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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파공작원(HID)’은 절규한다”매일 죽음을 생각하는 고된 훈련

6.25한국전쟁 56주년을 맞아 ‘북파공작원(HID)’들의 실제 활동내용과 그 들이 겪고 있는 고통을 살펴보기로 한다. 민주주의와 공산주의의 이념갈등과 분단된 나라의 운명속에서 상상 할 수 없는 훈련과 억압 속에서 철저히 유린된 개인의 인격과 존엄성이 가슴을 아프게한다.  <편집자 주>

 

몸은 설악산, 주소는 서울 중앙우체국



김일성 마빡에다 대검을 꽂고

유유히 돌아오라 켈로의 용사

적진 속을 마음대로 누비는 우리

남포동의 밤거리는 모두 나의 것

장하다 그 이름 켈로의 용사

 

남북교류가 활발해 지고 있는 현실속에서 일반인들이 들으면 살벌한 분위기를 대뜸 느낄 수 있는 ‘켈로가’라는 이 군가를 부르며 설악산에서 비밀 훈련을 받고 북한에 침투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북파공작원(HID)’들이 자신들의 피 맺힌 한을 호소하고 있다.

   
 
 

‘북파공작원(HID)’은 한국전쟁중인 1952년부터 1972년 7.4남북공동선언 발표 때 까지 북한지역에 파견되어 활동한 무장첩보원을 말한다.

한국전쟁이 한참이던 1951년 3월 정부는 육군첩보부대를 창설했고, 이 부대내에 ‘북파공작원(HID)’가 소속됐다.

‘북파공작원(HID)’의 주임무는 북한에 직접 침투해 적 생포 및 사살, 적군 진지 주요시설물 폭파, 적지에서 각종 테러를 통한 각종 사회혼란야기, 첩보수집, 첩보망 구축등 이었다.

‘북파공작원(HID)’들이 북한에 침투하기 위해서는 상상을 초월한 가혹한 훈련과 규율을 이겨 나가야 했고, 이 과정에서 인간성은 철저히 파괴됐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물색조의 감언이설에 속다>

‘북파공작원(HID)’으로 활동했던 K모씨(54)의 사례를 통해 북파공작원의 실태를 알아보도록 한다.

K씨의 나이 20살 때, 양복을 잘 차려 입은 2명의 신사가 접근해서 여러 가지 감언이설을 늘어 놓기 시작했다.

“우리가 말하는 군대에 가면 육군장교로 근무시켜 주고, 경찰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는 말을 서슴없이 하면서 자신들의 연락처를 남겨두고 떠났으나 반신반의하며 연락을 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어느 날, 동네 파출소 앞을 지나던 중 경찰과 사소한 시비가 있었는데, 억울함을 느낀 김씨가 연락처를 남긴 사람에게 전화하자 곧 바로 파출소에 도착해 권총을 꺼내 들고 경찰을 발로 차고, 권총으로 가격하는 것을 보고 이 사람들을 믿고 입대 서약서에 도장을 찍고 말았다.

   
 
 
‘북파공작원(HID)’들은 이들 양복 입은 사람들을 ‘물색조’로 표현하고 있는데, ‘북파공작원(HID)’으로 끌어 들이기 위한 물색조의 접근 방식은 다양했다.

‘북파공작원(HID)’ H씨는 서울역앞 후암동의 병무청에 갔었는데, 한 신사가 다가와 “군대 갈려고 하나?”라고 말을 건냈고, H씨가 “해병대 갈려고 한다”고 답하자 이 신사는 “거기 왜 가냐? 특수부대가면 2천-3천만원을 주고, 제대하면 취직을 보장하고 쌍권총이 지급되며 헬기 타고 다닐 수 있다”라고 말했다.

당시 23살의 어린 나이였던 H씨는 이 신사의 말에 넘어가 ‘북파공작원(HID)’의 길로 들어서게 됐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물색조의 이러한 사탕발림에 수 많은 청년들이 자신이 어떠한 일을 하게 될지도 모른 체, ‘북파공작원(HID)’을 양성하는 ‘설악개발단’에 입대해 모진 훈련을 받게 된다.

 

<실미도 훈련은 HID의 10% 정도>

설악산 깊은 산골인 모처에 위치한 ‘설악개발단’에서의 훈련은 인간의 상상력을 뛰어 넘는 가혹한 것으로 K씨는 “얼마 전 상영된 영화 ‘실미도’의 훈련장면은 설악산 훈련의 10%도 되지 않는다”고 증언했다.

