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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로(蛙利鷺) - 뇌물(賂物) -조성국 법학박사, 경민대학교 (前)교수⋅도서관장
▲ 조성국 법학박사, 경민대학교 (前)교수⋅도서관장 © 동부교차로저널

고려시대(高麗時代) 제18대 의종([毅宗 1127년~1173년) 임금님이 하루는 단독(單獨)으로 야행(夜行)을 나갔다가 깊은 산 중에서 날이 저물었다.

요행히 민가(民家)를 하나 발견하고 하루를 묵고자 청을 했지만, 집주인(이규보-李奎報 1168∼1241년)이 조금 더 가면 주막(酒幕)이 있다는 이야기를 하여 임금님은 할 수없이 발길을 돌려야 했다.

그런데 그 집(이규보) 대문(大門)에 붙어있는 글이 임금님을 궁금하게 했다.

有我無蛙 人生之恨(유아무와 인생지한 - 나는 있는데 개구리가 없는 게 인생의 한이다.)

"도대체 ‘개구리’가 뭘까?"

한 나라의 임금으로서 어느 만큼의 지식(知識)은 갖추었기에 ‘개구리’가 뜻하는 걸 생각해 봤지만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았다.

주막에 들러 국밥을 한 그릇 시켜 먹으면서, 주모(酒母)에게 외딴 집(이규보 집)에 대해 물어 보았다.

그(이규보)는 과거(科擧)에 낙방하고 마을에도 잘 안 나오며, 집 안에서 책만 읽으면서 살아간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래서 궁금증이 발동한 임금님은 다시 그 집으로 돌아가서 사정 사정한 끝에 하룻밤을 묵어갈 수 있었다.

임금님이 잠자리에 누웠지만, 집 주인의 글 읽는 소리에 잠은 안 오고, 해서 면담(面談)을 신청했다. 그리고는 그렇게도 궁금하게 여겼던 "有我無蛙 人生之恨(유아무와 인생지한)" 이란 글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옛날에 노래를 아주 잘하는 꾀꼬리와 목소리가 듣기 거북한 까마귀가 살고 있었는데 하루는 꾀꼬리가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를 하는데 까마귀가 꾀꼬리한테 내기를 하자고 했다.

바로 "3일 후에 노래시합을 하자"는 거였다.

백로(白鷺)를 심판(審判)으로 하여 노래시합을 하자고 했다.

​이 제안에 꾀꼬리는 한마디로 어이가 없었다.

노래를 잘 하기는 커녕, 목소리 자체가 듣기 거북한 까마귀가 자신에게 노래시합을 제의하다니…. 하지만 월등(越等)한 실력을 자신했기에 시합에 응했다.

그리고 꾀꼬리는 3일 동안 목소리를 더욱 아름답게 가꾸고자 노력했다.

​그런데, 반대로 노래시합을 제의(提議)한 까마귀는 노래연습은 안 하고, 자루 하나를 가지고 논두렁을 이리저리 다니면서 개구리를 잡았다. 그리고 그렇게 잡은 개구리를 백로한테 뇌물(賂物)로 가져다주고는 노래시합 때 자기의 뒤를 부탁했다.

​약속한 3일이 되어서 꾀꼬리와 까마귀가 노래를 한 곡씩 부르고, 심판인 백로의 판정(判定)을 기다렸다.

꾀꼬리는 자신이 생각해도 너무 고운 목소리로 노래를 잘 불렀기에 승리를 장담(壯談)했지만, 결국 심판인 백로는 까마귀의 손을 들어주었다.

한 동안 꾀꼬리는 노래시합에서 까마귀에 패배(敗北)한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얼마를 지나서 까마귀가, 백로가 가장 좋아하는 개구리를 잡아다주고, 뒤를 잘 봐 달라고 힘을 쓰게 되어 본인이 패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있는데 개구리가 없는 게 인생의 한이다"라는 글을 대문에 붙여 놓았다고 한다.

이 글은 이규보가 임금님한테 불의(不義)와 불법(不法)으로 뇌물을 갖다 바친 자에게만 과거급제(科擧及第)의 기회를 주어 부정부패(不正腐敗)로 얼룩진 나라를 비유(比喩)해서 한 말이었다.

이때부터, ‘와이로(蛙利鷺)’란 말이 생겼다.

개구리 와(蛙), 이로울 이(利), 백로 로(鷺)

이규보는 자신이 생각해도 실력이나 지식은 어디에 내놔도 안 떨어지는데 과거를 보면 꼭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돈도 없고, 정승(政丞)의 자식이 아니라는 이유로 과거를 보면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자신은 노래를 잘하는 꾀꼬리와 같은 입장이지만, 까마귀가 백로한테 개구리를 상납한 것처럼 뒷거래를 하지 못하여 과거에 번번이 낙방(落榜)하여 초야(草野)에 묻혀 살고 있다고 하였다.

그 말을 들은 임금님은 이규보 선생의 품격(品格)이나 지식(知識)이 고상(高尙)하기에, 자신(임금)도 과거에 여러 번 낙방하고 전국(全國)을 떠도는 떠돌이인데, 며칠 후에 임시과거가 있다하여 개경(開京)으로 올라가는 중이라고 거짓말을 하였다.

이규보 선생님이 초야에서 지내기엔 아까운 분이었음을. 또한 궁궐의 비리가 소멸되길 바라면서….

그리고 궁궐(宮闕)에 돌아와 즉시 임시과거를 열 것을 명하였다고 한다.

과거를 보는 날, 이규보도 뜰에서 다른 사람들과 같이 마음을 가다듬으며 준비를 하고 있을 때, 시험관(試驗官)이 내걸은 시제(詩題)가 바로 "有我無蛙 人生之恨(유아무와 인생지한)" 이란 여덟 글자였다고 한다.

​사람들은 그게 무엇을 뜻하는지를 생각하고 있을 때, 이규보는 임금님이 계신 곳을 향해 큰절을 한번 올리고, 답을 적어 냄으로서 장원급제(壯元及第)하여 차후 유명한 학자(學者)가 되었다고 한다.

이때부터 와이로(蛙利鷺/有我無蛙 人生之恨)란 말이 생겨났다고 한다.

⦁ 와이로는 일본어로도 와이로(わいろ) 즉, 뇌물(賂物)이란 뜻으로 쓰여 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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