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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기 위해 거리로 나온다"

하남시 신장사거리 부근에서 ‘붕어빵’을 구워 파는 김모(여·46)씨. 1남 1녀를 둔 그녀는 10년전 남편을 잃고 둘째 아이마저 2년전에 교통사고로 잃었다.

지금은 중학교에 다니는 15살된 큰 아이만을 키우며 단칸방에서 생활하고 있다. 김씨의 유일한 생계수단인 붕어빵 장사는 벌써 8년째다.

   
 
 
그녀가 파는 붕어빵은 4개에 1000원. 평일에는 시청이나 주민자체센터에서 단속을 나오지 않을까 염려가 되기도 하지만 더이상 물러설 수 없는 마지막 생계수단이라 생각하며 리어커를 거리에 갖다 놓고 팔고 있다.

3년전까지만해도 김씨의 붕어빵 장사는 잘되는 날은 하루 12~15만원을 벌기도 했지만 지난해 부터 매출이 절반으로 줄더니 요즘은 장사가 통 안된다.

“하루 종일 팔아봐도 겨우 5만원 정도”라며“사실 재료비 빼고 나면 얼마 남지 않지만 생활비를 조금만 아낀다면  괜찮다”고 스스로 위로한다.

김씨가 노점을 하고 있는 덕풍동 일대에는 붕어빵을 비롯해 호떡, 오뎅 등 먹거리와 옷을 파는 장사들이 약 300m 간격으로 5곳이 더 있다.

김씨는 “3년 전부터 손님의 발길이 줄어들더니 올해같이 장사 안되기는 처음”이라면서 “경기불황으로 안그래도 장사가 안되는데 주변에 노점상이 자꾸 늘어나면서 부터 하루가 다르게 매출이 줄어들고 있다”며 한숨을 쉬었다.

덕풍민속오일장 부근의 버스정류장 앞..

주상복합과 대형사우나 등 화려하고 웅장한 건물들이 즐비해 있는 버스정류장 부근에는 정모 할머니(75 하남시 덕풍동)씨의 노점이 있다. 이곳이 정할머니가 할아버지와 함께 매일처럼 한방약재를 팔고 있는 일터다.

할머니가 파는 한방약재는 인삼을 비롯해 오미자. 마, 감초, 칡뿌리등 50여가지..

오전 10시부터 장사를 시작해 밤 9시까지 쉴틈없이 목소리를 높여 손님을 부르며 약재를 선별하는 손이 분주하다.

정할머니는 15년전 큰아들이 죽고 며느리와 함께 살았으나 갑자기 집을 나가는 바람에 남기고간 손녀를 키우기 위해 거리로 나온지 12년 정도된 베터랑 노점상이다.

   
 
 
할머니는 노점상을 하기 전 손녀딸을 위해 안해본 일이 없을 정도였다. 시청에서 하는 공공근로도 해보고 상추밭에 나가 품도 팔아 보았지만 벌이가 적어 손녀를 키우고 가르치는데는 쉽지 않았다.

그러던 중 할머니는 주의의 권유로 리어카에 가스버너에 옥수수를 쪄서 파는 장사를 시작했다. 그래도 그때는 경기가 좋아 벌이가 괜찮았다.

한방약재장사는 1996년 8월부터 시작했다. 이 장사는 건강식품이 탓에 여자와 남자를 가릴 것 없이 중·장년층까지 다양한 고객층이 있어 벌이가 괜찮은 편이었기 때문이다.

평일에는 5만원, 주말에는 15만원 이상 벌때도 있었고 이 정도면 3식구가 먹고살기에는 크게 무리가 없는 듯 했다.

하지만 경제위기의 파고는 정 할머니의 식구들에게도 여지없이 들이 닥치며 매출은 절반이하로 뚝 떨어졌고 연세가 많으신 할아버지의 약값과 손녀의 학비를 대기가 버거워 다른 일을 해보려고 생각도 했지만 건강이 따라주지 않아 따로 벌이를 하기 힘들다.

할머니는 우선 15년동안 조금씩 모았던 돈을 은행에서 찿아 손녀 통장으로 입금시켜 놓고, 의료보험도 조그만 회사에 다니는 조카 밑으로 올려 놓았다. 하루하루 먹고살기가 버겨울 정도로 여유돈을 부릴 수 없을 경우를 대비해 계획했던 일이다.

“지금 버는 걸로 돈을 모으기는 힘들고, 조금씩 생활비를 줄여가며 저축을 했습니다. 비록 목돈은 아니지만 손녀딸이 어른이 될때 까지는 챙겨주는 것이 할미의 마음이니까요.”  할머니는 그 꿈을 위해 오늘도 짙은 주름살이 가득배인 땀방울을 훔치며 약재를 팔기 위해 새로운 계절인 봄을 맞이할 것 같다.

이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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