 각종 향신료를 넣었겠지. 아침마다 배불리 먹는다는 시구가 알려 주 듯 소식은 돼지고기를 무척 좋아했다. 그는 왜 이렇게 돼지고기 사랑에 푹 빠졌을까?

돼지고기는 중국인들이 즐겨 먹는 대표적인 식재료지만 송나라 때만 해도 먹지 않는 고기였다. 대신 양고기를 즐겨 먹었다고 한다. 소식도 중앙 정부에 몸담고 있을 때는 돼지고기를 먹지 않았을 것이다. 1,079년 그가 쓴 시가 황제를 모욕하고 비방하고 있다는 참소를 받아 넉 달이 넘도록 감옥에 갇혀 고문을 받고, 호북성의 항저우로 유배를 떠났다.

유배 시절 초기에는 인생무상에 빠져 붓을 놓았을 뿐 아니라 외부와 완전히 관계를 끊고 은둔했다. 그러기를 5년, 항저우 동쪽 산비탈의 황무지를 사서 ‘동파’라 이름 붙이고, 스스로를 ‘동파거사’라고 불렀다. 이렇게 다시 태어난 소동파는 호방하고 재미있는 성격에 요리까지 잘해서 어디를 가든 인기 만점. 특히 돼지고기를 즐겨 요리하고 먹은 이유는 앞서 소개한 시에 들어있다. 값은 진흙처럼 싼데 맛이 좋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소동파가 돼지고기나 술보다 더 사랑한 것이 있다.

식사에 고기가 없는 건 괜찮아도
사는 곳에 대나무 없을 수 없네
고기 없으면 사람 야위게 하지만
대나무 없으면 사람 속되게 한다네
사람이 야위면 살찌울 수 있으나
선비가 속되면 고칠 수가 없다네

- 소식, 〈녹균헌(綠筠軒)3) 〉

소식은 생의 대부분을 가난한 오지나 열대지방에서 유배형을 살았다. 그런데도 당시로선 장수했다고 할 수 있는 65세까지 건강하게 살았다. 그 건강비결이 산 좋고, 물 좋고, 공기 좋은 데서 유기농 식재료로 손수 술을 빚고, 차를 제조하고, 요리를 만들어 먹은 덕분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선비가 속되면 고칠 수 없다는 믿음과 실천이 없었다면 유배생활이 억울함과 분노, 욕망과 미련으로 끝까지 괴로웠을 것이다. 어차피 인생이란 기러기가 눈길 밟는 것. 그 눈길 걷는 동안 술과 차, 요리는 허망함을 달래는 데 참으로 따스한 위안이 되어줄 수 있겠지.

교차로저널  kocus@koc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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