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국 법학박사, 경민대학교 (前)교수 · 도서관장 ⓒ동부교차로저널

10월 3일 동아일보에 ‘그놈의 1cm 쪽지문’ 추적 3년… 3000개 재검색 끝에 “찾았다”,

“강릉 노인살해 12년 미제사건 해결…” 이라고 보도 되었다. 경찰청 과학수사관리국 증거분석실에서 쪽지문(조각 지문)을 통해 장기 미제(未濟)사건 범인이 밝혀졌다는 내용이었다.

필자(筆者-趙成國)가 한 때 인권단체에서 상담부장을 하면서 지문(指紋)에 관한 진정사건을 취급했던 일을 회상해 본다.

지문의 사전적 의미는 손가락의 끝마디에 있는 곡선이 만드는 무늬를 말한다. 또한 손가락의 끝마디를 물체에 대고 누르면 표면에 이 곡선 무늬가 남는데 이러한 흔적을 말하기도 한다.

지문은 평생 변하지 않으며 모든 사람이 각기 다른 모양을 가진다. 즉, 만인이 같지 않으므로 개인식별(個人識別)에 이용한다. 지문은 유전자가 동일한 일란성(一卵性) 쌍둥이라 할지라도 다르다. 또한 손가락 끝마디의 작은 상처는 지문의 구조를 바꾸지 않으며, 새로운 세포가 자라면서 다시 이전과 동일한 지문을 형성한다.

1980년대 중반에 H여인(당시 47세)이 필자 근무처에 진정서를 제출하였다.

진정내용은 H여인(익명)이 M씨(목회자)와 혼인[H씨는 초혼, M씨는 상처(喪妻)해서 재혼]을 했는데 전 처 소생의 자녀[1남(14세) 2녀(10세, 6세]가 있고, H여인은 혼인 후 딸(Y)을 낳았다. 그런데 가정불화(남편의 불륜 및 폭행 -구체적인 내용 여기에는 생략)가 있어서 법원에 가서 이혼하였다. 이혼 당시 Y(12세)는 H여인이 양육하기로 했지만 양육비에 관한 내용은 합의하지 않았다.

그 후 H여인이 M씨를 상대로 관할법원에 Y의 양육비 청구소송을 제기했는데 M씨는 H여인이 “Y는 H여인이 양육하되 양육비는 청구하지 않는다”는 내용 및 서류 말미에 작성 날짜가 있고, H여인 이름(H의 자필 아님) 옆에 지장(指章)을 찍은 ‘합의 이혼서’를 증거자료로 제출, 양육비 지불을 거부하였다. 결국 H여인이 1심에서 패소, 즉시 항소하였다.

H여인은 자기는 ‘합의 이혼서’를 쓴 일도 없고, 지장을 찍은 일이 없으므로 그 ‘합의 이혼서’는 가짜이므로 거기 찍혀 있는 지장 즉, 지문의 진위여부를 밝혀달라는 진정이었다.

H여인의 항소사건(2심)은 광주고등법원에 계류 중이었다.

필자는 필자 근무단체의 전라남도 지부(지부장-변호사)에 이 사건의 내용을 설명, 소송지원을 하라는 공문을 만들어 단체장의 결재를 받아 발송하였다.

문제의 핵심은 ‘합의 이혼서’를 H연인이 쓴 일이 없고, 따라서 지장을 찍은 일이 없으므로 이 지장(지문)의 진위를 밝히는 것이었다.

2심 법원에서 이 지문의 감정을 HK문서감정원(서울 숭인동)에 의뢰, H여인이 HK문서감정원에 가서 지문을 찍었고, K판사와 J변호사(전남지부장)가 입회, 감정한 바 두 지문이 동일한 지문이라는 감정결과가 나왔다.

그러나 H여인은 사설 감정업체이므로 믿을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인권단체에서 공적인 기관에 지문감정을 의뢰, 진실을 밝혀달라는 것이었다.

필자는 언론보도를 통해 그 당시 치안본부(현, 경찰청) 감식과 지문감정 담당관은 우리나라 최고의 지문감정 권위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 담당관에게 전화, 필자 근무처를 소개하고, 필자가 진정사건(지문감정 의뢰)을 접수했는데 감정해줄 수 있는지 문의한 바, 인권단체에서 부탁하는 것이므로 감정해주겠다(무료로)는 답변을 들었다.

필자는 공문을 만들어 자료와 함께 발송하였다.

수일 후 치안본부 감식과 담당관으로부터 H연인을 대동하고 오라는 연락이 왔다.

그러나 오늘날처럼 휴대전화가 없고, 또한 H여인의 거처에 유선전화[그 당시 유선전화는 백색전화(매매할 수 있는 전화)와 청색전화(매매 불가)가 있었는데 백색전화 값은 아파트 한 채 값]가 없기 때문에 연락 방법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전보를 쳐서 전보 받는 즉시 필자에게 전화를 하라고 하여 연락이 되어, 그와 함께 치안본부 감식과로 갔다.

담당관은 ‘이혼 합의서’ 상의 지문과 H여인이 새로 찍은 두 지문의 사진을 촬영, 확대한 것을 놓고, 차근차근히 지문 보는 법을 필자에게 설명해 주었다.

지문의 한 선을 따라가다가 갈라지는 분기점[융선(隆線)]에 점을 찍고, 같은 방법으로 다시 다른 분기점에 점을 찍어 1, 2, 3…. 번호를 붙여 두 사진의 같은 번호 위치를 대조하는 것이었다.

한참동안 그 담당관의 설명을 듣고 나서 두 사진을 보니 필자가 보기에도 두 지문은 거의 같은 것이었다. 필자는 담당관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나왔다.

H여인은 자기는 ‘이혼 합의서’에 지장을 찍은 일이 없으므로 치안본부의 감식결과도 믿을 수 없다고 하였다.

필자는 수개 월 동안 H여인의 주장을 존중, 구조해주려고 했던 것이 수포로 돌아가니 안타깝고, 허탈하였다.

2심 재판도 H여인이 패소(기각) 했다.

H여인은 ‘합의 이혼서’를 본 일도 없고, 지장을 찍은 사실이 없다고 끝까지 주장했다.

그렇다면 M씨가 H여인이 잠든 사이나, 기타 방법으로 은밀히 찍었단 말인가?

이것은 미스터리(mystery)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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