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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국 말단사원에서 광고국장으로일간스포츠 광고국장 출신, 임현배씨

"아버님의 엄한 교육 아래 어려서 부터 천자문을 다 읽을 수 있었는데, 초등학교 입학하자 담임 선생님이 신문을 가져와서 읽어 보라고 해서 읽어 나갔더니 대뜸 반장을 시켜 주더라구요"

   
"동부초교 뒷산에는 산토끼가 살았는데, 친구들과 토끼 잡으러 산길을 뛰어 다니고, 자연과 함께 지냈던 그 시절이,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에도 세상 살아가는 여유와 밑거름이 되는 것 같다"

28년간 한국일보사에만 근무 한 후, 최종적으로는 일간스포츠 광고국장으로 5년간 재직하고 2002년도에 언론사 근무를 마친 임현배씨(58.위너스빌딩 대표)의 모교인 동부초교 시절의 일화이다.

남한중과 남한고를 거쳐서 중앙대 신문방송학과를 입학했고, 졸업후에는 TBC방송에 PD로 약 4개월 근무하다 한국일보에 입사했다.

"한국일보 장기영회장(창업주)과 저희 부친과는 아주 각별한 사이였는데, 어려서부터 두분이 식사하는 자리에 따라 다닐 정도로 친밀한 관계였다"고 임현배 대표는 회상했다.

한국일보 광고국 평사원으로 입사해서 22년간을 광고매출과 광고기획, 광고관리등의 수업을 충실히 쌓아 나갔고, 1997년 마침내 일간스포츠 광고국장이라는 일간신문사 정상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매일 매일이 전쟁이었지요. 매일 오후 3시가 되면 신문사의 최고위층에게 매호매출보고 시간이 진행되기 때문에 하루 하루를 긴장 속에서 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두 아이가 태어 날 때 병원에 한번도 가보지 못한 아빠였고, 직장과 일에 메달리다 보니 가정에는 등한시하는 사람 이었음을 절실히 느낀다"면서 "뒤늦게 지금에 와서 가족들에게 많은 관심을 쏟으려고 마음먹고 있지만, 지난 날을 돌이켜 보면 후회스런 부분도 많다"고 말했다.

광고국장으로 취임한 1997년부터 IMF가 시작돼서 어려움을 겪었지만 다음해인 1998년에는 일간스포츠 창간 이래 최대의 광고매출 기록을 달성해서 업계를 놀라게 하기도 했다.

"인터넷과 방송의 발달로 신문매체는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고, 중앙일간지의 경우도 흔히들 빅3 정도는 괜찮다고 말하는데,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1개사 정도를 제외 하고는 위기상황이라고 보지만 늘상 그렇듯이 기업은 성장을 위해서 끊임없이 변신하기 때문에 탈출구를 찾을 것이다"고 신문업계를 조심스레 진단했다.

고향인 하남시를 바라보는 마음은 매우 조심스럽다.

"하남시 사회가 화합부분에 문제가 있다고 보는데, 한가지 예로 일부 동문회와 혈연집단체가 정치에 관여함으로써 선거 한번 치르고 나면 동문회가 쪼개지고 반목하는 사례가 되풀이 되고 있다"며 안타까워 했다.

"지연과 학연은 지역발전등의 좋은 방향으로 집중 되어야 한다"는 임현배 대표는 자신이 경험하고 있는 실제적인 사례를 소개했다.

"모교인 중앙대 출신의 언론사 종사자들 모임인 '중대언론동문회'를 만들었는데, 다양한 언론기관과 광고매체의 현업에 종사하는 현업 동문들이 모여서 각자의 분야에서 얻은 서로의 정보를 교환하고 지식을 나눴는데, 아주 활성화가 잘 돼서 매월 한번 만나는 이 모임이 기다려지고 화합도 아주 잘 됐으며, 실제의 업무에 많은 도움이 됐었다"고 전했다.

고향의 청소년들에게는 "사회는 노력한 만큼 반드시 보답을 해주는 것이므로 성실하게 남보다 더 많은 노력을 해 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마지막으로 하남시가 지금보다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서울의 위성도시로 베드타운으로 유지되는 것 보다는,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참여 할 수 있는 계획인 세워지기를 기대하고 있고, 하남은 서울 근교도시로 좋은 여건을 갖추고 있으므로 농업에 종사하는 분들을 위해서는 농산물의 브랜드화와 집중홍보가 이뤄지기를 바라고 있었다.

이공원 기자  lee@koc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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