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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질병 간접 경험의 효과(?)조성국 법학박사 (전)경민대 교수ㆍ도서관장
▲ 조성국 법학박사 (전)경민대 교수ㆍ도서관장  © 동부교차로저널

질병(疾病)이 만연(蔓延)하고 있으므로 이에 관한 현상을 살펴본다.

2019년 12월 중국 우한시(武漢市, 한국발음-무한시)에서 발생한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19(코로나-19)’가 세계적으로 퍼져, 전 세계 확진자(確診者) 8,200만 명. 사망자 180만 명(2020-12-31 현재) 이라고 언론에 보도 되었다. 

우리나라는 2021. 01. 02. 00:00 기준, 확진환자 : 62,593명. 검사진행 : 179,387명. 사망자 : 942명이라고 보도 되었다. 그리고 매일 세~네 자릿수의 확진자가 발생한다고 보도 되었다.  

정부가 ‘코로나 19’ 확산을 방지하기 위하여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므로 생활이 불편하다.
정부가 1월 3일 종료 예정이었던 수도권의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와 비수도권의 2단계 조치를 오는 17일까지 2주 더 연장하기로 하였다.

 •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 내용 : 방문판매, 노래연습장 등->집합금지. 국공립시설, 체육시설 등->운영 중단. 일반관리시설->21시 이후 운영중단.

정부는 이와 함께 수도권에만 적용 중이던 5명 이상의 사적 모임을 금지하는 조치를 전국으로 확대키로 하였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는 1월 2일 정례 브리핑에서 이 같은 거리두기 조정안을 발표하였다.

• ‘코로나 19’가 만연하기 전에는 언론에서 ‘전염병’이라는 용어를 일반적으로 사용하였는데 ‘코로나 19’ 이후에는 ‘감염병’라는 용어를 일반적으로 사용….
 
필자(筆者, 조성국)는 감염병에 두려움, 특히 장질부사[腸窒扶斯, 장티푸스 Typhoid fever
=염병(染病), 속칭 옘병]에 공포심을 갖는다. 필자가 장질부사에 두려움을 갖는 것은 어린 시절 기억 때문이다. 
1950년 ‘6.25 사변’ 전, 우리 옆집 누나(김정숙, 나이 십대중반)가 여름에 병에 걸려 방에 누워 “아유-! 아유 아퍼-!” 신음하는 것을 필자가 가보았다. 그 당시 우리 동네(하남시 춘궁동. 궁안 마을) 근처에 병원이라곤 없었다.

그런데 십리나 떨어진 경기도 광주군 서부면사무소(현 하남시 감북동사무소, 자리)에서 어떤 아저씨가 와서 상태를 보더니 장질부사에 걸렸다고 하였다.
그는 대야에 물을 떠다 놓고, 그가 가지고 온 약병을 쏟아 부으니 뜨물같이 뿌옇게 변한 것을 그 집 여기저기 뿌렸고, 그 집 근처 통로에는 새끼줄(비닐이 없던 시절)을 쳐놓고 통행을 금지시켰다.

어른들은 “‘정숙’이가 옘병에 걸렸대-!”라고 하면서 놀란 표정이었고, 결국 그는 며칠 후 어린나이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 후 1950년 북한이 남침한 ‘6.25 사변’이 일어났고, 국군이 북한으로 반격해갔다가 중공군(中共軍)의 개입으로 ‘1.4 후퇴’(1951년)를 하였다.

그 때 우리 동네로 피란민이 많이 왔고, 겨울인데 장질부사가 퍼져[필자는 훗날 세균전(細菌戰)을 의심했는데, 사실이라는 설(說)도 있음] 동네사람(원주민)을 비롯한 피란민들이 여러 명 죽었고, 상가(喪家)라 해도 전염(傳染)을 우려해, 사람들이 가지 않으므로 가족끼리 시체를 가마니에 담아 무거우니까 질질 끌고 가서 땅에 묻는 처절한 상황이었다.

