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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충식물에는 중독성이 있습니다”‘벌레잡이 식물원’ 개설자 이화진 원장

[하남]“사실 저는 피가 뜨거운 사람이거든요?” “이 처럼 작고 힘 없는 식충식물들도 살아 가는데 인간인 나는 더 열심히 살아야지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 국내 최초 '벌레잡이 식물원’ 개설자 이화진 원장
 
하남시 감북동에서 국내 최대 규모의 식충식물원인 ‘벌레잡이 식물원(www.kcps.net)을 운영중에 있는 이화진 원장(여.42)의 자기 소개이다.

이 원장이 운영중인 ‘벌레잡이 식물원’에는 ‘네펜데스’ ‘파리지옥’ ‘끈끈이 주걱’ ‘사라세니아’ ‘벌레잡이 제비꽃’등 200종 3만여주의 식충식물이 자라고 있지만, 이원장의 최초 직업은 ‘보도사진가’였다.

서울 종로구 이화동에서 태어나 서울사대부고 졸업 후 일본으로 건너가 2년간의 일본어 어학연수를 마치고, 동경에 있는 동경사진전문대학교를 1992년 졸업했다.

 

동경 사진전문대학교 졸업

재학중에도 니콘 F3와 F4를 들고 여성으로는 드물게 동경에서 스포츠사진가로서 아르바이트를 주로 했다.

졸업 후 국내에 들어와 럭비잡지와 게임잡지소속의 전문사진기자로 활동했는데, 일본어와 사진을 동시에 해결 할 수 있는 사진기자로 이름을 날렸다.

그러한 시간을 보내던 중 피가 뜨거운 이화진씨의 마음속에서 반발의 피가 쏫구치기 시작했다.

“사진을 취미로 했을 때는 좋았는데, 직업이 되다 보니 재미가 없었다”며 이원장은 당시를 설명하고 있다.

자신의 일에 대해 회의감에 빠져있던 이화진씨에게 새로운 계기가 다가왔는데, 취미로 키워오던 꽃과 식물 키우기가 새로운 직업으로 다가왔다.

평소에 온 집안이 식물로 가득해서 부부싸움까지 할 정도였던 이화진씨의 꽃과 식물 키우기를 지켜보던 주위 사람들이 “꽃 가게 차려라”는 말을 할 정도로 전문가적인 수준에 다가가 있었다.

“사진 일을 접고 꽃 가게를 차렸는데, 집에 있는 꽃만 가져가도 꽃가게를 차릴 정도였다”며 이원장은 그 시절을 설명했다.

한번 집중하면 무섭게 몰두하는 이원장의 스타일은 작은 꽃 가게 운영에서도 유감없이 드러나게 된다.

“꽃을 사러 오는 사람들을 분석해 보면 물 주는게 취미인 사람, 물 주는 것을 잊어 버릴 정도로 바쁜 사람들이 있는데 이러한 고객의 특성을 파악해 고객에게 맞는 꽃을 권해 드립니다”

지금 까지도 지키고 있는 ‘평생 AS’ 약속도 이때 부터 시작 한 것으로, 고객이 언제든지 와서 사간 꽃의 AS를 받을 수 있도록 배려했다.

 

취미로 한 꽃 가꾸기로 '꽃 가게' 개업

꽃 가게가 있던 풍납동 일대 반경 4Km 이내에 꽃 가게가 전혀 없었지만, 이화진씨의 꽃 가게가 워낙 잘 되다 보니 5년만에 다섯 개 꽃집이 주변에 생길 정도였다.

딱 5년 만에, 권리금 한푼 받지 않고 꽃 집을 넘기고 새롭게 손을 댄 분야가 현재 하고 있는 ‘벌레잡이 식물원’ 이었다.

벌레잡인 식물과의 만남도 아주 우연하게 시작됐다. 꽃집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우연히 한 신사분이 가게를 들렀는데, “이곳에 식충식물이 없죠?”라는 한 마디 말을 하고 갔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그 분은 화학박사이자 변리사인 최길배씨 였는데, 최 박사의 말에 흥미를 느낀 이화진씨는 곧 바로 꽃 도매상을 찾아가 ‘식충식물’을 수소문했고, 이 꽃들을 인터넷을 이용해 올렸더니 7명의 네티즌들이 관심을 보였고 이들을 중심으로 대화가 시작됐다.

   
 
▲ 영롱한 빛을 발하고 있는 식충식물 '끈끈이 주걱'의 모습
 

그러한 과정을 1년여 동안 진행 하던 중 2000년 4월 1일 다음 카페에 식충식물 카페를 개설했다.

