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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남] 하남의 3.1운동의 발자취<4>"잊지 말아야 할 3월 27일 그날의 함성"
▲ 당시 면사무소가 있었던 동경주 일원 ⓒ동부교차로저널

[하남] 하남의 3.1운동은 전국적으로 독립운동이 일어난 날 보다 늦은 시기에 발생했다.

1919년 당시 독립만세 운동이 시작되자 서울의 학교들이 휴교령에 들어갔고 학생들이 고향으로 내려가면서 입소문을 타고 전국적으로 번지기 시작한 시기다.

하남에서는 첫 번째는 3월 26일 동부면 교산리에서 이대헌(李大憲)이 면사무소 앞(현 동경주)에서 태극기를 흔들며 주민 수십 명과 시위를 벌이는 것으로 시작됐다.

이후 27일에 동부지역, 서부지역 할 것 없이 만세운동이 본격적으로 펼쳐지면서 사상자를 낳은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다.

이렇듯 하남의 3.1운동은 전국적으로 나타난 보편적인 특징과 함께 하남지역만이 가지고 있는 특이한 점도 있다.

우선 만세운동에 참가한 독립 운동가는 천주교인들이 주도했다. 하남의 독립운동사 저자인 윤종준씨는 당시 천주교 지도부는 만세운동에 참여를 부정적인 입장이었으나 하남만은 천주교인들이 주동해 전국적으로 흔하지 않은 사례로 꼽았다.

또 만세시위를 주도한 다른 사회계층으로 오랜 세월 집성촌을 이루고 살아온 양반가문의 후예들이다. 대표적인 인물이 동부면의 이대헌, 교산리 김교영이 구장이었다.

끝으로 다른 지역에서도 나타난 봉화와 헌병주재소 습격 등 무력화의 경향을 띄며 여러 곳에서 연합해 시위를 벌였다.

이렇듯 당시 9,000여명의 시골마을에서 전개된 만세운동은 마을 구장과 종교인의 지휘와 이를 호응해준 농민들이 보여준 민족자존의 투쟁으로 기록되고 있다.

1919년 전국적으로 울려 퍼진 "대한독립 만세"가 2019년인 올해로 100년을 맞았다. 하지만 우리 하남은 지난 100년의 세월에서 독립유공자에 대해 무엇을 해왔는지 물어보지 않을 수 없다.

현재 4명의 독립유공자만이 서훈을 받았지만 그동안 밝혀진 나머지 6명과 지난 21일 하남문화원 학술토론회에서 새롭게 밝혀진 일본총독부의 감시대상자명단에 오른 것으로 알려진 방연환씨에 대해서도 조사를 통해 공로를 밝혀야 하는 것이 후손들의 몫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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