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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환자 문병-서울중앙보훈병원조성국 법학박사, 경민대학교 (前)교수⋅도서관장
▲ 조성국 법학박사, 경민대학교 (前)교수⋅도서관장 © 동부교차로저널

  며칠 전 서울중앙보훈병원(中央報勳病院, 서울 강동구 진황도로 61길 53)에 입원, 치료 중인 군동기생(軍同期生)을 몇 명의 전우들이 문병(問病) 하였다.

⦿ 보훈병원 : 국가유공자들과 그 가족의 진료와 재활을 위한 병원. 부산광역시, 대구광역시, 대전광역시, 광주광역시, 인천광역시에도 보훈병원이 있다. 국가유공자와 보훈보상대상자 등은 상이처(傷痍處)의 경우 무료로 진료 받을 수 있다.

問病과 관련 과거 군대생활을 회상해 본다.

필자[筆者 조성국, (예비역) 해병대위]는 대학 4학년 2학기 종강(終講), 겨울 방학이 되어 졸업식만 남았을 때, 병역문제로 은근히 고민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병역의무(兵役義務)를 마치지 않으면 취업을 할 수 없으므로….

필자는 법대 고시반(考試班)에서 3년 동안 공부하였다. 어느 날 한 친구가 신문을 가지고 왔는데 해병장교 모집광고가 났다. 모집조건은 ‘3개월 소정교육 후 해병소위임관, 3년 복무 후 예편(豫編)’ 이었다. 어차피 사병(士兵)으로 입대해도 3년은 복무해야 하므로(그 당시 士兵 의무복부기간 3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964년 11월 해병학교(海兵學校) 제34기 사관후보생(士官候補生) 선발시험에 응시하였다. 필자의 응시번호는 1045번, 전국(全國) 각 대학교 졸업생 및 졸업예정자 1,600여 명이 응시, 162명이 합격했다.

1965년 1월 4일 해병학교 입교, 12주 간의 교육․훈련을 받고(2회에 걸쳐 퇴교조치), 3월 27일 최종적으로 88명이 해병소위로 임관하였다(최종 경쟁률 18대 1). 그런데 애석하게도 교육 중, 安00 후보생(연세대학교 법과 졸)은 체력(體力)이 지탱(支撐)을 못해서 목숨을 잃고 말았다! ….

해병학교 제34기 88명과 해군사관학교 제19기 졸업생 중에 해병대를 지원한 14명(합계 102명)이 해병학교 기초반(基礎班, OBC: Officers Basic Course) 제14기 교육을 6개월 간 받아 이들과도 同期生이 되었다.

기초반 교육수료 후, 필자의 인사명령이 실무부대(=자대)로 발령 난 부대는 해병 제1상륙사단(포항) 이었다. 이어서 예하부대인 보병(步兵) 제1연대 제2대대 제6중대로 발령, 제1소대장은 이상무 소위(해사 제19기, 제21대 해병대 사령관), 제2소대장은 조성국 소위였다.

해병학교에서 교육받을 때 金00 구대장님께서 “귀관(貴官)들이 앞으로 실무부대에 나가 최초로 소대장 인계인수(引繼引受)할 때 잘 받아야지 적당히 했다가는 나중에 곤욕을 치르게 된다.”고 말씀하셨다. 곁들여서 “귀관들이 실무에 나가 지휘관(指揮官) 잘 만나는 것은 오복(五福) 중의 하나다.”라고 하셨다. 필자는 이 두 번째 말씀을 소대장하면서 실감했다.

필자는 선배 소대장 李00 소위(훗날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교수-한국 컴퓨터공학의 선구자)와 인계인수를 하면서, 소대 선임하사관을 불러서 소대현황을 확인한 후 인계인수서에 서명, 날인하였다. 그런데 소대장 인계인수하면서 ‘소대선임하사관을 불러서 확인한 후 날인한 것’이 선배기수(先輩期數)의 ‘괘씸죄’에 걸려 기수(期數) 빠따(배트 Bat) 맞을 때 가중처벌(加重處罰)을 받았다.

소대장을 1년 여 한 후(필자), 월남전 참전 파병(派兵)명령이 났다[해병대 주월(駐越) 청룡부대].

기초반 제14기 102명 중 소총소대장 등으로 수십 명이 참전, 여러 명이 부상(負傷) 당했고, 6명이 전사(戰死), 국립서울현충원(제51묘역)에 안장(安葬)되었다.

필자는 13개월 간 월남전 참전 후 월남의 중부 ‘다낭 항’에서 귀국선(歸國船, 18,000톤, 완전무장 병력 2,000명 탑재 능력)을 탔다. 배가 부산항에 가까워져 멀리 산이 보일 때 ‘이제는 살았구나!’ 라는 감격이 북받쳐 하염없이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살아오면서 가장 감격스러운 날이었다.

필자는 소총소대장할 때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겼고, 극적으로 살아났다. 전역 후에 국가보훈처에 등록된 상이군경(傷痍軍警)이다.

세월이 유수와 같다더니 軍同期生들은 이제 70대 후반 ~80대 초반이 되어 자주 가는 곳은 병원이다. 그러다가 병원 염려 안 해도 되는 곳으로 간 동기생도 여러 명이다.

金00 동기생이 소총소대장으로 월남전에 참전, 부상 등 후유증으로 장기 간, 서울중앙보훈병원에 입원 치료를 받고 있다. 그(국가유공자)의 입원 ․ 치료비 및 약품대 관리 -국가보훈처.

7월 9일 12시 軍同期生 8명이 金00 동기생 問病을 했다. 병실이 협소하므로 환자를 휠체어로 병원중앙현관 대기실로 이동시켜 문병 겸 환담을 하였다.

그런데 이상무 전 해병대 사령관(예비역 해병중장, 동기생)이 치료를 받으러 왔다가 우연히 우리 일행과 만났다. 굉장히 반가웠다.

병원 인근 음식점으로 이동, 회식하면서 회포를 풀었다. 음식점에 들어서자마자 이상무 장군이 카운터로 가서 식대를 선불(先拂)하였다.

우리 일행은 金00 전우의 빠른 쾌유(快癒)를 빌면서 문병 일정을 마무리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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