현재 1만 1천 334명이 가입된 다음카페 http://cafe.daum.net/drosera가 ‘한국 최초 식충식물 카페’로 공식 기록되는 순간이었다.

주위 친구들과 지인들은 식충식물에 몰두하는 이화진씨를 만류하기도 하고 걱정을 했지만 이화진씨는 자신이 좋아하던 일을 계속해 나갔다.

그러 던 중 포탈사이트 ‘다음’에서 식충식물 카페를 다음 메인화면의 ‘카페 포커스’에 소개하면서 다음을 이용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카페는 활성화 되기 시작했다.

이어서 압구정동 현대백화점에서 식충식물 전시회를 개최해 달라는 섭외가 들어 왔고, 카페 회원수도 1천여명으로 급속히 늘어났다.

 

국대 최대 '식충식물' 카페 운영자로 변신

인터넷 카페를 중심으로 회원들의 참여와 대화가 왕성해 지면서 “이제 카페 개설 1년이 됐으니 오프라인에 사무실을 개설하자”는 의견들이 압도적으로 늘던 중, 어떤 회원의 제안에 따라 사무실 대신에 ‘농장을 만들자’로 결론이 났다.

“40만원만 있으면 농장이 만들어 진다”는 단순한 생각에 시작했으나, 강동구 길동에 있는 농장을 이끌어 나가는데는 예상치 않은 돈이 들어갔지만, 이화진씨가 감당해 나갔다.

“내가 모르는 것이 많고 무능하다 보니 회원참여가 자발적으로 늘어 났는데, 새로 만들 홈페이지도 카페 1호 회원인 최진만씨가 무료로 만들어 줬고, 지금도 관리해 주고 계시죠”

2000년 겨울에는 ‘중독’이라는 주제로 서울 홍대 앞 거리에서 식충식물 전시회를 개최했으며, MBC TV의 ‘화제집중’에서 집중적으로 이 카페를 소개하기도 했다.

“식충식물을 키우다 보면 마약과 같은 중독성이 있다”고 소개하는 이화진 원장은 “식충식물을 키우다 보면 빠져 들게 돼 있는데, 식물과 동물의 중간계층에 놓인 식충식물들이 파리.모기를 잡아 먹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고 말한다.

“식충식물들은 햇볕을 좋아해 항상 볕이 잘 드는 좋은 자리고 옮겨줘야 하고, 사람이 안 쳐다 보면 안 크고 심지어는 삐지는 것을 알 수 있지요”

“외국에서는 보석풀로도 불리우는 피그미라는 끈끈이 주걱은 해질녘에 바라보면 영롱한 방울이 너무 아름답습니다”라며 이 원장의 식충식물 예찬론은 끝나지 않는다.

식충식물과 함께 생활하면서 성격도 많이 밝아졌고, 긍정적이 됐으며, 무엇 보다도 사는데 대한 투덜거림이 없어졌다고 말하는 이 원장.

전문 사진작가 5년, 꽃 집 운영 5년등 그 동안 직업이 5년을 주기로 바뀌었지만, 식충식물은 10년은 채울 계획이다.

“전 세계에 약 670여종의 식충식물이 있고, 이중 우리나라 토종 식충식물은 12종인데, 지난해 하남시로 장소를 옮긴 ‘벌레잡이 식물원’에는 이제 200여종의 식충식물만이 전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서는 미국, 호주, 캐나다, 말레이시아인들이 소문을 듣고 많이 찾고 있는 ‘벌레잡이 식물원’은 이제 인터넷 카페 몇 사람만의 공간을 뛰어 넘어 한국 최대의 식충식물원으로 훌쩍 성장해 있다.

 

"남들이 하지 않는 새로운 것에 강하다"

이화진 원장과 함께 식물원 대표로 활동하고 있는 양규석씨(남.42)는 “이화진 원장은 남들이 하지 않고 못해 본 것에 강하며, 남자들이 보기에도 무서울 정도의 추진력으로 일을 벌려 나간다”고 이화진 원장을 소개하고 있다.

매주 토.일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 문을 열고 식충식물을 무료로 공개하고 있는 ‘벌레잡이 식물원’에 오면 ‘피가 뜨거운 이화진 원장’을 만날 수 있다.(02-477-8246)

   
 
▲ 하남시 감북동에 위치한 벌레잡이 식물원 이화진 원장
 

 

 

이공원 기자  lee@koc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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