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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바꾼 2인자 김균선생조선왕조의 개국공신으로 이성계 추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지도자와 왕권이 변해오며 그 이면에는 그들을 추대해 왕위에 오르게 한 일등공신이 항상 존재해 왔다.

특히 이중에는 조선태조 이성계를 추대해 조선을 건국하는 데 공을 세운 김균선생이 개국공신으로 불려지고 그의 묘소 또한 오포읍 능평리에 자리하고 있어 우리 지역의 경기도 지정 기념물 가운데 하나로 남고 있다.

김균선생의 출생과 별세의 시기는 각 문헌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을 만큼 역사는 그에 대해 충분한 자료를 남기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그가 경기도 기념물 제105호로 남아있는데는 그만큼의 이유가 있다.

고려 공민왕 9년(1360) 성균시에 급제해 공양왕 4년(1392) 7월17일 밀직부사로 있을 당시 익안대군 등 39인과 함께 이성계를 추대해 송경 수창궁에서 즉위식을 거행케 함으로서 개국공신 3등훈 15명중 제2인으로 올라 중추원부사로 승진하고 이때 개국공신의 공신호를 받아 계림군으로 봉해졌다.

어찌됐든 그는 이성계라는 인물을 만드는데 헌신했으며 또 역사를 바꾼 2인자 역할을 담당했기 때문에 역사의 한 장을 남기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1987년 2월12일 경기도기념물 제105호로 지정된 김균선생의 묘역은 낮은 담장으로 둘려 있고 봉분은 앞 부분에 장대석으로 호석을 쌓아 높은 것 외에는 일반적인 구조와 같다. 설물 중 상석 향로석 장명등은 근래에 새로이 설치한 것으로 신도비의 비문은 송병선이 짓고 윤용구가 글씨를 써 김영한이 정액을 써서 1905년에 건립한 것으로 전해진다.

송병선이 지은 신도비문에는 그의 묘역을 잃어버렸다가 이 고을 유수로 온 후손 김사목이 수소문해 찾았다고 기록되어 묘역 건립의 시기를 18세기 후반 경으로 추정하고 있을 뿐이다.

 

강인호 기자  kai76@koc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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