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사람&사람들
"직원들 정신과 치료 받게 해 주세요"박준조 소장, "천국 못 갈꺼다" 악담에도 안간힘

   
▲ 박준조 축산위생연구소 동부지소장

[GNEWS]“구제역이 종식되면 도지사님께 건의해서 저희 직원들이 정신과 치료를 받게 했으면 합니다. 아무리 동물이지만, 살아있는 생명을 죽인다는 게 보통 (심정으로) 하기 어렵거든요. 그래서 굉장히 우울해하는 애들(직원)도 있고요. (마음) 약한 애들을 살처분 현장에 보낼 때는 내 딸 같으면 보낼 수 있을까 생각도 하고…”

박준조(50) 경기도축산위생연구소 동부지소장은 끓어오르는 감정을 끝내 주체하지 못했다. 눈물이 두 볼을 타고 흘렀다. 보는 사람의 마음도 착잡해졌다. 소·돼지에게 사신(邪神) 노릇을 자처할 수밖에 없었던 그동안의 마음고생이 얼마나 컸을지 짐작이 갔다. 굳이 눈물의 의미를 캐묻지 않았다.

방역복을 입고 살처분 현장을 누비는 그에게 궁금했던 건 농가 피해가 어느 정도인지도, 구제역과의 사투가 언제쯤 끝날지도 아니었다. 다만, 그로부터 원했던 대답은 수의사이자 공무원으로서 감내할 수밖에 없는 고통의 무게와, 소·돼지뿐만 아니라 인간의 영혼까지 매몰시키는 구제역의 악랄함에 대한 그만의 소고(小考)였다.

   
▲ ⓒ 교차로저널

박 지소장과의 인터뷰는 3일 이뤄졌다. 그를 만나러 직접 축산위생연구소 동부지소를 방문했지만, 거기까지였다. 이날 기자는 동부지소 앞에서 박 지소장이 나오기를 기다려야 했다. 현재 동부지소는 외부인 출입이 차단된 상태다. 구제역 현장에서 활동하는 직원들이 들락거리는 지소 내부에 외부인이 출입했다가 구제역을 전파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부랴부랴 사무실을 나온 박 지소장과 차 안에 나란히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격무 중에 짬을 낸 터라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못했지만, 몇 마디 나눈 것만으로도 수의사로서 박 지소장의 자부심과 진솔미를 엿볼 수 있었다.

박 지소장은 올해로 공직생활 23년째다. 전남대 수의학과를 졸업하고, 1988년부터 경기도보건환경연구원에서 공무원생활을 시작했다. 2002년 경기도축산위생연구소로 옮겨 분석팀장으로 일했다. 지난해 2월에 동부지소장에 부임했다.

동부지소는 이천, 여주, 하남, 광주, 양평 등 도내 5개 시·군의 가축방역 업무를 관할한다. 지난달 24일부터 전 직원 22명은 구제역 현장을 누비며 출퇴근 없이 24시간 근무 중이다. 박 지소장도 여느 직원들과 마찬가지로 사무실에서 숙식하며 구제역 방역의 최일선에서 활동하고 있다.

한동안 식구들 얼굴을 못 보다가 1월 1일에야 박 지소장은 수원에 있는 집에 갔다 왔단다. 마침 그날은 결혼기념일이었다. 오랜만에 부인과 마주 앉아 맥주 한잔을 마시는데 초등학교 6학년생인 늦둥이 막내아들이 옆에 오더니 “누구세요?”라고 농을 걸더란다. 아빠 얼굴 보기가 너무 어렵다는 막내아들의 애교 섞인 투정이었다. 그 이야기를 하며 웃는 박 지소장의 얼굴에 씁쓸함이 배어났다.

늦둥이 아들이 많이 보고 싶겠다고 묻자 “그럴 겨를도 없다. 보통 새벽 1시쯤 잠자리에 드는데 잠시 아들 생각이 스치다가도 금방 떨어져 나간다”고 박 지소장은 말했다.

연말연시도 만끽하지 못하고 새해를 맞았는데 기분이 어떠냐는 질문에는 재치있게 답했다. “친구들이 ‘해피 뉴 이어(Happy new year)’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나는 ‘해피’는 아니고, ‘올드(Old)’하다라고 말했어요. 작년부터 죽 이어져 왔다는 얘기죠. 종무식이 없으니 시무식도 없죠.”

인터뷰가 시종 유쾌하게 진행된 것만은 아니다. 박 지소장은 인터뷰 동안 두 차례 굵은 눈물을 흘렸다. 한 번은 구제역 탓에 가족처럼 애지중지 기른 소·돼지를 사지로 내몰 수밖에 없었던 농가들을 위해, 또 한 번은 동물을 살리기 위해 수의학도가 됐음에도 악역을 자처하면서 집단 매몰 현장을 지켜야 하는 공무원 수의사들을 위해.

교차로저널  kocus@kocus.com

<저작권자 © 교차로저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교차로저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