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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 전 대통령 '싸움꾼 서경석' 호칭월맹군 포로 4명, 사살 38명 전과

<<  출향인사 시리즈 - 서경석 예비역 장군>>

"일년에 3~4차례 노태우 전 대통령을 만나지만, 그때 마다 '서경석 장군' 보다는 '싸움꾼 서경석'으로 친숙히 부르신다"

육군중장으로 전역한 서경석 장군과 노태우 전 대통령간에 얽힌 일화이다.

서 장군이 싸움꾼으로 세상에 알려진 것은 1968년 파월 맹호부대 중대장으로 근무하던 월남 퀴논 북방 퓨캇(Phucat)지역의 전투에서 였다.

   
▲ 육군 제 6군단 시절에 경기도 연천북방의 다락터 훈련장에서 훈련중인 서경석 장군.
1969년 7월 10일 새벽 4시반.
당시 대위계급의 서장군은 전날 발견한 월맹군 정규군 대대병력을 발견하고 대대장에게 보고했다. 이때의 대대장이 노태우 전 대통령이었다.

보고를 받은 대대장과 연대장, 사단에서는 난리가 났고, 전화통에 불이 날 정도로 확인전화가 왔다.

"사실이냐?  중대장이 봤느냐?"  "내가 직접 봤다니까요?  일렬로 지나 가는데 바나나잎으로 머리위를 가리고(미군의 관측을 피하기 위해서) 어깨에 박격포도 메고 이동하고 있는 것을 부하들과 같이 두 눈으로 봤다"

그러나 상급부대는 쉽사리 공격명령을 내려주지 않자, 서 대위는 외쳤다 "내가 밀림에 들어가서 잡아 오겠다" "죽으면 국립묘지로, 부상하면 후송시켜 달라"는 뱃심좋은 서대위의 요구에 지휘부에서도 결국 공격명령을 내렸다.

그리고는 중대병력을 이끌고 새벽 기습공격을 감행해서 잠자고 있던 월맹군 정규군을 급습했다.
"수류탄을 집중투하 한 후,  M16소총으로 난사했다"

'전투결과 포로 4명, 사살 38명'  월남전 사상 유례없는 엄청난 전과였다.

그 전투 이후 서장군의 군인인생은 승승장구 했다.

"서경석이는 순수한 야전군인이다"라는 타이틀과 함께, ROTC출신 이었지만 당시 군 부대의 실세들 이었던 육사출신 장교들 조차도 이 일 이후로 깍듯한 예의와 대우를 하기 시작했다.

   
아직도 강인한 외모와 체격을 유지하고 있는 서경석장군(62)은 당시 농협동부지소 이사였던 부친을 따라서 하남에 와서 동부초등학교에서 4~6학년을 다녔다.(동부초교 17회 졸업생)

"당시 동부초등학교 앞에는 수리조합의 물 나오는 곳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멱도 감고, 수영도 거기서 배웠다"

"서울서 중학교를 다닐 때 한강 뚝섬에 놀러 간적이 있었는데, 하남에서 배운 수영실력으로 한강을 조금 건넜는데, 다음날 '서경석이가 한강을 한 손으로 건넜다'는 소문이 학교에 쫙 퍼져서 대단한 인기를 얻기도 했다(웃음)"

고려대 사학과를 졸업한후 ROTC 3기로 육군소위 임관을 했는데, 동기들이 하나 둘 군을 떠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동기들은 이구동성으로 "너는 군대 체질이다. 건강하며 체격 좋고 사격도 잘 하니 너 만이라도 남아야 한다"고 했다.

1968년 파월 맹호부대 중.소대장(26개월 전투) 1988년 육군 준장 진급, 1991년 소장 진급과 보병 17사단장, 1995년 중장진급과 육군 제6군단장, 1999년 전역.  전역과 동시에 고려대학교 개원교수로 자유교양학과에서 강의를 맡고 있는데, 1학기는 '손자병법' 2학기는 '지도자론'을 강의하고 있다.

   
▲ 모교인 동부초등학교 교정에서 어린시절을 회상하는 서경석 장군
'손자병법' 강의는 직접 겪은 실전을 겸한 명강의로 소문이 나서, 강의개설 1분 15초만에 강의신청 마감이 되는 기록을 달성하고 있다.

"손자병법은 병법이 아니고, 세상사는 지혜이다"는 것이 서장군의 지론이다.

"어디서든지 성공한 사람은 남의 도움을 받는 사람이다" "남의 도움을 받으려면, 도움을 받을 짓을 해야 하는데, 남을 배려하는 그릇을 가져야 성공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주면 돌아온다"는 것이다.

서장군이 군 생활에서 얻은 결론은 "전투에 임한 군인들은 예측능력이 뛰어나야 하고, 예측하고 난 후에는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죽는다"는 것이 서장군의 결론이다.

서장군이 1991년에 샘터사에서 펴낸 '전투감각'이라는 책은 대한민국 육군의 20개 필독서중 하나로 선정됐으며, 이 책의 영어판인 'Feel for combat'는 대한민국 육군장성이 쓴 최초의 영어판 전투교본으로 기록돼 있다.

"군인으로서 전투도 해보고, 부상하나 없이 별 3개도 달아보고, 이제는 대학에서 강의도 하니 개인적으로는 행복한 인생을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하는 서경석 장군은 인생의 가장 행복했던 시절을 묻자 "월남전 전투현장 이었고 그 이후의 군 생활은 재미가 없었다"고 서슴없이 말할 정도였다.

이공원 기자  lee@koc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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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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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재홍 1991년 관사 운전 2019-05-19 10:50:25

    이 자식 운전병 출신으로 욕밖에 할게 없는데 욕을 못하니 암것도 못하겠네 뚱뗑이 주당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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