K씨는 “북파공작원들은 인간 마루타 이하의 대우를 받았다”면서 “모래배낭 20Kg을 발에 메고 완전군장을 한 상태에서 16Km 산악구보를 매일 같이 했으며, 10명이 1개 팀으로 구성됐고 팀웍을 강조하는 관계로 투신자살 사건도 발생했다”고 말한다.

구보에 나선 팀원중 1명이 자신으로 인해 팀이 구보에서 뒤 질 것을 우려해 120m 절벽에서 뛰어 내려 자살을 할 정도로 강압적인 훈련방식이 적용됐던 것이다.

특히 외출타기 훈련에서는 아무런 안전장치도 없이 외줄을 타게 해, 실수해서 떨어지면 바로 죽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내가 살기 위해서는 죽여야 한다”는 비 인간적인 의식교육 속에서 하루 하루를 죽음과 맞대며 살아가는 이들 ‘북파공작원(HID)’은 자신이 소속된 부대 이름과 계급도 모르고, 군번도 없이 외부와 완전히 단절된 설악산 속에서 생활해야 했다.

‘북파공작원(HID)’ C씨는 “설악산에서 외출, 외박, 신문구독도 못하고 지내면서 사람다운 생활을 하지 못하고 사람죽이는 ‘인간병기’로 존재해 왔었다”고 당시를 증언했다.

C씨는 “실제로는 설악산에 있는데, 가족들과 주고 받는 모든 편지의 주소는 서울 중앙우체국으로 되어 있고 모든 편지는 검열을 받아서 사실을 사실대로 말 할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본인도 모르게 주소말소, 행불처리>

   
 
 
24살의 나이에 장교로 근무중 인사명령에 의해 ‘북파공작원(HID)’ 부대로 옮겨진 K씨는 양재와 판교를 거쳐 설악산으로 옮겨 졌는데, 북한군의 군관복을 입고 생활 하던중, 27살 때 XX공작을 수행하면서 상병으로 위장해 최전방부대에 투입돼 공작활동을 했었다.

K씨는 “‘북파공작원(HID)’으로 있으면서 사회에서는 개인의 주민등록이 말소됐고, 행방불명 처리 됐으며, 병역기피자로 분류 되는 등 있을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으나, 설악산에 갇혀 고립된 생활을 하는 나는 전혀 알지 못하고 사람을 빨리 죽이는 훈련만 매일 같이 되풀이 하고 있었다”고 증언했다.

시간은 흘러 30-40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북파공작원(HID)’들에게 남은 것은 젊은 나이에혹독한 훈련속에서 겪은 비인간적인 기억들의 잔상이 강하게 남아 지워지지 않고 이들을 괴롭히고 있다.

‘북파공작원(HID)’출신들이 겪는 가장 큰 고통은 첫째,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인간병기’로 훈련 받아졌다는 점과 3년간 사회와 완전히 단절된 상태에서 제대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비사회인으로 전락했다는 점이다.

둘째는, 정부에서 ‘북파공작원(HID)’ 모집에 가담한 물색조들의 불법적인 행동에 대해 아무런 제재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정부차원의 적극적인 보상이 없었다는 것이다.

‘북파공작원(HID)’은 젊은 시절의 자신들을 되 돌아 보면서 ‘한번 써 먹기 위한 돼지’ ‘인간소모품’등으로 표현하고 있다.

분단국가가 만들어 낸 ‘북파공작원(HID)’들의 상실된 인간성과 이들에 대한 부당한 대우들이 재조명돼서 오랜 세월을 아픔 속에서 살아가는 ‘북파공작원(HID)’의 한을 누군가는 풀어줘야 할 시점이다.

이공원 기자  lee@koc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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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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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은수 2020-03-03 06:59:42

    내가 군대 생활하던 시절.
    설악산 학야리(교암)에 HID가 있었는데
    들어가는 입구에 돌로 된 출입금지 표시만
    있었고 거기 들어가면 죽는다고 부대장이
    말해서 근처에 얼씬도 못했어요
    가끔씩 훈련하려 속초 잎바다 백사장에
    나와서 다리에 모래주머니 차고 백사장을
    구보하던 모습을 보았네요   삭제

    • sapkckjlk 2011-08-28 14:55:48

      KBSOsH rgzvgmkojsju, [url=http://xnnilsngwrmp.com/]xnnilsngwrmp[/url], [link=http://mxfdzgmpsabe.com/]mxfdzgmpsabe[/link], http://hqoaujtdiswj.com/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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