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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뢰인에게 최상의 서비스 제공동부초등학교 졸업, 이성직 변호사

"아버님이 남한고등학교 교사로 발령 받아서, 5살 때 하남시에 이사를 오게 됐는데 이때 사귄 친구들과는 지금도 교제를 하고 있고, 요즘도 이 친구들이 부르면 하남에 자주 오곤 합니다" 법무법인 화인소속 이성직 변호사의 말이다.

   
▲ 동부초교 출신의 이성직변호사
"처음에는 방아다리 부근에서 살다가 덕풍동 학교 앞으로 이사 가서 살았는데 동부초등학교 뒷 산에서 아카시아 꽃 잎을 따 먹고 뛰어 놀던 어린 시절의 추억은 지금 생각해 봐도 즐겁기만 하다"고 한다.

동부초교 3학년 때는 미사리부근 한강에 수영하러 갔다가 물에 빠져서 죽을 뻔한 순간이 있었는데 근처에 있던 분이 물에 뛰어 들어와 구해줘서 살아난 적도 있었다고 한다.

고교 2학년 때 고려대학교를 방문 했는데, 당시 안내를 해주신 분의 설명과 고대와 대학 생활을 설명해 주던 법대교수의 '법조인의 길'이라는 말에 강한 영향을 받았고, 변호사에 대한 인식과 인생목표를 결정한 계기가 됐다.

확고한 목적으로 변호사의 길에 들어 섰지만 일반인과 의뢰인들이 알지 못하는 어려움도 많다고 한다.

"매 사건마다 접하게 되는 판사를 자료와 근거에 의해서 설득해야 하고, 판사와의 가치관의 차이에서 오는 격차를 메꾸기 어려 울 때 매우 힘들다"고 말한다.

또한 "소송사건을 진행 하면서 관련된 사람들이 보이는, 인간이 가지는 끊임 없는 욕심들로 인해서 생기는 제반 일 들을 표현하고 전달하는 것에 어려움이 있다"고 덧 붙였다.

가장 기억 나는 사건으로는 고교씨름 선수가 연습도중 부상으로 전신마비상태에 빠져서, 관계자와 학교법인을 상대로 변론을 의뢰해와 1심과 2심에서 승소 했으나 대법원에서 패소한 사건을 들었다.

당시 신문에도 크게 보도된 사건으로, 가해자 부모는 재산도 없는 상황이고 학교측은 재판결과를 이유로 외면해서 의뢰인은 치료비 준비를 못해서 딱한 처지에 놓였다는 것이다.

남들은 변호사의 직업을 화려하게 보지만 이성직 변호사는 아주 원론적인 대답으로 자신의 일을 소개한다."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이나, 다른 사람의 소개로 찾아오는 사람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서비스를 제공하고 그들을 만족하게 해 주는 것이 나의 일 이다"는 것이다.

그러한 자신의 일을 통해서 사회인으로서의 성취감과 존재의식과 생활인으로서의 수익을 얻어서 가족과 살아 간다는 것이다.

2001년 6월에 미국으로 건너가 1년 동안 '국제인권법'을 공부하고 돌아 온 영향도 있어서 작년 부터는 '대한변협 탈북자지원 변호사단'에 소속돼서 탈북자들을 위해 틈틈히 무료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탈북자들이 정착 하는데는 많은 법률적인 문제들이 있습니다. 일반인들이 보면 가벼운 사안들도 이들에게는 힘들게 적용되는 것이 많기 때문 입니다"

서울지역 변호사중에서 테니스 매니아로 널리 알려진 이성직 변호사는 예전에는 기체조로 마음을 다스려왔고 지금은 테니스와 골프로 체력관리와 함께 일상에서의 긴장감을 풀어 나가고 있다.

"어린 시절과 비교하면 하남은 많이 변했지만 자연적인 모습도 보존되고 또 한편으로는 적절한 개발도 이뤄져서 살고 있는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모두 잘 살 수 있는 도시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 동부초교 교정에서 후배 아동들과 함께 포즈를 취한 이성직 변호사

이공원 기자  lee@koc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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