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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년간 매일경제신문 모아 온 신우식씨시골서 태어나 경제지로 자수성가 기회

[하남]지난 7일은 ‘제50회 신문의 날’ 이었는데, 하남시에 교산동에 살고 있는 신우식씨(58.대궁농원 대표. 팔도한마을대동회 회장)에게 신문의 날은 남 들과 다른 특별한 의미를 안고 있었다.

신우식씨의 자택 창고에는 지난 30년간 빠짐없이 모아 온 ‘매일경제신문’이 가득 쌓여 있는데 사과박스 200여개에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다.

신씨의 이러한 정성은 신문업계에 알려져 10년전인 1996년에 치러진 ‘제40회 신문의 날’에는 한국신문협회로부터 감사장과 함께 200만원의 상금을 받기도 했다.

   
 
▲ 1996년 한국신문협회 최종률회장으로부터 감사장을 받고 있던 신우식씨의 모습
 

매일경제신문은 세상물정을 모르는 신우식씨에게 재테크를 알려주는 교사였으며,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서였다고 하는데, 매일경제신문으로 알게 된 증권상식과 경제기사에 힘 입어 신우식씨는 상당한 재산을 모을 수 있었다.

경남 산청군 신능면이 고향인 신우식씨는 일제 해방과 좌우익의 혼란속에서 어려운 가정형편을 벗어나기 위해 초등학교 3학년 때 서울로 올라 온 부모 밑에서 힘든 어린 시절을 보내야 했다.

강동구 성내동에 서울생활을 시작한 신우식씨는 3년간 매일 같이 새벽 신문배달을 했으며, 야간 고교 1학년 때 부터는 명동에 있는 유명학 치과에서 치과 기공일을 배우며 주경야독의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

신흥보건전문대학에 진학했지만 등록금을 내지 못해 1학년을 채 마치지 못하고 대학생활을 그만둬야 했으며, 군 입대를 결심하게 됐다.

1975년, 군 제대와 동시에 다시 치과 기공일을 다시 시작했으며, 주위분의 권유로 처음으로 매일경제신문을 구독하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신문을 보관해 나갔다.

   
 
▲ 신우식씨가 교산동 자택 창고에 보관중인 30년 분량의 매일경제신문 묶음상자들 앞에서 신문을 들고 서 있다.
 
경제신문을 보면서 경제의 흐름과 주식에 대한 이해를 높여 나갔으며, 증권사 객장에 나가서 어른들에게도 물어보고 스스로 그래프도 그려 보면서 나름대로의 감각을 익혀 나갔다.

당시 국내에는 사우디 건설공사등의 중동특수가 서서히 일어 나기 시작했으며, 경제신문을 읽으며 이 기회를 잡아야 겠다고 생각한 신우식씨는 형수에게 간곡히 부탁해 그 당시로는 거액인 180만원을 빌려 건설주 종목에 집중투자했다.

결과는 대 성공이었다. 4년 후인 1981년에 결산을 해 봤더니 180만원은 10배 크기로 늘어나 1천800만원으로 커져 있었으며, 내친 김에 채권투자에도 뛰어 들어 2천500만원으로 키워 나갔다.

당시로서는 큰 돈을 어떻게 사용 할 것 인지를 고민하고 있던 어느 날 밤, 신우식씨는 범상치 않은 꿈을 꾸게 된다.

돌아가신 부친이 꿈에 나타나 손에 씨앗을 들고 “이 씨앗을 심으라”고 하자, 신우식씨는 “땅이 있어야지 씨앗을 심지요?”하면서 되 묻자 꿈속의 아버지는 웃음을 머금고 산 너머로 사라져 버렸다.

이상한 꿈을 꾸고 난 신씨는 곰곰히 생각한 결과, 작고한 부친이 땅을 사라고 하는 것으로 판단하고 1981년에 3천여만원을 들여 하남시에 2천여평의 땅을 사게 됐다.

40년 동안 살아 오던 강동구 성내동을 떠나서 7년 전 하남으로 이사오면서 그 동안 보관해 오던 경제신문을 옮기는데만 2.5톤 용달차로 2대가 투입됐다.

“다른 사람들은 신문이 오지 않으면 전화해서 보내 달라고 했지만, 저는 신문이 오지 않으면 직접 신문사로 찾아가 신문을 달라고 한 후 보관해 왔었다”고 말하는 신우식씨의 하남창고에는 사과박스가 가득 쌓여 있었다.

일생을 성실과 근면함으로 살아 온 신우식씨는 매일경제신문에 대한 감사를 잊지 않는다.

“지리산 자락인 산청에서 태어나 서울로 올라 온 나에게 매일경제신문은 세상을 알게 해 주는 길잡이였으며, 살아가는데 필연적인 경제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치과기공소 일을 정리하고 모 백화점에서 의류대리점 운영을 통해 탄탄한 기반을 다진 신씨는 약 7년전부터 하남에서 토끼를 키우고 있는 중이다.

“뉴질랜드 햄프셔 토끼 500여 마리를 키우고 있는 중인데, 그 전부터 해 보고 싶었던 일이라서 힘든지 모르고 열심히 키우고 있는 중이다”고 신씨는 말한다.

지금도 매일경제신문을 꼬박 꼬박 모으고 있는 신씨는 매일경제신문 사주가족들과도 교제를 갖고 있으며, 신씨의 사연을 알고 있는 매일경제신문 간부들과도 깊은 인연을 맺고 있는 중이다.

어려운 집안 여건을 극복하고 경제신문으로 시작된 증권투자로 재산형성의 기초를 쌓고, 이후 하남시에 사둔 2천여평의 땅이 큰 재산가치를 형성해 안정된 생활을 해 나가며 어려운 이웃에 대한 관심을 잊지않고 있는 신우식씨의 인생스토리는 매우 특별한 의미를 전해주고 있다.

 

이공원 기자  lee@koc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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