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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간 한결같이 지켜온 '독자와의 약속'교차로신문사 대표 김인겸

<인천일보 2004년 5월 12일자 15면 -나의 삶 나의 길-기사>

 

1994년 5월 26일 첫 등록된 교차로 저널이 창간 10년을 맞았습니다.
지역발전을 위한 사명으로 지난 10년간 무료로 발행돼서 지역주민들의 눈과 귀가 되고자 노력해 오던 교차로 저널이오는 7월부터 유료신문으로 전환을 앞 두고 있습니다.
생활정보신문 ‘교차로’와 지역신문 ‘교차로저널’의 발행목적과 발행정신을 소개해서 독자 여러분들의 이해를 높이고자 본 지면을 준비 했습니다.

 

⊙하남,광주 30만의 목소리 대변

   
그건 소모전이었다.
언제 끝날 수 조차 알 수 없는 소모전. 그 소모전은 올해로 꼬박 10년째에 이른다.

하남, 광주시 일원에서 발행되는 ‘동부 교차로저널’ 발행인 김인겸 대표(52). 이젠 지칠법도 한데 의욕은 여전히 충만하다.

인구 10여만의 작은 도시 하남과 광주. 이를 한데 묶은들 고작 30만 안팎을 헤아리는 시장.
그 시장에서 지역주간신문을 발행한다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 일인지 누구보다 그가 잘 알고 있다.
평생 ‘장사’를 해온 그에게 지역신문은 장사치곤 도무지 수지가 맞지 않는 장사다.
그런데도 그는 10년째 그 일에 메달려왔고, “이제는 희미하게나마 그 끝이 보인다”고 한다.
척박한 지역의 토양 탓에 수많은 지역신문이 명멸을 거듭했다. 그 가운데 그의 신문은 10년을 한결같이 매주 독자를 찾았다. 단 한 달도 흑자를 기록한 적이 없지만 발행은 멈추지 않았다.

마침내 10년의 세월은 냉랭하기만 하던 주민들의 가슴을 열게 했고, 이제는 먼저 손을 내미는 독자들도 꽤 생겨났다. “10년 적자 끝에 비로소 한줄기 가능성을 발견”하고 있는 것이다.

⊙윗돌 빼내 아랫돌 괴기

김대표가 그토록 오랜 세월 ‘돈 안되는 일’에 메달릴 수 있었던 것은 그나마 괜찮은 돈벌이가 버팀목이 돼주었기 때문. 

지역신문 ‘동부교차로 저널’을 발행하기 한 해 전인 93년부터 뛰어든 생활정보지 사업은 마침 불어닥친 생활정보지 바람에 힘입어 만 일년만에 흑자를 기록했다. 그의 말대로 “순전히 주민들이 도와준 덕분이며,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김대표는 그 ‘고마운 주민’들에게 보답 할 수 있는 무엇인가를 찾았다. 본업인 생활정보지를 더욱 잘 만드는 것 역시 그 가운데 하나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그 보다는 그나마 있는 설비와 인력을 활용, 보다 많은 주민들이 실질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을 찾은 끝에, 당시 척박하기만 했던 지역신문 시장에 뛰어들게 됐다. 

경험이 있는 기자들을 끌어모으고, 정기간행물 등록을 한 것이 94년 5월. 이러저러한 준비를 마친 뒤 마침내 9월에 창간호를 발행했다. 

비록 주 단위로 발행되는 지역신문이지만, 그 분야의 경험이 일천한 김대표에게 있어 ‘발행인’이라는 역할은 그리 녹녹치 않은 일이었다. 이미 갖추고 있는 설비에 사람 몇 명 더 추가하면 어렵사리 꾸려나갈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조금씩 무너졌다.

창간호를 내던 달부터 기록한 적자는 해가 거듭돼도 바뀌지 않았다. 지속되는 적자 상황을 견디지 못 해, 비슷한 시기에 생활정보지를 발판으로 창간된 지역신문들은 하나 둘 문을 닫았다. 김 대표 역시 몇 번이고 폐간의 유혹을 받았지만, 지역신문이 신뢰를 받지 못 하는 것은 결국 스스로 약속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생각에 버텨나갔다.

⊙사회적 공기, 개인적 무기

하지만 많은 경우 지역신문을 발행하는 발행인들은, “신문에서 보는 적자를 다른 곳에서 얼마든지 메꿀 수 있다”고 믿고 있으며, 실제로 그러한 시도는 지금도 여전히 되풀이 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사회적 공기(公器)’여야 할 지역신문이 ‘개인의 무기’로 둔갑하여, 지역사회의 권력으로 군림 하려는 현상 역시 적잖다.

10년 세월 적자를 기록 하면서도 지역신문 발행의 끈을 놓지 않은 김인겸 대표. 그에게도 역시 그러한 의혹의 눈초리가 와닿았다. 신문에서 보는 적자를, 지역신문을 활용하여 엉뚱한 곳에서 만회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의 눈길과, “나중에 출마하려는 것 아니냐”는 억측이 그것.
그러나 이러한 주장들은 그리 긴 생명력을 갖지 못했다.

