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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남] 하남의 3.1운동의 발자취<3>1919년 3월 하남의 만세운동 전개

[하남] 본지는 하남의 3.1운동의 발자취<시리즈 1.2편>에 이어 <시리즈3편>에서는 하남지역에서 일어난 3.1만세운동의 전개에 대해 알아보기로 한다.

하남지역에 앞서 당시 광주지역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은 3월 21일부터 31일 사이 총 11차례에 걸쳐 7,600여명이 참가했고 4월 1일부터 15일 사이에는 한차례의 시위가 벌어졌는데 400여명이 참가한 것으로 연구되고 있다.

광주에서도 동부지역인 하남지역에서는 3월 26일 동부면 교산리에서 이대헌(李大憲)이 면사무소 앞(현 동경주)에서 태극기를 흔들며 주민 수십 명과 시위를 벌이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 당시 면사무소가 있었던 동경주 일원 © 동부교차로저널

 27일에는 주민 수십 명과 함께 뒷산(현 매봉)에 올라 봉화를 올리며 "대한독립 만세"를 외친 후 면사무소로 집결, 약 3시간 동안 만세시위를 벌였다.

당시 이대헌은 최창근이라는 사람을 통해 전국적으로 만세시위가 벌어지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마을청년들을 규합해 시위에 나서게 된다.

같은 날 망월리 구장인 김교영(金敎永)도 김용문(金用文) 등과 함께 사람들을 모아 시위를 벌이기 시작한다.

이때 천현리의 기독교인이 참가하면서 500여명으로 세력이 키워지고 시위도중 천현리 주민 14명이 검거됐다.

교산리와 망월리 주민들이 27일 오전 11시경 동부면사무소로 집결해 면장과 면서기도 같은 민족이니 동참을 권유했으나 이들이 거절하자 야유를 보내는 등 격렬히 시위를 벌이자 주재소원들이 출동해 이대헌은 체포되고 말았다.
    

▲ 망월동 구산 © 동부교차로저널

이대헌과 김교영이 시위를 벌이고 있을 당시 풍산리에서는 김홍렬(金弘烈)이 26일 오전 10시경 인근 산위(구산으로 추정)에 올라 봉화를 올리고 27일 오전 3시까지 "조선독립 만세"를 높이 외쳤다.

동부지역의 만세운동과 함께 서부지역에서는 구희서(具羲書)가 뒷산에 올라 횃불을 밝혀 인근지역에 알리고 주민 40여명을 모아 서부면 사무소와 구천면 상일리(현 상일동) 헌병주재소까지 시위를 벌였다.

이날 상일리 헌병주재소에는 이대헌(李大憲), 김교영(金敎永), 김홍렬(金弘烈)이 이끄는 주민이 약 1,000여명에 집결했고 헌병의 발포로 사망자 1명, 부상자 2명이 발생했다.

이는 광주군 시위에서 첫 번째 사상자가 발생한 날이기도 하다.

이밖에도 광주군 중부면에서는 시위군중이 면장을 구타하는 사건이 발생해 헌병의 발포로 해산했고 산성리에서도 주민 200여명이 시위를 벌였으며 남한산성에서는 봉화가 오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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