필자는 그 때 장질부사 환자의 증세는 “고열이 나서 머리카락이 빠지고, 장(腸)에 염증이 생겨 결국 목숨을 잃게 된다.”고 들었다. 이 병은 전염성이 강해 삽시간에 여러 명에게 퍼지고, 그 당시는 치료방법이 없을 뿐만 아니라 한국사람 체질에는 가장 취약한 병[일본 사람 체질은 이질(痢疾)에 취약]이므로 공포의 대상이라고 들어서 어린 시절 간접경험으로 알게 되었다.

현대적 의술이 발달하기 전, 이 병이 발병하면 단기간에 전염되어 많은 사람이 죽고, 대책이 없으므로 우리 선조들이 얼마나 두려워했으면 남을 저주하는 욕 중에 “염병할 놈”이 있고, 또 속담에 “염병에는 개도 들여보내지 말랬다”는 말(무서운 전염병이기 때문에 염병 앓는 집과는 왕래하지 말라는 뜻)도 생겼다는 것이다. 

필자가 성장해서 군복무를 할 때 장질부사에 관한 에피소드다.  
필자가 해병대 보병 장교(위관)로 월남전에 참전(1967. 1.~ 68. 2.) 후 귀국해서 1968년 해병 제1상륙사단(현 제1사단) 본부에 근무했다. 그 때 필자가 해병대 B.O.Q(Bachelor Officer`s Quarters, 獨身將校宿所-독신장교숙소)에 거주하면서 출퇴근을 할 당시의 상황이다. 이 B.O.Q 에는 필자의 동기생 여러 명이 있었다.  

그런데 하루는 동기생 ‘ㅂ’ 해병중위가 감기에 걸려 밥도 굶고, 누워 있다고 하여 그의 방으로 가 보니 침랑(寢郞) 속에서 땀을 뻘뻘 흘리면서 신음하고 있었다.  

필자는 B.O.Q 앞 동(棟)인 간호장교 숙소에 가서 ‘ㅇ' 해군중위(女, 간호장교)로부터 체온계를 빌려다 ‘ㅂ’ 중위 입에 물리고, 한참 후 온도를 체크하니 39˚C가 넘었다. 보통 사람의 체온은 36.5˚C 가 정상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필자는 순간 불길한 생각이 들었고, 혹시 장질부사가 아닐까? ……. 
그러나 의학에 문외한(門外漢)인 필자가 어떤 질병이라고 예단(豫斷)할 수는 없었다.

약을 먹었느냐고 물으니 안 먹었다는 것이었다. 
필자는 감기약을 사다주어야겠다는 생각으로 B.O.Q 바로 옆 마을인 ‘몰계월’(현 포항시 남구 청림동)로 갔다. 약방에 가서 독감약을 지어달라(의사의 처방 없이 약 지어주던 시절)고 하여 사가지고, ‘ㅂ’ 중위에게로 가서 컵에 물을 따라주고 복용하게 하였다.  

‘ㅂ’ 중위는 감기약을 먹고, 하루 밤을 버티다가 도저히 참을 수 없자, 다음날 아침 일찍 포항병원(해병포항기지 내 군병원)에 전화 연락, 앰뷸런스를 불러서 병원으로 갔다. 복통을 호소하자 군의관(軍醫官-해군장교)이 처음에 무슨 병인지를 몰라 무조건 배를 쨌다고 한다.
하지만 이미 장(腸)이 부패해, 부패한 부위를 제거하고, 부패하지 않은 장 끼리 봉합수술을 했다고 하였다. 그의 병은 장질부사였다. 

필자가 포항병원에 가보니 ‘ㅂ’중위는 팔에 링거, 코에는 호스를 꽂고 누워 있었다.

군의관은 “‘ㅂ’중위가 복용한 감기약 중에 항생제(마이신)가 들어 있어 장의 부패를 지연시켰기 때문에 살았다”고 하였다. ‘ㅂ’중위는 수일 후 퇴원하였다. 

의술(醫術)에 문외한인 필자가 어린 시절 간접 경험에 의해 “‘ㅂ’중위가 생명을 건질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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