김대표가 하는 일은 단 두 가지. 생활정보지를 발행하는 일과, 그 곳의 수익으로 지역신문을 발행하는 것이 전부다. 지역신문은 그야말로 ‘돈 먹는 하마’일 뿐, 생활정보지 발행에 어떤 도움도 될 수 없다는 게 현실이다.

정치적 진출 역시 김대표로서는 언감생심 꿈도 꾼 적이 없다고 한다. 10년간 지역신문을 발행하는 동안 몇 차례 갖가지 선거가 있긴 했지만, 자신이 나설 자리가 아니라고 믿기에 냉정한 관찰자로만 머물러왔다.

얼마 전 끝난 17대 총선에서 역시 그가 발행하는 지역신문은 ‘지역언론’으로서의 몫을 성실히 수행하기 위해 애썼다고 한다.

⊙작게 이뤄 크게 베풀기

   
53년생으로 이제 쉰을 훌쩍 넘긴 김대표. 그 연배의 대부분이 그랬듯 그 역시 험난한 시절을 견뎌왔다. 나이 스물을 넘기면서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에 사업에 뛰어들어 온갖 일을 두루 섭렵했다.

그 과정에서 수도 없이 망하기도 했다. 규모있는 석재공장을 경영하다가 쫄딱 망해 비닐하우스 생활을 한 적도 있다.
거의 폐인되 되다시피 하다가, 79년 말에는 중동붐에 힘입어 사우디까지 날아가 2년 동안 일하기도 했다. 그 곳에서 모은 돈으로 재기의 발판을 마련, 악세사리(순금) 가공 사업에 뛰어들어 신용 기반을 다지는데 성공했다.

순조롭게 사업을 벌여나가던 92년 초, 어느날 아침에 신문에 삽지돼 들어온 생활정보지 한 장이 그의 삶을 크게 뒤바꿔 놓았다.
김대표는 당시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던 생활정보지가 제법 사업성있는 아이템이라고 판단했고, 일사천리로 준비 작업을 끝낸 뒤 곧바로 발행에 들어갔다.

하지만 누구나 생활정보지 시장에서 성공을 거둔 것은 아니었다. 시장의 과열로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수없이 많은 생활정보지들이 사라져갔다.

시간이 흐르면서 생활정보지의 성격도 상당히 변화되었으며, 독자와 주민들의 반응 역시 차갑게 식어갔기 때문이다.

김대표는 이러한 와중에도 “억만금을 줘도 퇴폐적인 광고는 일체 싣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우고 지켜나갔다.
중개업소의 물량 보다는 개인간의 직거래 문화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다양한 아이디어를 개발하기도 했다.

그 결과 수많은 생활정보지들이 쇠락의 길로 접어들고 있는 가운데서도 김대표의 생활정보지만은 그런대로 든든한 행보를 계속하고 있다.

⊙좋은정보 싣기, 나쁜 정보 걸러내기

김대표는 생활정보지에서 적용한 원칙을 지역신문에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많은 기사를 싣는 것보다는 허위, 왜곡 기사를 걸러내는 것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주문한다.
'지역신문은 생활정보 신문과 달리 잘못될 경우 폐해가 더 크기 때문'이다.
언론 경험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은 그에게 약점이자 강점인 것으로 보인다.
자신이 발행하는‘동부교차로저널’의 편집방향은“있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독자에게 전달해 준다”는 것 뿐이다.
단순하고 명쾌한 편집 방침은 그런대로 잘 적용되고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김대표는 올해야말로 ‘동부교차로저널’에 있어 매우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한다.
단 한 푼의 구독료도 받지 않는 채 오랜 세월 적자를 무릅쓰고 발행해온 자신의 노력이 10년만에 가시적인 성과로 돌아올 징후가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우편으로 받아보는 독자들만도 6천여 명에 이른다.

김대표는 이같은 “성원에 힘입어” 그 동안 미뤄뒀던 ‘신문 유료화’를 단행할 계획이다. 

“지난 10년 동안 무료로 봉사해오면서 이만큼 키워놓았으니, 앞으로는 주민들이 키워달라”는 주문을 하고 싶다는 것이다. 이제는 충분히 그런 요청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지역신문 발행 10년에 이제 그는 거의 전문가가 돼버린 것이다.

지역신문을 발행하면서 수없이 많은 지역신문들을 봐왔고, 또 그만큼의 신문들이 문닫는 것을 보았다. 당장 돈되는 ‘불량광고’를 ○○○다가 독자들의 외면을 받아 끝내 무너진 생활정보지들도 봐왔다.

홍성, 옥천, 남해 등지에서 강한 자부심으로 발행되는 올곧은 신문들을 만났고, 결국 그런 신문들은 독자들이 지켜준다는 것도 목격했다. 그러한 현장은 그에게 훌륭한 교사였고, 지침이 되어주었다.

10년 세월동안 지속돼온 만성적자, 그 적자를 홀로 메워온 끝없는 소모전.
김대표는 이제 그 긴 터널의 끝에 서 있다.
그의 10년 소모전이 허무한 물거품이 될지, 튼실한 결실로 열매맺을지는 이제 지역주민들의 몫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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